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도비빔면과 변성전분
모처럼 팔도비빔면을 만들어 먹다가 의문이 밀려 왔다. 비빔면의 위상은 양념장에서 온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데, 그렇다면 면은 어떤가? 무엇보다 양념장의 걸쭉함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단점을 느낀다. 물기를 최대한 털어내면 꽤 뻑뻑하고, 잘 비벼지라고 물기를 좀 남기면 양념장의 간이 흐려진다. 매운맛의 영항력은 짠맛이 쥐고 있으므로 간이 흐려지면 맛의 균형이 깨진다. 한편 물기를 작심하고 열심히 털거나 체에 받친 채로 두면 면이 바로 붙고 엉기기 시작한다. 이래저래 팔도비빔면의 위상에 딱 들어맞게 제대로 비벼내기가 은근히 어렵다.
그렇다면 이 면에는 변성전분이 첨가되지 않은 것일까? 포장의 뒷면을 확인하니 주재료는 밀가루와 감자전분, 지방(팜유)와 간수, 그리고 구아검. 역시 변성전분이 빠진 면이었다. 타피오카의 전분을 변성 modified해서 만들어 ‘변성전분’인 이 첨가물은 버블티의 ‘펄’이나 찰깨빵의 ‘찰’을 담당하는 데서 알 수 있듯 쫄깃함, 특히 온도 상승 속에서 질감의 변화를 일정 수준 통제해준다. 요즘은 대체로 국물이 있는 면에는 쓰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고추장에 비벼 먹는 소면을 모사하는 데서 출발했다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지만, 모사에서 대량생산화로 넘어가는 과정의 한 축은 다른 조리 기술을 지닌 불특정 다수의 실패 확률 줄이기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질감은 대체로 첨가물로 보강한다.
이렇게 따지면 비빔면의 질감 혹은 탄력도 조금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혹시나 싶어 컵 비빔면을 찾아보니 글루텐과 변성전분이 들어있는 걸 보면 조리의 맥락과 여건에 따라 질감의 강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제조사도 알고 있다(모를리가 있나). 그렇다면 도배를 해도 될 만큼 끈끈한 양념장과 조리시간이 짧고 가늘기까지 한 면의 조합을 생각해볼때, 또한 한국 모든 음식의 질감이 쫄깃함의 영광으로 무한 수렴한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무엇인가 조치가 필요하다고 본다.
*사족 1: ‘괄또네넴띤’ 등 온갖 변주를 잘 내놓는(혹은 사골처럼 우려 먹는) 팔도 비빔면이라면 감동란 같은 계란과 패키지 상품도 내놓아야 하지 않을까? 비빔면과 삶은 계란은 천상의 조합인데 계란 삶기가 비빔면 만들기보다 더 귀찮은 일이기도 하고, 뻑뻑해지도록 삶거나 구운 통상적인 계란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
*사족 2: 비빔면에 오이채가 빠질 수 없다고 굳게 믿는 사람으로서 오이를 절이는 게 면의 굵기 및 질감과 더 잘 어우러진다고 역시 굳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