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룡적 디저트 블라인드 테이스팅의 후기의 후기
솔직히 전혀 예상치 못했다. 이렇게 반응이 뜨거울 줄이야. 내가 올린 후기의 링크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그냥 자체적으로 그렇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참여한 ‘지큐’의 ‘디저트 블라인드 테이스팅’ 기사가 엄청나게 퍼져나갔다. 그렇다, 소위 ‘바이럴’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나의 평가가 있었다.
아아, 또 이런 일이 벌어지는군. 특히 2015~2017년 레스토랑 리뷰를 하며 많이 겪어 보았기에 이런 경우 대체로 부정적 반응이 많을 거라 예상했지만 이번엔 조금 달랐다. 재미있다는 반응이 많았다. 각종 커뮤니티의 덧글을 퍼다가 제보해준 지인도 있었고, ‘지큐’의 담당 에디터도 주변의 반응이 긍정적이었노라고 알려주었다. 글이 웬만큼 퍼져 나간 뒤 뉴스 취재 요청이 들어왔다며 이야기를 주고 받았을때 전해 들었다.
하, 정말 다행이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3월 중순이었나, 신사동에서 당을 너무 많이 섭취해 술에 취한 것처럼 몽롱한 상태에서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나는 한참을 복기했다. 육십 가지에 이르는 디저트를 먹었으므로 복기도 한참 걸렸다. 나의 평가는 적절했나? 사람들은 전혀 모르겠지만, 나는 대부분의 음식 평가를 아주 오랫동안 복기하고 또 복기한다. 무시로 소환해 나의 평가를 재검토한다. 예를 들어 내 악명의 절정이었던 밍글스의 리뷰는 아직까지도 복기한다. 토할 것 같은 오리 가슴살이나 텁텁한 장 트리오 디저트 같은 걸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다시 블라인드 테이스팅으로 돌아와서, 평가의 전반적인 수준도 평문도 모두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이전 후기에도 썼듯 평가의 전반적인 수준은 뚜껑을 열어보자 다른 두 평가자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사족을 붙이자면 세 평가자는 서로 모르는 사이이고, 테이스팅 동안 먹기 지쳐 대화도 거의 나누지 않았다). 다만 다른 두 사람은 파티셰와 컨설턴트(겸 여행작가)로서 나와는 달리 업계 종사자이거나 그에 가까운 상태이므로 나보다 좀 더 조심스러울 수 있다. 그렇다면 점수가 좀 더 차이났어야 한다고 믿는데 그렇지 않았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내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한편 바이럴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한줄평에는 이런 사연이 있다. 나도 원래 다른 두 평가자처럼 어떻게든 전반적인 평가를 문장으로 남길 심산이었다. 그런데 한 서너 가지를 먹으니 생각이 바로 바뀌었다. 글을 쓰는데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 그 사이에 디저트의 인상이 다 휘발되어 버린다. 처음 서너 가지를 먹었는데 이렇다면 뒤로 갈수록 계속 밀릴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니 원래 계획대로 평문을 써서는 안되다는 결론이 너무나 쉽게 내렸다. 그래서 척수반사적으로 갔다. 한두 입 먹고 생각나는 인상을 최대한 빨리 글로 남기는 것이다. ‘크룽지의 자리는 지옥에나 마련되어 있다’ 같은 표현은 그렇게 나왔다.
이처럼 글을 본 상당수가 긍정적으로 평가를 한 가운데 유일하게 한 군데에서만 부정적인 반응으로 난리가 났다. 바로 트위터였다. 그래, 안 그러면 트위터가 아니지. 해묵은 악연들이 언제나 나를 깎아내리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으므로 이 또한 색다를 것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뭔가 좀 달랐다. 부정적인 반응이 나의 예상보다도 너무 뒤틀려서 너무 멀리 퍼져나갔다. 조금 거칠게 말하자면 나는 졸지에 ‘막말하는 미친 개저씨’ 같은 게 되어 있었다.
