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맛 첵스-민주주의의 역한 맛

파맛 첵스가 동네 홈플러스에 입고되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터덜터덜 걸어 한 상자를 사왔다. 그리고 그날 밤 350그램들이 한 상자를 우유에 말지도 않고 야금야금 다 털어 먹었다. 왜 그랬을까? 다음 날 내내 스스로 납득할 만한 이유를 떠올리려 애를 써 보았다. 하지만 머릿속 깊은 곳 어딘가에서 밀려오는 가짜 파 향에 정신적인 구역질이 끝없이 몰려와 이유는커녕 일상 생활조차 일정 수준 불가능했다.

사태(?) 당시 국내에 없었던지라 파맛 첵스를 둘러싸고 벌어졌다는 그 부정의 현장을 체감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나의 관심은 맛 자체에 더 쏠렸다. 과연 이것이 먹을만한 음식일 수 있을까? 몇 시간 만에 한 상자를 야금야금 다 먹었으니 네가 몸으로 그렇다고 증명한 것 아니냐, 고 말하면 그럴싸한 반론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나의 의식이 끊임없이 경고 메시지를 보냈었다는 변명만은 해야겠다. 이거 이상해.더 먹지 마, 그만 먹으라고!

좀 더 정확히 분석하자면 한 상자를 다 먹게 한 원동력은 굳이 파맛 첵스가 아니라도 깃들어 있을 단맛 덕분이었다. 파의 맛과 향은 ‘너는 지금 무엇인가 이율배반적인 행위를 하고 있다. 너는 너를 해치고 있다’라는 메시지를 보내 단맛을 즐기는데 오히려 방해가 되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단맛과 알리움 계열 채소가 원래 어울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피자빵, 소시지 빵 등 파나 양파를 쓰는 빵의 반죽은 식빵의 그것이라도 대체로 단맛이 두드러진다.

결국 파가 문제라기보다 이 시리얼에 쓴 향이 싸구려라서 문제인 것은 아닐까? 아니면 시리얼의 단맛이 이런 수준이 아니었다면? 차라리 짠맛 바탕에 파맛이 깃들었다면? 이렇게 고민을 하기 시작하면 그제서야 깨달음이 온다. 내가 말려 들었구나. 여기까지 생각하는 게 아니구나. 그럴 이유가 없구나.

그러나 깨닫고 나서도 머릿속 깊은 곳에서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는 역한 파 향처럼 의구심은 끊이지 않는다. 대체 어쩌자고 세상은 이런 물건을 만드는 지경까지 추락했는가? 빌어먹을 민주주의가 그렇지 않느냐고 말한다면 미친놈 논리적인 비약이 너무 심한 거 아니냐고들 하겠지만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역한 현실과 빌어 먹을 파맛 첵스의 존재는 뭔가 죽이 너무 잘 맞아 떨어진다.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