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온 고추칩과 ‘이대남’ 소비자 비위 맞춰주기

오리온 고추칩은 훌륭한 과자이다. 고추를 익혔을 때 나오는, 즉 고추전의 신맛과 향 그리고 매콤함이 밀도가 높지 않아 아삭함을 확실히 보장해주는 칩에 배어있다. 두께와 크기, 모양 모두 맛에 최적화되어 요즘 과자들 중에서도 단연 돋보인다. 마요네즈를 찍어 먹으면 아주 훌륭한 맥주 안주가 될 것이 확실하다.

이렇게 과자 자체만 놓고 보면 상찬할 수 있지만 다시 먹게 될지는 모르겠다. 포장의 젓가락 때문이다. 세상에 누가 과자를 젓가락으로 집어 먹는단 말인가? 그저 기가 막힐 뿐이다. 우리는 이 젓가락이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 아주 잘 알고 있다. 엄지와 검지, 두 손가락으로 만드는 제스쳐가 남성을 비하한다는 폭력적인 항의를 수용한 결과이다. 한마디로 아주 못나고 멍청한 일처리이다.

실존하는지도 정확히 알 수 없는 소위 ‘이대남’의 비위를 맞춰준답시고 사회의 다수가 난리 법석을 떨고 있다. 나는 이 ‘이대남’ 딱지 붙이기가 매체를 비롯해 관심을 끌고 싶어하는 부류의 변질된 세대론의 오남용이라 여기고 있다. ‘MZ 세대’니 하는, 알고 보면 86세대의 관점에서 그럴싸해 보이기 위해 발버둥친 결과물이 세대론이라 본다. 그런데 이들의 비위를 맞춰 주기 위해서 인간의 가장 자연스러운 제스쳐 가운데 하나인 엄지와 검지 오므리기를 지워 버린다고?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어서 두 손가락이 오그라들 지경이다.

백 번 양보해서 세대론이 유효하며 이대남이 실존하는 계층이라 가정해보자. 그렇다고 하더라도 기업, 더 나아가 사회의 차원에서 이들의 비이성적인 요구를 들어주는 게 과연 합당, 아니 그들이 그다지도 좋아하는 공정한 처사일까? 과연 이 ‘이대남’이라는 계층에게 얼토당토하지 않은 이유로 매출을 확 깎아 내릴 만큼의 구매력 및 응집력이 있기는 한 걸까? 과연 남자들이 그러한 단체행동을 감수할 만큼 사회에서 불공정함을 밥 먹도록 겪는 성별일까? 시쳇말로 열심히 유통되는 ‘가성비충’이나 ‘국밥충’이라는 표현-멸칭-은 과연 어느 성별의 어떤 연령을 겨냥한 것일까? 남성들이 정말 사회적으로 소외된 성별일까?

사회의 집단 이성이, 사고 능력이 대체 어디까지 망가져 있는지조차 갈피를 못 잡겠다. 라면도 뭐도 아닌, 절대 손으로 집어 먹는 과자의 포장에 젓가락이 버젓이 찍혀 나오는 의사결정이 대체 어떤 구석에서 합리적일 수 있다는 말인가? 남자들은 부끄러움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