앞서 말했듯 나는 이러한 사건에 상당히 익숙하다. 하지만 2017년 레스토랑 리뷰를 그만 둔 뒤로는 대체로 조용했다. 그런 일을 할 기회도 별로 없었거니와, 파인 다이닝은 물론 나에 대한 관심도 일정 수준 사그라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이런 일을, 예전보다 좀 더 악질적으로 겪다니 한편 좀 참담했다. 단지 반응이 부정적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 부정적인 반응들이 15년에 이르는 이 세월 동안 전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담론을 확장시키는 비판은 없고 인신공격과 악질적인 비방이 넘쳐나는 것을 보면서 나는 또 오랜만에 이런 글을 써야 되겠다고 마음 먹었다. 너무나도 지루하고도 귀찮은 동어반복일 뿐이지만, 또 새로운 악연들이 나타나 난리를 친다면 그들에게도 한번쯤은 차근차근 설명해줘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을 느낀다. 궁금하다면 찾아보시라. 이 홈페이지에는 이런 글이 주기적으로 올라왔었다.
이번 일을 통해 불거져 나온 나를 향한 악평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뉘는데, 첫 둘은 익숙하다. 사실 악평 자체보다 그것의 주체를 분류하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첫 번째 부류는 일반 소비자이다. 그냥 살면서 음식을 먹는 이들, 말하자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인 가운데 음식을 향한 관심이 평균을 상회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나의 비평에 반응한다. 긍정도 있고 부정도 있는 가운데, 후자는 대체로 ‘저 인간이 내가 맛있다고 하는 음식을 맛없다고 해서 기분이 나쁘다’라는 반응을 보인다.
진짜로 사람들이 이러느냐고? 믿지 못할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이런 말을 실제로 듣기도 했었다. 어쨌든, 나는 이 사람들 대부분에게 딱히 감정이 없다. 네, 그러실 수 있지요. 그들이 왜 그렇게 반응하는지 한편 이해도 하고, 내 일의 본의 아닌 부작용이라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한편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구석도 있기는 있다. 우리는 모두 모든 일에 가치 판단을 하고 그들 또한 예외가 아닐 것이다. 아마 그들은 자신들이 즐긴 음식을 내가 부정적으로 평가했다는 사실에 기분이 상하고 상처를 받으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가치 판단을 하고 있을 것이다.
즐겨 보는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이 재수 없고, 남자친구가 새로 자른 머리 모양이 마음에 안 들고, 심지어 어제 사먹은 케이크가 맛없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가치판단은 대부분 좋은 대화의 소재로 끊임없이 그리고 남김없이 소모된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가치판단이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할 것이라는 의식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그냥 내가 직업인이기 때문에 나의 음식에 대한 평가가 본의든 아니든 더 두드러지게 혹은 무겁게 다가오고, 그렇기 때문에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이라고 본다.
하여간 이들의 반응이 거슬릴 수는 있어도 크게 무리라고 생각하지 않는 가운데, 이번 일로 ‘나에게 개인적인 앙심을 품고 있었다’는 트윗을 보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노인들이 운영하는 세 평 짜리 만두가게”를 내가 혹평했다는 것이다. 그게 과연 어디였을까? 모든 평가 대상을 기억할 수는 없지만 상당수는 인상이라도 희미하게 품고 있는 가운데, 저 묘사만으로는 떠오르는 곳이 전혀 없었다. 어쨌든, 나는 그런 심경을 이해하면서도 그게 ‘개인적인 앙심을 품을’ 정도의 일인지 의심스러웠다. 만약 부모님이 운영하는 가게거나 했다면 이야기는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그냥 소비자로서 가는 가게인데 일개 음식평론가의 부정적인 평가에 그 사람을 향해 앙심까지 품는다고? 그런 사람들은 그냥 일상에서 불어나는 미움과 분노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투사할 만만한 상대를 찾은 것은 아닐까?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나는 사람들의 정신건강이 진심으로 염려되는 한편 세상을 살아가는데 두려워진다. 오늘의 한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쌓여 있는 분노가 이다지도 일촉즉발의 상태라는 사실에 가슴이 답답해진다.
두 번째 부류는 상당수 나의 묵은 원한들이다. 내가 소위 ‘그럴싸한 아마추어 glorified amateur’라 분류하는 이들이다. 음식에 일반 소비자 이상으로 관심이 많은 가운데 업계에 종사하거나, 아니면 관심을 원동력으로 콘텐츠를 만들어 소득이든 이름값이든 뭔가를 얻고 싶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나를 경쟁자라 여기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어떻게든 나를 깎아 내리려고 애를 쓴다. 하지만 내가 이해하기로는 이들은 내가 만들어 내는 콘텐츠의 진위를 판단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표면적이고 지엽적인 것들에 집착한다. ‘막말을 한다’와 같은 반응이 그렇다.
