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님 전상서

000 편집장님께,

안녕하세요, 음식평론가 이용재라고 합니다.

저는 지난 주, 000 에디터로부터 “취재” 요청을 받았습니다. 내용을 알고 계실 거라 짐작합니다만 혹시 모르니 딸려온 PDF 파일을 출력 및 첨부합니다.

000 에디터와는 일을 여러 번 같이 했던 적이 있으므로 즐거운 마음으로 내용을 확인했는데 생각이 많아지더군요. 무엇보다 요구하는 내용을 지침대로 “최대 500자”까지 쓰면 이 “취재”는 궁극적으로 원고가 되어버립니다. 문항이 적지 않고 질문도 간단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수가 책정되어 있느냐 물어 보았더니 아니라고 하더군요. 순간 000 에디터에게 항의하려다가 생각을 바꿔 편집장님께 편지를 씁니다. 이메일이면 서로 간편하겠습니다만 주소를 모르므로 이렇게 구식으로 항의하겠습니다.

네, 저에게도 참으로 번거로운 일입니다만 그만큼 항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믿기에 기꺼이 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씁니다. 사실 저는 몇 년 전, 그러니까 000 에디터가 000에서 일하기 전 똑같은 방식으로 항의를 하려다가 직전에 참았습니다. 당시 000 에디터가 원고를 의뢰했는데요, 대략 200자 원고지 다섯 장에 5만원 정도의 고료가 나오는 일이었습니다.

그정도면 매우 간단한 일이어야 할 텐데 과정이 참으로 고통스러웠습니다. 그 짧은 원고를 세 번 수정하게 만들고 마지막엔 그 원고들을 수합해서 본인이 하나로 만들어 실어도 되겠느냐고 묻더군요. 저는 거절했고 그렇게 일의 양과 난이도에 비해 많은 시간과 정신적 에너지를 투입하고도 보수를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건 000 에디터의 태도로 겪은 황당함에 비하면 약과였습니다. 진행 과정 속에서 언쟁이 벌어졌는데 저더러 ‘내(에디터 본인)가 젊은 여자이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대하는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 아무도 성별과 나이에 따라 차별적으로 대하지 않기에 참으로 모욕적이라 느꼈습니다.

편집장님, 그때의 이야기까지 굳이 꺼내는 것은 사오년 전 당시에도 그 원고의 보수는 장당 1만2천원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도 이미 고료의 최저선은 1만5천원이었으므로 1만2천원이라는 금액은 참으로 어정쩡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일을 매끄럽게 마쳤다고 하더라도 저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을 일이었지만 그래도 000에서, 그래도 모르는 에디터가 연락하는 것이니 나중을 위해서 한 번 해볼까, 라는 마음으로 맡았다가 돈도 못 받고 모욕만 당했습니다.

그때 이야기를 굳이 꺼내는 건, 기회가 닿은 김에 말씀을 드리고 싶었기도 하지만 지금의 상황이 더 나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업력 15년차의 프리랜서 매문가로 온갖 일을 맡아서 해본 바, 이것은 분명 금액 불문 보수가 책정되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이유에다가 책을 찾아 퀵으로 보내고 받고 하는 그 모든 번거로운 일들까지 감안한다면 그래야 마땅하다고 믿습니다.

그렇다고 많은 금액이 오가야 한다고 믿지 않습니다. 최소 5만원, 최대 10만원이면 충분할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에게도 이 정도의 금액이라면 어떠한 경제적 안정도 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발주처에서 저와 저의 컨텐츠를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최소한의 징표라 믿기에 충분히 의미있다고 봅니다.

편집장님, 제가 당시 000 에디터와 언쟁을 벌였을 때 그렇게 말했습니다. ‘잡지가 옛날처럼 그렇게 영향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데 이런 식으로 일을 시키면 되겠느냐’고요. 그랬더니 매우 불쾌해 하더군요. 똑같은 이야기에 편집장님께서도 불쾌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실이 아니라고 부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미국에서 유학하고 취업을 해 살다가 리먼 브러더스 사태로 정리해고를 당하는 바람에 아주 급하게 귀국을 했고, 그김에 오래 취미로 삼아왔었던 글쓰기로 커리어를 바꾸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출판사 몇 곳,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읽어왔던 000와 000에 글 샘플과 이력서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000에서 연락을 받아 매문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000의 편집장이었던 000 상무님과 밥을 먹게 되었는데요, 그분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공짜로 글 써주겠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이용재 씨가 절박해 보여서 일을 맡기기로 했다’라고요. 저의 절박함이 아니라 당시 잡지의 영향력을 말씀드리기 위해 이 일화를 소환했습니다.

맞습니다, 잡지가 그랬던 시절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에도 저는 공짜로 일을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행동에 옮겨왔습니다. 15년 일을 하고 이제 오십대를 바라보는 나이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이런 식의 청탁은 글만 써서, 전업으로 생계를 꾸려 나가는 저에게 상당히 모욕적입니다.

저는 ‘매체에 글을 쓰면 간접 홍보가 되니 보수를 안 받거나 적게 받고도 일해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들과 늘 언쟁을 벌여왔습니다. 되려 편집장님께 여쭙고 싶습니다. 정말 요즘의 현실에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제가 000에 이 컨텐츠를 무료로 제공하면 간접적으로 다른 일들이 들어오게 될까요?

심지어 000도 개편을 통해 칼럼을 없애서 이런 일을 한다고 원고 청탁이 들어오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또한 제가 작년에 마지막으로 칼럼을 썼을 때 000의 원고료는 1만 5천원으로 제가 다른 매체에서 받는 고료의 절반에서 75퍼센트 수준이었습니다. 그것도 원고를 쓴 다음 달의 말일 쯤, 50일 주기로 들어오곤 했습니다.

편집장님께 여쭙고 싶습니다. 컨텐츠를 위해서 1인당 5-10만원의 비용을 쓰실 수는 없는 것인지요? 없으시다면 과연 그것이 매체의 방침이나 관행 때문인지, 또는 기업으로서 000가 그정도의 비용조차 쓸 수 없는 재정적 상태에 처해있기 때문인지요?

편집장님, 편집장님께서는 급여를 지급 받으시는지요? 000의 에디터들은 어떻습니까? 매달 잡지를 만드는 대가로 분명히 급여를 받으시지 않습니까? 그렇게 잡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분명 이렇게 누군가가 시간과 품을 들이지만 대가는 받지 못하는 일들을 할 텐데요, 그렇다면 크든작든 이것이 착취가 아니라고 장담하실 수 있습니까?

프리랜서는 사회적으로 보호를 받지 못합니다. 사대보험도 거의 해당사항이 없고, 보너스는커녕 명절에 흔한 스팸 깡통 같은 것조차 아무도 주지 않습니다. 이런 현실을 글, 사진, 일러스트 등을 프리랜서의 노동으로 수급해 쓰는 잡지에서 모르실 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분명히 시간과 품이 원고 수준으로 드는 일을 “카톡 쓰듯이 가볍게” 같은 명목으로 대가 없는 노동으로 프리랜서에게 전가해서는 안된다고 믿습니다. 저는 2010년도 아니고 무려 2025년을 바라보는 작금에 아직도 이런 방식으로 노동에 대가를 지불하려 들지 않는 000와 편집장님께 강력하게 항의합니다.  이다지도 모욕적인 취급을 다시는 받고 싶지 않습니다.

이용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