부처님의 이름으로

일을 하나 의뢰받았다. 북토크에서 인사를 나눈 적 있는 독자로부터 언질을 받고 담당자가 연락을 해 왔다. 사찰을 취재한 뒤 일정량의 원고를 쓰는 일이었다.

사실은 일의 내용에 대해 알기도 전에 나는 약간 우려했다. 언질을 준 독자로부터 일과 관련된, 그다지 적절하지 않은 부탁을 받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도덕적으로 부적절하다 그런 맥락은 절대 아니고, 어떻게 보아도 일천한 음식평론가가 성사할 능력이 없는 일을 개인의 차원에서 받았다.

그런 예감과 함께 공문이 담긴 메일을 받았는데 바로 당황 및 실망했다. 단가가 너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가라는 건 늘 상대적인 구석이 있기 때문에 ‘네가 너무 많이 받는 거 아니냐’라고 반문할 수 있지만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나는 많이 받는 필자도 아니고 소위 시세에서도 많이 벗어나 있었다.

그나마 원고료는 정말 너무나 반드시 하고 싶다면 참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취재비가 실로 충격적인 수준이었다. 10만원. 어디가 될 지도 모르는, 그러니까 집에서 차로 너덧 시간 떨어진 곳을 1박2일로 취재하고 오는 비용이 딱 10만원이었다.

설사 사찰에서 숙식을 해결한다고 하더라도 적자가 날 수 밖에 없는 예산이었다. 실제 메일에는 근거로 다 이야기를 했지만 귀찮아서 대략 이야기하자면 KTX 요금이나 기름값+톨게이트비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적자는 최소 100퍼센트라고 봐야 했다.

이 취재비+원고료의 합계가 얼마나 시세와 차이가 있느냐면, 아무 곳에도 취재를 가지 않고 집에서 같은 양의 원고만 쓰더라도 받을 수 있는 보수보다 적었다. 말하자면 집에서 2시간 정도 써서 받을 수 있는 돈보다 1박2일 취재를 거쳐 원고까지 썼을 때의 보수가 더 적은 것이다.

또 다른 각도에서 볼 수도 있다. 1박2일 취재를 가려면 적어도 1근무일은 준비를 해야 한다. 짐을 챙기든 취재 대상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든 적어도 하루는 걸린다. 거기에 원고의 분량을 감안하면 2근무일은 배정을 해야 완성도를 보장할 수 있다. 이를 모두 다 더하면 5근무일, 말하자면 한 달의 ¼이 들어가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를 위해 책정된 보수의 총합은 50만원이 되지 않았다. 이를 확대해석하면 1개월 20근무일을 일해도 수입이 180만원 밖에 안 된다고 계산을 할 수도 있다.

지난 16년 동안 이런 일을 정말 다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겪어왔고 요즘도 작년 말부터 한 달에 적어도 한 건씩 이런, 보수가 맞지 않는 일의 의뢰를 받고 있다. (최근의 일 가운데 하나에 대해서는 이 글 참고) 이건 뭐 사실 더 이상 고민할 필요도 없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다시 한 번 말하자면, 원고만 쓴다면 맡을 수도 있다(아마도 안 맡겠지만). 하지만 물리적인 취재를 해야 한다면 여기엔 볼 필요도 없이 자비가 들어갈 수 밖에 없다. 실질적인 적자가 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담당자에게 이런 근거를 들어가며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많은 경우 보수가 안 맞아서 못하는 일에 대한 대화는 이 지점에서 끝이 난다.

하지만 이 건은 그렇지 않았다. 정부 지원 사업이라서 보수는 더 이상 책정할 수 없다고 했다는 답이 돌아왔는데, 나는 사실 알고 있었다. 원고료가 5천원이나 1만원 단위가 아닌, 1천원 단위로 배정되어 나왔기 때문이다. 참고로 매문가의 세상에서 이런 일은 매우 드물다. 말하자면 ‘200자 원고지 1장에 1만2천원’ 이런 식으로 책정이 되는 상황인데 백 퍼센트 일에 비해 적다.