그런 가운데 나는 사실 그들의 불만이 궁극적으로 ‘저 인간이 왜 저 자리에 있나?’ 또는 ‘저 인간의 자리가 왜 나 자리가 아닌가?’라고 이해하고 있다. 만약 내가 틀린 게 아니라면 그들은 판단을 잘못하고 있는 것이다. 대단히 미안하지만 나는 그들의 경쟁자가 아니고, 그들은 나를 분석하고 이해해서 어떻게 저 인산이 그들의 표현을 빌자면 “시니컬한 막말”을 하는데도 이 일을 계속하고 있는지 알야아 한다. 이를 위해 나는 책을 많이 써 내놓았고, 그 책들에는 바탕이 되는 레퍼런스 또한 전부 공개되어 있다.
도저히 내가 꼴보기 싫어 인세 몇 푼 주는 것도 아깝다면 서점에 서서 책을 읽고 비난하는 글을 올리기보다(이런 분도 계셨다. 정말 돈이 아까워서 사서 읽지는 못하겠다며. 그래서 내린 결론이 ‘이런 책은 퇴출되어야 한다’였다. 책값도 쓰기 싫은 사람의 비난이 과연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여질 것인가!) 인터넷에 잔뜩 있는 매체 기고글을 읽어도 충분하다. 4대 중앙 일간지 두 군데에 내가 지난 7년간 써온 글이 대략 280편이다. 한편 이 홈페이지에는 지난 20년 동안 음식을 이해하는 사람으로서 나의 성장이 삼사천 편의 글에 적나라하게 나눠 담겨져 있다. 도저히 나에게 인세 몇 푼 주기도 아깝다면 이것만 다 찾아 읽어도 내가 최소한 직업인으로서 어떻게 무엇으로 만들어진 사람인지 각이 나올 것이다(읽고도 이해를 못했다면 정말 절망적일테고).
그래야 할 필요가 있느냐고? 당연히 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아무래도 클리셰이고 백전백승까지는 못하더라도 나와 경쟁자를 아는 데 도움은 확실히 된다. 나도 이 과정을 거쳤다. 그러니까 십여 년 전 황센세가 잘 나가셨던 시절, 나는 고민을 엄청 많이 했다. 저 양반이 말도 안되는, 지식과 정보로 뒷받침도 안 되는 이야기들을 하면서 저렇게 명성을 키워 나가는데 과연 사회의 이익이라는 차원에서 괜찮은 걸까? 그래서 당시 나와 있었던 책을 다 사서 읽었다. 그리고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니까 여러분도 내 글을 읽어보고 나의 세계를 분석해보시기를 바란다. 내 입장에서도 참 답답한 것이, 지난 15년 동안 나는 계속 책을 쓰고 옮겨 왔고 그것들이 내 세계를 구축해왔음과 동시에 방어벽 역할도 해주고 있다. 따라서 인신공격은 뱉는 이들에게 쾌감을 줄지는 몰라도 이제 나의 직업적 역량이나 인지도에는 타격을 주지 못한다. 뒤에서 좀 더 자세히 쓰겠지만 아무런 인맥이 없고 만들기조차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나에게 누가 무엇을 보고 일을 줄 거라 생각하는가? 지금까지 쌓인 책과 글이 있고 그것들이 매체 등 업계에서 쓸만하다는 검증을 거쳤기에 가능한 일이다.
오랜 세월 나를 폄하하고 인신공격을 하는 이 부류의 사람들에게 나는 묻고 싶다. 당신은 왜 음식에 관심이 있고 컨텐츠를 만들려 하는가? 나는 내가 겪었던 더 좋은 세상의 음식과 문화를 한국도 겪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이 일을 한다. 당신은 왜 하는가? 혹시 낮은 진입 장벽에 비해 그럴싸 해보이고, 소위 “콩고물”이 잘 떨어질 것 같기 때문은 아닌가? 소모적인데 에너지를 자꾸 쓰지 말고 각자의 세계를 구축하자. 각각의 세계로 경쟁하고 그 경쟁을 통해 씬과 담론을 확장시켜 나가는 게 공익을 위한 길이다.
