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 요령 (1)
코로나 시국으로 본의든 아니든 재택근무의 비율이 높아졌을 것이다. 사람이 백 명이면 백 가지의 재택근무 여건이 존재할 테지만 어쨌든 먹고 살아야 한다는 차원에서 편안함과 효율 둘 중 하나는 찾을 수 있어야 의미가 있다.
올해로 12년차를 맞아 길지 않은 직장 생활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조금씩 수정해가며 내것으로 만든 재택근무 요령을 최대한 간단히 살펴보겠다. 말했듯 모두의 여건이 다른 데다가 직장인이라면 재택이더라도 회사의 프로토콜이나 과업에 맞춰 움직여야 할 가능성이 높으니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 최대한 간단히 살펴보겠다고는 했지만 아무래도 몇 번에 나눠 써야할 것 같다.
1. 루틴을 만들어 움직인다.
처음 프리랜서로 집에서 일할 때에는 눈을 뜨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바로 일하는 경우가 잦았다. 요즘도 일의 성격이나 시급함에 따라 가끔 그러지만 이렇게 하루와 일을 시작하면 이후가 매끄럽지도 효율적이지도 않음을 깨달았다. 따라서 적절한 시간을 들이는 절차를 통해 일할 채비를 적절히 갖춘 뒤 책상에 앉는 게 더 바람직하다.
각자 시행착오를 거쳐 맞는 절차를 찾게 되겠지만 나 같은 경우는 아침 식사 준비를 활용한다. 눈을 뜨고 전기 주전자에 물을 올리고 끓는 사이 세수를 하고 프라이팬을 불에 올려 달구고 빵을 냉동실에서 꺼내 토스터에 굽는다. 물이 끓으면 인스턴트 수프에 물을 붓고 커피를 내리고 계란을 익히고 빵을 꺼내 먹는다. 매일 되풀이해 습관을 들이면 매일 아침 자동적으로 몸이 움직이는 한편, 아침 식사가 준비되는 시점에서 잠이 깬다.
2. 끼니를 거르지 않는다.
굳이 끼니 준비를 루틴으로 삼는 이유는, 거르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비단 아침이 아니더라도 일이 밀리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가장 먼저 끼니부터 거를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혼자 집에서 일하게 되면 아무래도 허기를 더 의식하게 된다. 상호작용을 할 대상이 없고 좁고 변화 없는 공간에 계속 머물다 보니 그렇다.
특히 원래 아침을 먹지 않는 이도 재택할 때는 허기를 더 의식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배가 고프고 당이 떨어지면 머리도 잘 안 돌아간다. 스스로는 일을 잘 하고 있다고 느끼지만 아침을 거른다면 적어도 1 과업 시간은 버린다고 본다. 따라서 무엇을 먹어도 좋으니 끼니를 거르지 않는 게 좋다.
3. 근무의 기준을 정한다.
프리랜서로 맨 처음 한 일이 번역이었는데 아무런 기준이 없었다. 시간이든 책의 쪽수든, 하루에 얼마 만큼의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몰랐다. 그래서 그냥 눈을 뜨면 일을 시작해서 피곤해서 못 견딜 때쯤 접었다. 때로 일을 놓자마자 바로 잠자리로 직행하기도 했다. 소위 ‘크런치 모드’라면 모를까, 장기적으로는 이렇게 일을 하면 효율도 떨어지고 피로가 쌓인다. 따라서 근무 혹은 과업 수행의 기준을 정하고 그에 맞춰 움직이는 게 바람직하다.
근무 기준의 지표는 결국 시간과 과업의 양 둘 중 하나일 수 밖에 없는데, 양쪽 모두를 활용해 일을 해보고 맞는 걸 선택한다. 집에서 계속 일을 한 결과, 나는 시간을 기준 삼아 근무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프로젝트별로 시간을 기록하며 일해본 결과, X시간 수준에서 업무 추진 능력과 진척도가 정점을 이룬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부 기고 등의 마감이 아니라면 평소에는 X시간 이상으로 일을 하지 않는다.
4. 일하는 시간을 기록한다.
직장인 시절 설계사무소에서는 프로젝트 일하는 시간을 기록한 뒤 직능별로 가치를 매겨 클라이언트에게 청구했다. 프리랜서로 일하면서도 같은 시스템을 활용해 시간을 기록한다. 매일매일은 물론, 개별 프로젝트마다의 투입 시간을 파악할 수 있다. 이 시스템을 한 번 정착시키면 특히 프리랜서의 경우 새 용역에 대한 현실적인 소요 기간을 파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X쪽짜리 영서 번역 용역이 들어왔을 경우, 이전의 프로젝트에서 분량별 소요 시간을 파악하고 난이도로 보정해 대략 몇 개월이 걸릴지 조금 더 정확하게 예상할 수 있다. 나는 klok이라는 앱을 활용하는데 안타깝게도 한글 입력이 안된다.
5. 과업의 목표를 현실적으로 삼는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듯 동료도 없고 일이 무료할 때 자양분이 되는 잡담이나 커피 한 잔 등도 없으므로 재택 근무는 외로울 수 있다. 반면 방해요소(?)가 줄어들면 본의 아니게 일의 밀도가 높아질 수도 있으니 출근해서 일할 때보다 같은 시간에 피로를 더 많이 느낄 수도 있다.
따라서 과업의 목표를 너무 비현실적으로 삼지 않는 게 좋다. 예를 들어 출근때처럼 8시간 근무를 목표로 삼았다가는 5~6시간차부터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질 수도 있다. 퇴근때까지 시간을 채우면 되는 일터에서와 달리, 이런 상황을 어중간하게 보내는 건 내일의 생산성에 도움이 안 될 가능성이 크다. 과업의 속성이 대기가 아니라면 쓸데 없이 오래 붙잡지 않는 연습을 해보자. 그리고 시간을 조금이라도 남길 수 있다면 다른 용도로 써보자.
한편 프리랜서의 경우 여러 가지 이유로 그날의 과업을 충실히 못했다고 너무 집착하지 말자. 예를 들어 매일 오전 9시쯤 일을 시작하는데 그날따라 게으름을 부리고 싶었다거나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늦잠을 잤다거나 등등의 이유로 오후 2, 3시나 돼서야 책상에 앉을 수도 있다. 이럴 때 평소처럼 시간을 기준으로 일을 하면 너무 늦게까지 붙잡을 수 있으므로 흐름을 끊지 않는다는 마음으로 적절히 일하고 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