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동] 50년 경력의 중앙시장 호떡 매대
기억이 맞다면 1981년 겨울의 일이다. 아파트 단지 진입로에 새로운 호떡 노점이 들어섰다. 땅콩튀김호떡이라 했다. 땅콩도 신기했지만 역시 핵심은 튀김이었다. 번철에 자작하게 부은 기름에 호떡을 튀겨냈다. 겨울 밤, 종이 봉지에 담아 집에 가져오면 호떡은 딱 먹기 좋은 온도로 식어 있었다. 바삭하고 고소한 밀가루의 껍데기를 베어 물면 배어나오는 ‘꿀’은 그야말로 행복의 맛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대부분의 호떡 조리가 튀김으로 전환되었다. 그래서 굳이 ‘튀김’이라 스스로를 칭하는 호떡도 보기가 어려워졌다. 처음 먹었을 때는 참 좋아했지만 차츰 튀겨지는 호떡에 회의를 느끼게 되었다. 문제는 정확하게 튀김이라 보기 어렵다. 마이야르 반응과 바삭한 껍데기를 빠르게 끌어낼 수 있기에 튀김은 호떡에 이로운 조리법이다. 하지만 대체로 관리가 잘 되지 않으니 먹는 사람은 기름을 많이 먹을 수 밖에 없다. 게다가 갓 튀겨낸 것은 온도도 뜨겁고 표면도 물러서 사실 먹기에 좋은 상태가 아니다.
그런 가운데 신당동 중앙 시장에 철저하게 구이에 의존해 호떡을 파는 노점이 있다. 매대 가까이 가서야 나는 그곳을 기억해냈다. 작년 여름 저녁을 먹으러 갔다가 영업하지 않는 상태를 보았던 기억이 난다. 전화번호와 함께 호떡 만드는 법을 전수한다는 글귀가 붙어 있는 걸 보고 기억해냈다. 6-8월은 아무래도 너무 뜨거우니 영업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매대의 주인은 85세 노인인데 인터넷을 찾아보면 호떡을 50년 구웠다고 나온다. 50년을 살지도 못하는 사람도 많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무엇인가 한 가지를 파기엔 아득하게 긴 세월이다. 그런 노인의 움직임은 기름을 최소한으로 쓰는 데 초점을 맞춘 듯 보였다. 반질반질한 번철에는 기름이 거의 없고, 보충도 손으로 찍어서 한다. 보충하더라도 번철에 고이지 않도록 바로 행주로 닦아낸다. 서양에서 팬케이크나 크레이프를 구울 때 권하는 요령이다.
그 결과물인 호떡은 1500원이라고 하기엔 좀 푸짐하다 느낄 정도로 큰데 ‘꿀’의 지분이 조금 아쉽다. 다소 빡빡하기도 하고 단맛의 간도 살짝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아니면 ‘꿀’이 적은 대신 반죽에 소금간이 좀 더 적극적으로 되어 있더라면 덜 심심했을 것 같다.
열 명 조금 넘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는데 노인은 신경을 썼다. 호떡 구매도 1인당 1개씩으로 제한해 빠른 회전을 유도했다. 매대 뒷쪽에 음식점이 있었는데 ‘삼백 만원 내고 장사하는데 내가 가리면 안된다’며 줄을 잘 서게끔 유도했다. 바로 옆의 반찬가게 매대의 주인도 호떡을 사러 줄을 선 사람들이 마뜩찮은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신당중앙시장은 소위 전통시장치고도 그다지 쾌적한 느낌은 아니다. 입구 부분은 괜찮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어둡고 울퉁불퉁하고 지붕도 낮다. 그런 한가운데서 유독 장사가 잘 되는 매대가 있는 게 주변에선 못마땅한 것 같았다.
그렇게 50년 경력의 구운 호떡을 맛보았다. 그래서 이 호떡이 얼마나 특별한가 물으면 솔직히 만족스러운 답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튀기지 않았다는 점에서 나름의 매력과 살짝 피어오르는 불향을 맛볼 수 있긴 한데 오랜 세월 가격과 환경이 주는 제약과 타협하느라 굳어진 전형을 맛본다는 인상을 받았다. 너무 멀리서 찾아가는 건 가는 사람에게도 호떡을 굽는 노인에게도 이로울 것 같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