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노베 와플과 명예훼손
어제 현대백화점 목동점에 들렀더니 시노베 와플 가게가 사라지고 없었다. 팝업스토어였던 모양이다. 너무 아쉬웠다. 브라운치즈 랑그드샤를 한 번 먹어보고 싶었는데 가게가 아예 사라지고 없다니.
바로 지난 주, 시노베 와플의 평가글을 올리고 바로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업체의 트위터 공식 계정이 해명문 및 멘션을 보내왔다. 요지는 ‘잘못된 것 같은 정보로 본사의 명예를 훼손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글을 설명하는 글을 쓰는 것 만큼이나 비생산적인 일이 없으므로 최대한 간략하게 수입 업체의 주장을 반박하겠다.
-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말한다. ‘비평에게는 비평에 맞는 언어가 있으므로 글은 실제로 음식을 평가한 특정 수준 이하로 낮춰서 쓸 수가 없다’라고. 음식이 실제로는 더 형편없다고 하더라도 비평에 적합한 언어로 쓰기 위해서, 또한 내 글이 더러워지는 걸 막기 위해서 내부적인 순화과정을 거칠 수 밖에 없다는 말이다.
- 시노베의 와플은 그런 음식이었다. 거듭 말하지만 애초에 설계 자체가 잘못되었으므로 맛있을 수가 없으며, 소비자를 얼마나 우습게 보면 이런 음식을 팔까 화마저 치밀었다. 그러나 나의 비평과 언어가 더러워지는 걸 원치 않았으므로 최대한 격식을 갖춰 평가했다.
- 원한다면 더 파고 들어갈 수 있다. 수입 업체의 말을 옮겨 ‘비싼 관세를 물고 노르웨이로부터 들여온 치즈’에 왜 식물성 크림을 짝짓는가? 완전히 경질이아니고 반 경질보다 조금 더 단단할 뿐인 치즈를 굳이 갈아서 와플 표면에 뿌리는 이유는 무엇보다 치즈가 눈에 보이기를 원하기 때문 아닌가? ‘노르웨이에서는 하트 모양의 와플과 함께 먹는’ 치즈를 왜 굳이 얇고 바삭한 와플에 곁들이는가? 그 또한 그저 다르고 새롭게만 보이기 위해 짜낸 궁여지책은 아닌가? 그들의 말마따나 노르웨이의 생산업체에서 이 치즈를 먹기 위한 다양한 레시피를 개발했다면 굳이 이렇게 음식의 원리를 신묘하다 싶게 피해간 결과물을 냈을리가 없다.
- 왜 굳이 일반 명사인 ‘브라운치즈’여야 하는가? 이러한 치즈의 통칭이자 노르웨이어인 ‘브루노스트’는 발음이며 철자가 어렵지도 않고 기억하기도 나쁘지 않다.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를 비롯해 브리, 로퀘포르, 고르곤촐라 등등등 온갖 치즈가 자신의 이름을 달고 팔리는 현실에서 ‘브루노스트’를 ‘브라운치즈’라고 깎아내려서 (dumb down) 부르는 건 소비자의 수준을 너무 낮잡아 보는 행위 아닌가? 여러 종류의 브루노스트를 수입할 경우 각각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팔 수 있을까?
- 비싼 건 비싼 것이다. 소비자는 제품의 가격이 싸거나 비싼 이유를 생산자가 원하는 만큼 헤아려주지 않는다. 대량생산된 브루노스트가 400그램에 28,000원이라면 한국 치즈 유통의 세계에서도 비싼 것이다.
그리고 내가 마치 시노베라는 브랜드와 브라운치즈에 대한 잘못된 정보라도 유포하는 것 마냥 몰아붙이고 있는데 실상은 이렇다. ‘시노베’로 구글 검색을 돌리면 첫 페이지에 일단 브랜드의 공식 계정께서 친절하게 알려주신 공식 홈페이지가 나오지 않는다. 사실 그마저도 웃긴 상황 아닌가? 그래서 나는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하듯 음식을 맛본 경험을 바탕으로 거슬러 올라가 이런 음식이 나왔을 법한 논리를 추정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브루노스트에 대한 노르웨이 발 영어권 인터넷 정보를 참고해 교차 점검을 했다. ‘치즈를 수입하는 김에 제품이나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려고 와플을 개발한 것 같은데’가 잘못된 정보이며 이로 인해 출범된지 얼마나 된지도 모르는 브랜드가 명예훼손을 당하고 있다는 말인가?
이런 일을 하루이틀도 아니고 십 년 넘게 해 오다 보니 평가를 받는 쪽 입장도 소시오패스가 아니라면 일정 수준 헤아릴 수 있다. 자신들이 정말 좋은 제품을 내놓았든 그렇지 않았든 부정적인 평가에는 척수반사적으로 기분이 나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굳이 척수반사적으로 반응해야 할까? 굳이 급조한 것처럼 생긴 계정으로 역시 급조한 것 같은 해명문을 보내고 명예훼손까지 들먹여야 할까?
부정적인 평가를 놓고 명예가 훼손됐네 고소를 하겠네 등등 협박에 가까운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그네들이 파는 와플처럼 너무나도 격식이 없는 나머지 음식평론가로서 나의 명예가 훼손되는 듯한 느낌을 받아 불쾌하기 이를 데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