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과 어떤 시대의 종말

사과 1개 6,380원, 배 12,800원. 물론 가격대가 높은 마트의 물건이니 여지는 좀 주어야겠지만 대체로 이것이 2024년 5월 한국의 현실이다. 과일값이 너무 비싸다. 비단 과일만 비싸겠느냐면 보고 있노라면 스트레스가 끓어 오를 지경이다. 사과 옆, 사진에 담기지 않은 딸기는 500그램 한 팩에 19,800원인데 할인이 들어가 14,800원이다. 방울토마토 한 팩에 11,000원, 완숙토마토는 개당 2,000원 수준이다.

글 쓰는 전업 프리랜서가 버는 돈이 뻔하기는 하지만 개별 소비로 여길 때 이 사과나 배 하나를 못 사먹을 정도는 아니다. 같은 마트에서 나는 한 팩에 2만원 가까이 하는 오디(뽕나무 열매)를 보고 선뜻 지갑을 열었다. 나에게는 좀 각별한 정서적 의미가 있는 과일이기도 하고 정말 지금 반짝, 그것도 생으로는 거의 찾기가 어렵기에 추억을 먹는다고 치고 돈을 썼다.

단감 한 개에 2,000원씩 했던 지난 겨울까지도 나의 소비 패턴은 쭉 그랬었다. 게다가 나는 음식을 먹는 게 일인 사람이니 엥겔계수 그런 건 전혀 생각하지 않고 지갑을 마구 열었다. 그런데 이제는 손이 안 간다. 나는 사람마다 각자의 사회, 경제, 정신 및 정서적인 여건에 따라 많은 품목에 소비 상한선을 정해주는 금액이 내재되어 있다고 믿는다(물론 학문이나 이론적으로 검증된 현상인지는 모른다). 울타리가 쳐져 있다는 말인데 이를 넘어가면 소비는 결과가 좋아도 만족도가 낮을 수 있다. 그렇게 보았을 때 이들 과일은 심리적 만족을 주기 어려운 가격대에 놓여 있다. 말하자면 생리적으로 맛있다고 하더라도 그다지 행복하지 않은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이들 과일들이 실제로 맛이 있지도 않기에 더 안타깝다. 늘 말하지만 한국의 과일, 특히 사과와 배 같은 것들은 과즙도 아닌 물기가 많고 밍밍하다. 그리고 상품의 가치가 당도와 크기로만 결정된다. 그래서 비싸면 크고 달긴 달지만 전체적인 맛의 균형은 좋지 않다. 균형을 잡아주는 신맛은 거의 절멸되었기에 과일을 먹고 얻는 상큼함을 기대할 수 없다.

왜 그럴까. 오랫동안 고민해왔는데 요즘은 의외로 답이 아주 간단한 게 아니냐는 결론에 이르렀다. 땅이 안 좋은 게 아닐까? 초등학교 때부터 사회(지리) 시간에 우리의 영토는 삼분의 이가 산이라고 배웠다. 그럼 나머지 삼분의 일은 과연 좋은 땅일까? 결과물만 놓고 보자면 이젠 아닌 것 같다.

오늘도 이런 과일들의 판매대를 종종걸음으로 지나치며 나는 생각한다. 태생적으로 맛이 좋지 않은데, 말하자면 설계가 잘못 된 것 같은데 가격도 손이 안 갈 정도로 비싸졌다. 왜 그런지는 매체에서 한편 열심히 보도하고 있으니 굳이 들먹이지 않겠다. 어쨌든 이것은 그냥 일시적인 현상일까? 아니면 앞으로 쭉 감내해야 할 추세 혹은 경향일까? 전자면 오죽 좋겠느냐면 나의 마음은 계속 후자 쪽으로 기운다. 아무래도 어떤 시대가 이제 막을 한창 내리고 있는 것 같다는 불길한 기분이 자꾸 든다. 이것은 비단 음식의 세계 내부의 형편만을 보고 내리는 판단이 아니다. 직업인으로서는 물론, 생활인으로서 사회가 돌아가고 있는 상황을 보고 있노라니 그렇다.

우리도 멀지 않은 시일 내에 아이슬란드처럼 되는 건 아닐까? 과채류는 땅 좋고 볕 좋은 스페인 같은 나라에서 수입해다 먹어야 하는 거 아닐까? 이렇게 불길하고 비관적인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나는 내가 틀렸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한다. 틀려서 망신이라도 당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 하나 망신당하고 괜찮을 것이라면 차라리 그게 낫다. 하지만 요즘 가장 맛있으면서도 싼 과일은 무엇인가? 아마도 미국산 오렌지일 것이다. 이젠 과연 어떻게 해야 좋을지 나는 잘 모르겠다. 일단 황도 통조림을 한 상자 들여 놓았다.

*사족: 농사에 이해가 깊은 분이 땅보다 농사를 향한 접근이 문제라고 피드백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