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 내비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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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였더라, 2011년이었던가. 샌프란시스코부터 차를 빌려 포틀랜드를 거쳐 시애틀까지 올라가는 열흘 남짓의 여정을 계획했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해서 차를 빌리는데 ‘오래 빌리니까 기름값 덜 들게 업그레이드를 해 주겠다’며 미니를 선심 쓰듯 내주었다. 차에는 문외한이고 관심도 없으니 ‘딱딱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런가보다 넘겨왔었는데 실제로 몰아보니 정말 너무 딱딱했다. 그런 가운데 내비게이션이라고 추가금을 내고 빌린 건 80년대 게임 스크린 같은, 조악한 3차원 영상이 나오는 화면을 모래 같은 것이 담긴 주머니로 떠받들어 대시보드에 그냥 올려 쓰는 알 수 없는 물건이었다.

그래서 누군가가 차를 처분하며 내비게이션을 처리할 건데 쓰겠느냐는 물음에 감사하며 덥석 물 수 있었다. 이미 연식이 느껴지는 물건이었고 실시간 교통 정보 같은 걸 알려줄 역량까지는 절대 가지고 있지 않았던 물건이었지만 5년 이상 정말 감사하는 마음으로썼다. 어차피 한국을 떠나기 전에는 면허만 따 놓고 운전은 거의 하지 않았던지라 길을 알려준다는 사실 만으로 꽤 쓸모가 있었다. 다만 그런 가운데 2009년에 이미 개통되었던 용인강남 고속도로를 달리면 설국 같은 허허벌판을 떠 다니는 걸로 나왔을 정도로 업데이트가 안 되었다는 점이 좀 걸렸다. 소유주가 메모리로 회사의 웹사이트에서 다운로드를 받아 업그레이드하는 설정이었는데 내가 첫 번째 소유주가 아니라서 그런지 불가능했다. 결국 몇 년 뒤 가벼운 접촉사고를 처리하면서 샵에 요청해 새로운 SD 카드를 끼워 어찌어찌 업데이트를 하고 또 한참을 썼다.

돌아와서 빚이라도 갚듯 전국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때 언제나 길을 알려주었던  내비게이션은, 참으로 신기하게도 통영에만 가면 다른 곳에서는 절대 하지 않는 관광지 안내 및 설명을 하는, 이스터 에그 급의 비기를 선보였다. 고장 같은 건 나지 않았는데, 안타깝게도 유리에 고정시키는 빨판이 어느  시점부터 너무 잘 떨어지기 시작했다. 마침 화면이 큰 스마트폰으로 바꾼 시기여서 그렇게 묵은 내비는 일선에서 물러나 차 트렁크의 상자에 담겨 있다가 오늘 우연히 발견되어 작별을 고하게 되었다. 고마웠습니다. 같이 통영을 적어도 세 번은 같이 갔었죠. 충무로의 날리는 벚꽃 기억하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