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드징어- 이름만 노답
이름만 아니었다면 나는 이 오징어를 훨씬 빨리 맛보았을 것이다. 백화점에 갈 때마다 눈에 들어왔는데 ‘저런 노답 이름의 상품이 진지하게 맛있을까?’라는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어 그냥 돌아오곤 했다. 그대로 지나치기를 몇 주, 호기심을 발판 삼아 이름 탓에 생긴 심리적 장벽을 넘고 드디어 사서 맛을 보니 이것은 귀해고 맛있는 오징어이신 것이었다.
이제 치아 상태 탓에 완전히 말린 오징어는 꿈도 못 꾸고 반건조도 웬만해서는 손을 못 대는 가운데 이 분들께서는 조금 과장을 보태 생물보다 더 부드러우셨다. 간은 그냥 먹으면 조금 짭짤하고 맥주 안주로 먹으면 딱 균형이 맞을 수준이시다. 역시 비슷한 시기에 산 ‘황비홍 땅콩’과 같이 먹으니 맥주가 오히려 음미에 방해가 되는 느낌이기까지 했다. 아쉽게도 포장지에서 언급하는 편백나무향은 맡지 못하였지만 대세에는 지장이 없을 것 같다.
한 백 마리쯤 사다 쟁여 놓고 매일 하나씩 뜯고 싶은 욕구를 억누를 수 없는 가운데, 아직도 ‘누드징어’라는 이름의 괴기함은 이해를 못하고 있다. 최대한 양보해서 ‘껍질을 벗겨 가공해서 그런가?’라고 생각해 보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대체 이 오징어만 왜 누드여야만 하는가? 그렇게 따지면 사실 시중의 모든 오징어가 누드징어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옷을 입혀 팔리는 오징어가 있나? 다른 해산물은 어떤가? 아예 껍질까지 벗겨 부위별로 토막내어 팔리는 육고기류는? 과채류는? 소비자는 과연 ‘누드징어’라는 이름을 보고 이 제품에 더 호감을 느낄까? 맛있어서 먹기는 먹지만 도저히 이해를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