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 묵은 떡밥은 묵은 떡밥

볼 때는 별 생각 없이 봤는데 다 보고 나니 또 별 생각이 없었다. 한마디로 남는 게 없달까. 원래 안소니 매키를 좋아하고 그의 팰콘/캡틴아메리카를 좋아하기에 비브라니움 날개로 벽에 똥칠을 한대도 보기는 보았을 텐데 역시 기대를 크게 채워주지는 못했다.

문제는 뭐 두말하면 잔소리다. 어벤저스가 일단 한 번 총 집결해서 타노스를 퇴치했다. 그렇다면 이후엔 너무나도 자연스레 기대감소가 일어날 수 밖에 없는데, 케빈 파이기(든 누구든 의사 결정권자)는 판을 더 키워서 이를 돌파하려 들고 있다. 그래서 영화는 물론 온갖 미니시리즈다 뭐다… 계속 내놓고 있는데 그래봐야 보는 입장에서는 이제 무엇이든 MCU 큰 그림의 퍼즐 한 조각이라는 생각밖에 할 수 없기 때문에 마음 놓고 즐기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 놓았는데 한술 더 떠 영화도 밀도가 다들 너무 떨어진다. ‘브레이브 뉴 월드’도 그렇다. 왜 하필 헐크인가? 헐크 1편은 2008년에 나왔으니 근 20년이 다 되었다. 그걸 다시 끌고 나와서 묵은 떡밥을 회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로스(해리슨 포드 분)은 시뻘건 헐크가 되어야 하는가? ‘음, 이것도 MCU’의 큰 그림이군… 이라고 생각하면 얼마 안 남은 재미도 사그라들 수 밖에 없다.

타노스 퇴치 이전까지의 MCU 영화들은 대체로 척추처럼 (장르적)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앤드맨은 하이스트-코미디-가족영화였고 캡틴 아메리카는 정치 스릴러였다. 그게 Phase 4 이후 어떻게 망가졌는지 보라. 앤트맨은 짝퉁 스타워즈가 되었고(스타워즈 자체도 짝퉁이 되어 버린 현실에서!) ‘브레이브 뉴 월드’도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맹맹하다. 척추가 없으니 영화가 흐물흐물해진 것이다.

미국 리뷰에서는 ‘또 정치 스릴러의 틀을 가져왔네’라며 혹평하던데 차라리 그것에라도 제대로 집중했으면 더 재미있었을 것 같다. 이건 뭐랄까, 감독이나 작가가 뭘 하려고 들어도 위에서 높으신 분들이 제약을 하고 어깃장을 놓아 나온 결과물 같다. 지금까지 34편 다 보았는데 이제 그만 보고 싶은 생각도 매우 강하게 든다. 솔직히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루소 형제의 재기용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냥 개별 영화를 좀 재미있게 만들 생각을 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