물론 나는 이 두 번째 부류의 어느 누구도 나의 경쟁자라고 여기지 않는다. 그들은 아주 기본적인 접근조차 이해를 잘못하고 있다. 이해한답시고 시중에 존재하는 것들을 다 먹어본다고 해 봤자 좋은 샌드위치에 대한 이해가 생기지 않는다. 그저 좋지도 않은 그 샌드위치 사이에서 상대평가가 가능해질 뿐이지 절대평가를 할 역량은 기를 수 없다. 비평에 필요한 건 절대평가이고 이를 위한 역량은 지식과 정보로 쌓인다. 그걸 모르니까 그런 식으로 헛된 잔치가 벌이면서 남들에게 전시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저 사람은 ‘외식의 품격’에서 ‘닭은 빈 캔버스다’라고 했는데 내가 이번에 어디에서 먹어본 닭은 맛이 진하더라. 따라서 저 사람은 틀렸다’라고 사실은 부끄러운 말을 뱉는 것이다. 그럼 그런 지식과 정보는 어디에서 얻느냐고? 나는 말해주기 싫다.
마지막 부류는 사실 이 일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들이다. 그냥 두 번째 부류들이 불을 붙여서 ‘와 불이다~’하고 불구경을 나왔다가 타는 대상이 마침 남자라는 걸 알고 좋은 기회다 싶어 같이 두들겨 패기로 마음 먹은 이들이다. 남자는 다 나쁘니까, 따라서 대가를 치러야 하니까. 뭐 이 부류 또한 어느 정도는 이해한다. 내일 모레면 쉰이 되는 한국 아저씨인 나도 남자들이 참 싫고 남자들이 망쳐 놓은 이 사회, 더 나아가 이 세계가 참 싫다. 그런데 나도 결국은 남자이다 보니 벗어날 수 없는 굴레가 있고 여기까지 생각하다 보면 원죄를 느껴버리고 만다.
그렇지만 나는 그들이 너무나도 쉽게 짐작해 버리는 것처럼 뭔가 ‘남자의 네트워크를 백분 활용해 저기까지 올라간 개저씨’는 아니다. 일단 ‘올라온 여기’ 부터가 일단 대단하지도 않고 차라리 초라하다고 말하는 게 맞을 지경이다. 이 일을 전업으로 15년째 하고 있지만 벌이가 엄청났었던 적은 단 한 해도 없었다. 일로 인해 높은 앵겔 계수를 감당하며 그럭저럭 먹고 사는 정도일 뿐이다. 그나마도 내가 삶에서 궁극적으로 좇는게 돈이 아니기 때문에 그럭저럭 해 나가고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잘 모른다. 나는 인맥도 아무 것도 없이 그냥 출판사와 잡지사에 자기 소개서와 이력서, 글 샘플을 보내서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미약하게 시작해서 조금씩 범위를 넓혀서 아직도 초라할 뿐인 이곳까지 왔다. 사람과 얽히면 이해가 상충하고 그러면 할 일을 제대로 못하기 때문에 인맥은 지금도 없으며 의도적으로 만들지 않는다. 물론 고용자의 입장에서 학벌이나 등등의 요소가 고려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사실 정도는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외에도 상당히 많은, 자질구레하다면 자질구레할 요소들이 프리랜서의 수주에 영향을 미친다.
이 부류는 나의 전공이 건축인 것도 문제이며 따라서 음식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고 여기고 마음껏 욕을 하는 것 같던데 사실 그러면 모르는 사이에 굉장히 부끄러워질 수 있다. 내가 디저트에 대해서 뭘 아느냐고? 제과제빵을 손에 댄 게 올해로 딱 20년이다. 지금껏 많은 행사에 내가 만든 과자나 케이크로 찾은 이들을 접해해왔다. 작년 말에도 ‘맛있는 소설’ 북토크 하면서 오랜만에 내가 구운 빵과 과자들 가져가서 독자들과 나눠 먹었다. 뭐 이런 사실을 이야기하는 게 그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만…
어쨌든 그렇지 않아도 이와 비슷한 글을 써야 할 다른 일이 있어서 에너지를 비축해두고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여기에 써 버리고 말았다. 나는 솔직히 이런 글은 쓰나마나 하다고 생각한다. 나를 욕하는 이들은 내가 뭘 써도 욕할 것이고, 나를 좋게 보는 이들은 굳이 이런 글을 구구절절이 쓰지 않더라도 나의 직업적 역량을 의심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쓴다. 어쩌면 한 사람이라도 이 글을 읽고 생각이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