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백화점 죽향-올해의 국산 딸기
‘올해의 딸기’ 같은 걸 과연 매년 꼽을 수 있는지 아직은 확신이 없지만 어쨌든 올해는 그럴 만한 것을 찾았다. 현대백화점에서 산 죽향으로, 열 개 들이 13,000원(5개 들이 8,000원)이었다. 무엇보다 각 과실에서 맛의 완결이 이루어진다는 점이 훌륭했다. 입이 닳도록 말해왔듯 한국의 과일(혹은 채소까지)은 시간의 축 맨 앞에서 점처럼 단맛 위주의 자극이 잠깐 피었다가 마무리를 못하고 사라지는 경향이 있다. 딸기는 사실 그런 flavor profile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밍밍한 단맛이 잠깐 스치고 지나간 다음 물이 쏟아진다.
이 딸기는 그렇지 않았다. 뭉개지지 않은 단맛이 그야말로 딸기의 모양새처럼 출발점보다 조금 뒤에서 피어오르고 신맛이 뒤를 이어 딸기 밑둥과 같은 형태로 조금씩 여운을 남기며 사그라든다. 내 맛이냐 네 맛이냐를 따지기 이전에 시간 축을 어느 정도 잡고 흘러가는 맛이랄 것이 존재한다는 점을 높이 산다. 함께 파는 다른 품종-역시 소포장으로 고급화를 추구하는-은 전형적인 한국 딸기와 다를 바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한국의 딸기는 어쨌든 일본의 것과 엮어서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정말 채소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신맛이 강하고 단단한 미국 혹은 유럽 딸기에 비하면 강한 경우 캐러멜화된 설탕의 그것과 흡사한 표정과 강도의 단맛-이를테면 일본에서 개당 6천~1만원 수준에 팔리는 것들-을 내고 주변을 미약한 신맛이 둘러싸며 균형을 (간신히) 잡아주는 구성이다. 둘 가운데 어떤 것이 더 우월한가 따져보는 건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현재 한국 딸기의 맛이 더 인위적이며 다듬기가 어려운 맛이라는 점만은 짚고 넘어 가고 싶다. 다만, 지난 10년 동안의 딸기를 머릿속에서 휘리릭 넘기며 되짚어 보면 맛은 점차 나아진다고 생각한다.
경제적인 여건이나 지출관 등은 모두 다르지만 이게 1개에 1,300원이라면 감히 싸다고 말하고 싶다. 이런 딸기가 있다면 어중간하게 비싸지만 어중간한 맛을 내는 것들을 피하고 ‘투 트랙’으로 갈 수 있다. 동네 마트 등에서 대강 파는 딸기를 대강 사서 채소처럼 먹는 가운데 소량의 고급으로 종종 방점을 찍어주는 것이다. 크기도 방사선이나 스테로이드 같은 걸로 뻥튀겨 거대해진 느낌이 아니고 딱 적당하다. 고급임을 입증하기 위해 그야말로 부자연스럽게 클 필요 없다. 딸기 뿐만 아니라 모든 과일, 모든 식품이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