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쓰나미 라멘-참으로 처참한 맛없음
가장 화가 나는 맛없음이 있다. 순진한 결정이 쌓이고 쌓여 이루어진 맛없음이다. ‘설마 내가 실패하겠어?’라는 순진함이 빚어내는 맛없음이다. ‘근자감’과 결이 조금 다르지만 통하는 구석이 있다.
며칠 전 먹은 라멘이 그런 맛없음을 빛내고 있었다. ‘먹고 나서 혈당이 많이 오르지 않는 라멘’ 같은 걸 추구하는 모양인데 한마디로 기름기가 없는 돈코츠였다. 세상에 그런 걸 만들 수 있는 것인지조차 궁금하지만 이렇게 해내는 사람들이 있긴 있다. 라멘 한 대접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정말 처참하게 맛이 없어서 배가 아주 고프지 않으면 먹기가 힘든 수준이었다. 기름기가 없는 스프를 추구한다면 다른 재료로 국물을 내야지 돈코츠로 이런 걸 만들면 안된다.
이런 음식은 팔면 안되지만 버젓이 파는 곳이 많고 거의 대부분 만드는 사람의 성별은 남성이다. 나도 남성이지만 이 성별의 대다수 구성원들이 품고 있는 이런 순진함과 근거 없는 자신감에 치가 떨린다. 대체 어떤 삶을 살면 가게를 차려 이런 수준의 라멘을 9500원에 팔 생각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세상과 사람을 이렇게 우습게 볼 수도 있다니 그저 놀랍기만 하다. 이런 음식을 너무 많이 먹으면 인류애를 잃을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하는데 나는 이미 그 선을 넘어버린 것 같다. 매일매일이 인류를 미워하지 않으려는 나 자신과의 피눈물 나는 싸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