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에 관한 착각
흔히 비유로 쓰이나 속성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맞지 않는 음식이 둘 있으니 파이와 비빔밥이다. 파이는 뭔가 ‘정확한 내 몫’의 비유로 잘 쓰이는데 안타깝게도 실제로는 그렇게 잘 나뉘지 않는다. 그나마 커스터드를 쓴 파이라면 계란 노른자가 조리로 굳으면서 구운 뒤 나누기가 쉬워지는데, 흔히 연상하는 과일 파이는 내용물을 펙틴에만 의지해 굳혀야 하므로 완성된 뒤에도 무르고 딱딱 잘리지 않는다. 게다가 틀, 즉 접시에 반죽을 올리고 소를 채워 구워야 하므로 완성된 뒤 칼을 측면으로 넣을 수가 없으므로 더더욱 균일하거나 예쁘게 잘라내기가 어렵다. 오죽하면 ‘첫 쪽은 버린다’는 말도 있으며, 구울 때 넣어 첫 쪽까지 바르게 잘라준다는 틀도 팔리지만 단목적 기구인데다가 성공율 또한 높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구글을 검색했을 때 등장하는 파이들은 대체로 균일하게 나누기 어려우며 접시에 담는 순간 퍼져버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자신의 몫을 계속 파이에 비유하는 걸까? 나는 엑셀 같은 스프레드시트의 결과물인 ‘파이형 그래프’에 책임이 있지 않나 짐작한다. 각 비율이 쐐기형으로 정확하게 나뉘어 보이므로 실제 파이도 그렇게 잘리리라 믿는 것일 텐데, 그건 그거고 실제 파이는 파이인지라 예상한 결과를 얻기란 매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파이 타령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바뀌지 않으리라 생각하면 답답하다. 몰라서 그렇지 않느냐고 말하는 만큼 알기도 매우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세상에서는 더 모르는 사람이 더 큰 우위를 점하고 있다. 모르면 행복하다. 굳이 빵이나 과자류으로 자신의 몫에 대한 비유를 쓰고 싶다면 차라리 케이크가 더 적확하다. 내부도 훨씬 더 단단하고 옆으로 칼도 들어간다. 심지어 미리 잘라서 내 몫만 돈을 치른 만큼 딱딱 잘 내준다. 게다가 파이보다 틀의 구애를 덜 받으므로 ‘키운다’는 동사도 더 잘 맞아 떨어진다. 이제 파이보다 케이크에 나의 몫을 비유하는 습관을 길러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