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카롱 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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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변한 밥집 하나도 없는 동네에 마카롱 전문점이 들어섰다. 밥은 안 먹어도 마카롱은 먹는다는 의미인가? 인기가 좋은지 어느날 오후에 들렀더니 딱 한 종류만 남기고 품절 상태였다. 남은 것의 이름은 아름답게도 ‘마약 옥수수’였다.

‘필링’이 두꺼워지다 못해 ‘버거사지 십층석탑’처럼 온갖 것들을 쌓아 올린 괴물들이 쏟아져 나오는 현실이니 사실 이 정도 두께의 마카롱을 과연 ‘뚱카롱’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확신이 없어질 지경이다. 하지만 시각을 넘어서 미각으로 판단하면 확신이 생긴다. 이것도 영낙없는 뚱카롱이다. 필링은 버터크림 같은데 단맛도 짠맛도 두드러지지 않는다. 좋게 말해 버터 ‘크림’이지만 사실 그냥 버터에 더 가깝달까. 부드럽게 녹아내리기 보다는 살짝 굳은 채로 끝까지 머물러 있는 질감도 딱히 도움되지는 않았다.

필링이 이 정도만 두꺼워져도 껍데기의 의미는 증발해버린다. 사실 엄청나게 생각이 필요한 문제도 아니다. 식빵 두 쪽에 잼 한 통을 다 쏟아 부어 샌드위치를 만든다고 생각해보자. 빵은 압도되어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마카롱이라면 기술적인 난이도를 생각해볼 수 있다 껍데기와 필링 가운데 어떤 것이 더 만들기 어려운가? 껍데기는 계란 흰자를 끓는 시럽을 부으며 올려 단백질 구조를 고정시킨 다음 아몬드 가루를 섞어 같은 크기로 짜서 말렸다가 오븐에서 수분을 증발시켜 만든다. 필링은… 버터크림/가나슈/잼 등으로 껍데기에 비하면 공정이 훨씬 단순할 뿐더러, 무엇보다 모양을 만들 고정시켜야 한다는 부담이 전혀 없다.

그렇다면 맛의 주도권은 과연 어느 쪽이 쥐고 있는가? 머랭에 단맛을 적극적으로 불어 넣고 아몬드 가루로 맛과 구조를 함께 잡아주므로 껍데기쪽이 가지고 있다. 잘 만든 마카롱은 껍데기 자체가 충분한 맛을 지니고 있는 가운데 필링이 껍데기 사이에서 촉촉함과 맛을 보충한다. 그러나 이미 전형처럼 굳어져 버린 뚱카롱은 껍데기와 필링의 맛이 모두 희미하다. 최선의 경우라면 단 한 개로 디저트 욕구를 바로 충족시켜주는 디저트가 마카롱인데 뚱카롱에게 그걸 기대할 수 없다.

언제나 말해왔지만 외국음식의 한국화 대부분은 다음의 사고를 통해 이루어진다. 맛의 정체성을 이루는 요소 혹은 공정 등을 이해 못하기 때문에 아무 것이나 채워 넣는다. 이는 결국 맛이라는 보이지 않는 요소로 자신의 음식을 차별화할 줄 모른다는 의미이니 결국 눈에 보이는 요소를 강조함으로써 다른 것을 만든다. 피에르 에르메와 라뒤레는 이미 2-3년 전에 철수했고, 마카롱이든 뚱카롱이든 어디에서나 사먹을 수 있는 현실이지만 실제로 맛을 충족시켜주기 위한 목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맛있는 마카롱 못 먹는다고 죽을 것은 아니지만, 이만하면 지옥 아닐까.

맛있는 빵 없이 좋은 샌드위치(혹은 햄버거)를 만들 수 없고, 제대로 된 만두피 없이 만두는 맛있을 수 없다. 그리고 이 둘은 현재 한국 음식 문화의 현실이다. 그런데 마카롱은 아예 필링만으로는 존재할 수가 없는 음식이다. 과연 이런 현실이 바뀔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