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냉면의 오후
버스가 한겨레 사옥을 지나갈 때쯤 생각이 났다. 중국냉면이 있었지! 원래 계획은 옷 수선을 맡기고 명동칼국수에서 계절 메뉴인 콩국수를 먹는 것이었다. 그런데 불현듯… 나는 스스로를 더 복잡한 상황으로 밀어 넣었다. 명동칼국수는 반드시 열려 있지만 냉면을 파는 중식당(어딘지 말 안 하련다…)은 격주로 쉰다. 게다가 열었더라도 중국냉면 철이 끝났을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수선집은 명동칼국수 바로 지척에 있다. 따라서 중국냉면을 먹겠답시고 음식점을 찾아갔다가 문을 닫았거나 철이 끝났다면 다시 돌아와야만 했다.
…그러나 우주의 기운이 나에게 중국냉면을 배려했는지 음식점은 문을 열었고 냉면도 성황리에 판매되고 있었다. 아, 정말 중국냉면 먹기 딱 좋은 오후다. 생각해보니 몇 년 만에 먹는 것 같은데 막상 입에 넣으니 기분은 의외로 시들했다. 예전에 비해 맛이나 완성도가 현저하게 떨어진 것 같지는 않았고, 그저 내가 처한 현실이 오랜만에 먹는 중국냉면 한 그릇 정도로 해소될 상태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열심히 면발을 입에 넣는데 다른 손님들이 시킨 볶음밥과 간짜장 냄새가 유난히 좋았다. 하지만 그것들도 막상 먹으면 똑같은 기분이 들겠지.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서글펐다. 한때 당연한 일상이라 믿었던 것들로부터 갈수록 무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