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키즈 존과 유리 멘탈
심심하면 한 번씩 노키즈 존 이야기가 나온다. 노포의 개선과 함께 보고 들을 때마다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전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고, 여러 사람들이 여러 각도에서 노키즈 존이 문제인 이유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사실 음식의 측면에서 보면 아주 간단하다. 음식 잘 하는, 또한 제대로 하는 실무자라면 노키즈 존 같은 것 만들지 않을 것이며 그런 서비스의 제한(결국은 차별)이 음식을 배우고 만드는 이유와도 상치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각 분야별로 한국 혹은 서울에서 가장 잘 한다는 음식점을 종류별로 한 번 떠올려 보라. 노키즈 존을 운영하는 곳은 없을 것이다. 리틀 앤 머치는 노키즈존이지만 메종 엠오는 아닌데, 그 둘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는가?
사명감이라고 말하면 너무 거창하고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 자제하더라도, 잘 하고 싶을 뿐만 아니라 정말 제대로 하는 실무자라면 설사 속으로는 그러고 싶다고 하더라도 손님을 가려 받는다거나 어린이의 입장을 막지 않는다. 그것은 음식과 서비스라는 두 업종이 각각 지닌 특성이 맞물려 돌아가면서 자아내는 일종의 태도이다. 음식을 태도로 만드는 것은 당연히 아니지만, 나는 이런 태도를 갖추지 못했다면 특히 한국의 현실에서는 음식을 잘 만들 수 없다고 이제는 믿게 되었다. 그것은 경제적인 성공과는 또 다른, 조금 거창하게 말하자면 자기 객관화와 이를 통한 내면의 기준 준수 욕구이다. 이런 욕구 없이 자신의 수준을 끌어올릴 수는 없다. 굳이 음식이 아니더라도 그렇다.
노키즈 존에 대해 제대로 된 그림을 만들어 내기 위한다거나, 책임을 지기 싫어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들을 많이 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맥락에서 노키즈존이란 결국 수련이 덜 되고 그로 인해서 예상 및 대응 능력이 떨어지는(‘유리 멘탈’) 실무자가 사회적으로 가장 만만한 요인을 선제차단해 자신을 보호하려는 방편으로 본다. 제한된 공간에서 제한된 메뉴, 제한된 손님을 받아야 간신히 자신의 최선 아닌 최선을 팔 수 있을 만큼의 수련 밖에 쌓지 않았으니 세계의 불안한 평형을 깨트릴 수 있는 요인 가운데 가장 만만한 어린이와 그 (부)모만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실제로는 40대 이상이 그것도 어린이와 달리 더 의식적으로 더 큰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을 게 뻔한데 그렇다고 해서 그 계층의 업장 출입을 과연 “정책”으로 막을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결국은 어찌어찌 기술은 간신히 배웠지만 철학은 배우지 못한 실무자들이 말도 안되는 노키즈 존이라는 것을 만들고 퍼트린다고 믿는다. 유명한 곳에서 유명한 셰프의 이름을 받으며 배우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셀러브리티 셰프’의 시대에는 정말 많은 요소로부터 자신의 철학을 형성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셰프들의 전기 같은 것만 읽더라도 그들의 인간 혹은 도덕적인 측면과 별개로 직업인으로서의 철학 등을 충분히 배울 수 있다고 믿는 입장이라 이러한 부재는 그저 놀라울 뿐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음식을 보면 수긍을 할 수 없다. 이러니까 음식이 전반적으로 형편 없을 수 밖에 없다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두 가지 짚고 넘어가자. 첫째, 인권위는 국가인권위원회법 제 2조 제 3호를 근거로 식당 사업주의 노키즈 존 운영이 아동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라고 규정했다. 둘째, 노포의 개선에 대해 입이 닳도록 이야기하고 있지만 노포 혹은 한식당 가운데 노키즈 존을 표방하는 곳은 없다. 요식업도 사업이고 당연히 돈을 벌어야 한다. 하지만 대체로 그렇게 돈을 벌고 싶어하는 곳들 가운데서 옥석을 가려주는 요소는 돈 벌기 밖의, 비율로 치자면 적은 철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