이런 상황이라 어떻게 할 수는 없지만 내가 자차가 아닌 다른 취재진, 말하자면 사진가나 에디터의 차를 타고 출장을 갔다오고 10만원을 그냥 가지는 방안도 있으니 재고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렇게 해서 10만원을 받더라도 시세의 원고료에 미치지 못하는 보수였기에 성사가 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이렇게까지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그렇고 조금이라도 안면이 있는 분이 섭외를 한 상황이니 마지막으로 고려를 해 보자고 취재 후보지를 물었다.

그랬더니 서울과 경상도 각각 한 곳과 수원의 사찰이라는 답을 받았는데, 내 고향이 수원인데다가 예전에 살았던 동네 근처인지라 ‘아, 이건 혹시 나더러 하라는 일인가?’라는 생각이 들어 맡겠다고 했다. 나중에 먼 곳을 가라고 그러면 적자가 분명히 나겠지만 그건 그때 생각하자고 했다.

아, 오랜만에 수원에 가겠구나… 라는 생각에 왠지 즐거운 기분을 음미하고 있었는데 그곳은 취재할 수가 없어졌으니 집에서 5시간쯤 걸리는 경상도의 사찰로 가라는 메일을 받았다.

이 메일을 받고 나는 매우 화가 났다. 무엇보다 기만당하는 느낌을 받았다. 후보지는 가능성을 검토조차 안 해보고 그냥 내키는 대로 정한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갑자기 취재가 불가능해진 이유는 무엇인가? 이쯤 되면 그 이유도 말해주는 게 상황의 이해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을까? 왜 이곳의 대안이 갑자기 경상도가 된 것인가?

이중 어느 질문에 대한 답도 없이 상당히 통보의 느낌이 나는 메일을 받고 나는 이런 식으로 자세한 설명 없이 합의를 깨는 것처럼 다른 취재지를 가라 하시면 애초에 보수가 안 맞아서 할 수 없었던 일이니 못하겠노라고 답을 했다.

그리고는 곰곰이 생각해 보니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를 섭외한 책임자는 따로 있고 담당자는 그로부터 지시를 받아 소통을 하는 상황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그런데 이 상황이 여기까지 오는 동안 그는 참조로 메일은 받았으되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항의 메일을 보냈다. 상황이 여기까지 왔다면, 그리고 내가 애초에 너무 보수가 맞지 않는 일을 이렇게까지 고민한 것은 그 보잘것 없는 안면을 생각했기 때문인데 뭔가 직접 설명이라도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물론 답은 듣지 못했다.

시세에 맞지 않는 보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 영향력을 고려해달라는 대답을 듣는다. 말하자면 ‘우리 매체 혹은 플랫폼에 글을 실으면 네가 더 알려진다’라는 논지인데 진짜 안 하느니만 못한 말이다. 그런 영향력은 대체로 말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만큼의 파장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을 얕잡아 보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니다.

나는 이미 4대 전국 일간지 두 군데에 8년 동안 300편의 칼럼을 썼고 쓴 책으로만 열 권을 꽉 채웠으며 지금도 매주 월요일에 전국으로 송출되는 라디오 생방송에 내가 쓴 원고로 출연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절기에 한 번씩 세 번 쓰는 원고를 통해 과연 내가 얼마나 더 알려질까? 과연 그런 게 나한테 필요할까?

보수가 맞지 않더라도 일을 맡을 때가 있기는 있다. 같이 일을 하는 사람들이 좋다거나, 내가 그 일을 통해 자기계발을 더 하고 싶다거나 그도 아니라면 정기적인 외출과 사회생활을 보장해준다면 맡는다. 사실은 라디오 출연이 그런 경우다.

근데 이 일은 그런 게 아니었을 뿐더러 종교의 차원에서 진행하는 사업이면서 그 가르침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듯한 의뢰였기에 한층 더 마음이 상했다. 늘 느끼는 건데 다들 너무 욕심이 많다. 일은 안 해도 좋으니 제발 사람 취급 좀 받았으면 좋겠다.

완전히 정량화하기 어려운 원고 쓰기 정도라면 맡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 나는 이것마저 지난 15년 동안 타임시트를 통해 기록 및 관리를 해와서 과업당 투입되는 시간이 99% 정량화 되어 있다. 하물며 물리적이고 절대적인 시간을 꼬박 투입해야 하는 일에 이런 보수를 책정한다는 건 너무나도 비인간적인 처사다. 나는 아직도 나를 섭외한 담당자로부터 사과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