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음악’ 플레이리스트 (2) [1991~2000]

지금 돌아보면 음악 감상에서 가장 많이 변화를 겪은 시기였다. 고등학교 때(1991~1993)에는 헤비메탈을 들었다. 본조비에서 시작된 여정은 단 3년 동안 스키드 로를 거쳐 바로 메탈리카를 비롯한 스래시 메탈로, 점점 더 과격하게 넘어갔다. 어떻게 보면 헤비메탈을 듣는 아주 자연스러운 과정이기는 했는데, 아무래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입시생이었으니 굉장히 필사적으로 들었던 것 같다.

안 그런 사람이 얼마나 있겠느냐만, 당시에는 정말 음악 말고는 돌파구가 전혀 없었다. 그거라도 있었으니 다행이었달까?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가 미국으로 1년 연수를 떠나면서 생긴 내 방에서 처박혀서 당시로서도 구닥다리 워크맨으로 각종 헤비메탈 카세트 테이프를 고막이 찢어져라 크게 들었다. 특히 고등학교 때에는 매일 밤 메탈리카의 ‘Kill ‘Em All’ 같은 앨범을 이어폰 최고 음량으로 들으며 잠을 청했다. 1991년에는 싸구려 전기기타와 트랜지스터 앰프를 사서 메탈리카의 악보책을 보며 연습했지만 실력은 정말 말도 안되게 늘지 않았다.

대학에 들어간 이후에는 1995년에 가장 큰 변화를 겪었다. 1994년 말부터 하이텔로 피씨 통신을 시작해서 헤비메탈 동호회 같은 곳에서 활동했는데, 그곳에서 몇몇 사람들이 만든 모던락 소모임을 통해 당시 흘러 들어오기 시작했었던 브릿팝이나 미국 인디 음악을 본격적으로 듣기 시작했다. 브릿팝이라면 지금까지도 ‘블러 대 오아시스’의 대결구도로 기억되고 있지만 나는 그때 틴에이지 팬클럽을 발견했다. 그때 나는 틴에이지 팬클럽을 들으며 처음으로 헤비메탈의 디스토션이 강하게 걸린 것 외의 기타톤을 처음으로 인식 및 발견했었다. 기타라는 악기에서 이런 소리가 날 수도 있구나. 지금도 틴에이지 팬클럽을 들으면 당시의 놀라움을 다시 떠올리곤 한다.

그리고 물론 틴에이지 팬클럽은 언니네 이발관과 관련이 있다. 당시 하이텔 헤비메탈 동호회/모던락 소모임에서 세 밴드가 나왔으니 노이즈가든과 언니네 이발관 그리고 델리스파이스였다. 세 밴드 모두 약간의 개인적인 접점이 있었으니,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 밴드를 만들고 그 밴드가 당시 막 생겨나기 시작한 홍대 앞 클럽들에서 공연하는 걸 보는 상황은 지금 돌아보아도 일종의 문화충격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때 장르 불문하고 음악의 실연을 본 게 거의 처음이라고 할 수 있었으니까.

이래저래 1995년은 음악 감상의 개인사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였지만 오래 누리지는 못했다. 바로 다음 해 4월에 입대했기 때문이다. 1990년쯤 음악을 본격적으로 듣기 시작하면서 빌보드차트든 소모임이든 당시로서는 최대한 실시간으로 유행하는 음악을 쫓아가며 들었는데 결국은 이 시점에서 불과 몇 년 만에 연속성이 끊기고 말았다. 그리고 이후, 사실은 지금까지도 그 연속성은 다시 회복을 못하고 있다. 이제 그런 게 큰 의미가 있는 시대는 아니지만.

이후 미국에 간 2002년까지 음악 감상은 일종의 공백기를 맞았다. 1998년 잠깐 미국에 여행을 가서 경험 및 발견한 것들이 있기는 하지만(대표적인 예가 ‘식탁에서 듣는 음악’에서도 소개한 에스테로 Esthero이다), 대체 무엇을 어떻게 들었는지는 기억이 거의 나지 않는다. 그렇게 2000년대로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