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에서 듣는 음악

다음은 새 단행본 ‘식탁에서 듣는 음악(워크룸 출간)’의 미축약판 머릿말이다.

1987년 말, 아니면 1988년 초였다. ‘황인용의 영팝스’에서 흘러 나오는 오르간 전주(*)에 나는 숨을 멈추었다. 무슨 노래지? 기억 속에서 멜로디를 열심히 더듬으려는데 경쾌한 통기타 반주가 흘러 나왔다. ‘음, 당신의 몸을 만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 모두의 몸이 당신 같지 않다는 걸 알아요.’ 조지 마이클의 ‘믿음(Faith)’이었다.

와, 너무 좋다. 나는 홀린 듯 그날로 부모님에게 기타를 배우겠노라고 선언했다. 어머니가 피아노학원을 하셨기에 승낙을 받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열세 살의 나는 음악에 빠져 들었다. AKFN(주한 미군 방송)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 케이시 케이슴의 아메리칸 톱 40를 즐겨 듣고 용돈을 모아 조금씩 카세트 테이프를 사서 모으기 시작했다. 세월이 흐르며 테이프는 컴팩트 디스크를 지나 음원으로 바뀌었고, 취향은 아메리카 탑 40에서 본조비(팝 메탈), 메탈리카(스래시 메탈), 틴에이지팬클럽(모던록)을 넘어 엉망진창 뒤죽박죽으로 정착했다. 이제는 취향도 무엇도 아무 것도 없이 그저 좋은 음악을 들을 뿐이다.

그렇게 음악을 향한 애정을 키워 오늘날을 살아가고 있다. 음식평론가이지만 음식 없이는 살아도 음악 없이는 못 산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만큼 나는 음악을 사랑한다. 공간을 언제나 내가 원하는 소리로 채우는 걸 좋아한달까? 이렇게 살아왔기에 ‘식탁에서 듣는 음악’의 집필을 제안 받았을 때 찰나도 망설이지 않고 덥석 물었다.

그렇다고 집필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아니, 그렇기에 더 어려웠다. 원래 이 책은 이재민 디자이너의 ‘청소하면서 듣는 음악’과 연작으로 ‘요리하면서 듣는 음악’으로 기획되었다. 집필 초기, 나는 이 기획을 지나치게 융통적으로 받아들였다. ‘어차피 내가 좋아하는 모든 음악은 요리하면서 들으니까’라고 생각해, 사십 년 가까이 들어왔던 음악들 가운데 특히 좋아하는 것들을 골라 비평문을 쓸 생각이었다.

그런데 잠깐. 직업인 음식 평론도 때로 피곤한데 왜 음악까지 비평하려 드는 거지? 그렇게 집필 과정에서 피로함을 느끼던 차, 워크룸 편집부에서도 적절한 피드백을 주었다. 아무래도 모든 글이 음식과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과연 그게 가능할까? 나는 반신반의하면서 쓰던 글을 갈아 엎고 새롭게 시작했다. 웬걸, 쓰면 쓸 수록 기억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간직하고 있던 이야기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이렇게 음식과 음악이 한데 얽힌 기억을 많이 가지고 있었는지 솔직히 몰랐다. 삶의 어느 순간에서도 음악을 들었기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 아닐까. 그렇게 떠오르는 모든 기억들을 최대한 엮어 원고를 완성했고, 성격에 맞춰 제목은 자연스레 ‘식탁에서 듣는 음악’으로 바뀌었다.

책을 쓸 때에는 별개의 꼭지인 글에 서사의 뼈대를 붙여 아우르기를 좋아한다. 약간의 고민 끝에 ‘식탁에서 듣는 음악’에서는 음반을 시대 별로 분류했다. 하지만 좋은 음악은 시대에 구애받지 않으므로 음식과 이야기마저 시간에 얽매이지는 않는다. 앞에서 밝혔듯 현재로 가까워질 수록 등장하는 음반들이 ‘엉망진창 뒤죽박죽’인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어떤 음악은 여행의 사운드트랙으로 들었기에 음식과 더불어 장소까지 함께 엮었다.

음악도 음식도 나눠야 제맛이다. ’식탁에서 듣는 음악’이라는 제목처럼 책에 담은 나의 이야기들이 읽는 여러분들을 새로운 ‘식탁 음악’으로 이끌었으면 좋겠다. 라면을 먹든 맥주를 마시든 가볍게 파스타 한 접시를 만들든, 식탁과 가까이 닿아 있는 순간을 위한 음악을 발견해 주었으면 좋겠다.

2021년 6월

이용재

*왬!(Wham)의 히트곡 ‘자유(freedom)’의 후렴구를 편곡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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