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 평화국수-실상은 ‘울화국수’
그래쿠나, 무서운 쿠믈 쿠었쿠나.
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평화국수에서 일어나며 생각했다. 인천국제 공항 제 2 터미널에는 평화옥만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 평화옥이 음식에 궁금한 누구라도 찾아와 먹을 수 있도록 공항 건물 로비에서 접근 가능한 반면, 평화국수는 진정한 공항 이용자를 위해 면세구역 내부에 자리 잡고 있다. 물론 아이돌 팬의 접근 방식을 응용해 출국하지 않고도 미슐랭 별 셰프가 해석한 국수를 맛볼 수는 있다. 무작위로 비행기표를 사서 입국 수속까지 밟아 면세구역에 들어가 평화국수에 들러 한 대접 먹고 표를 취소하면 되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실제로 권하지는 않겠다. 평화국수는 아이돌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상 ‘울화국수’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렇다, 울화를 치밀어 올리는 국수라는 말이다.
국수를 딱 받아 들고 바로 무릎을 꿇고 싶었다. 워낙 음식점 공간이 좁아 자제했지만 ‘죄송합니다. 먹겠다고 나선 제가 잘못했습니다. 돈을 쓰겠다고 생각한 제가 잘못했습니다’라는 죄책감이 바로 몰려와 참을 수 없었다.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여느 프랜차이즈 수준의 음식이 공항(과 미슐랭 별 셰프?)의 프리미엄을 붙여 팔리고 있었다. 사진을 올렸더니 ‘트친’이 빛의 속도로 ‘깻잎은 시비 걸려고 썰어 올린 것 같아요’라는 한탄 섞인 리액션을 날린 깻잎국수는 정말 그냥 평범도 못한 국수에 우악스럽게 반으로 썬 깻잎을 올렸을 뿐인데 12,000원이다. 이 깻잎이 정녕 다른 칼국수류의 음식에 비해 어떻게 다른지 알 수가 없고 국수 자체도 스스로에 대해 혼란스러워 보인다. ‘저… 당신은 어떤 음식입니까? 깻잎은 또 뭐죠?’라는 눈물에 그간 참았던 설움의 눈물을 왈칵 터뜨릴 것 처럼 혼란스럽다. 또 다른 음식은 국수와 흰 떡이 어색한 가짜 미소를 지으며 공존해 한층 더 기기묘묘했다. 그리고 이들 모두에 싱거운 가운데 조미료의 감칠맛이 끓어 넘치는 생배추가 딸려 온다. 가격과 무관하게 이곳의 음식은 끼니로서도 역할을 못한다.
과연 여기와 평화옥 가운데 어디가 더 괴로운 음식점일까? 정말 우열을 가릴 수가 없는 가운데 목에 칼이라도 들어와 생존을 위협받는 맥락 같은데 놓여 강제로 꼽아야 한다면 승자(패자?)는 평화국수일 것이다. 평화옥은 그래도 평양냉면이라는 엄격한 레퍼런스 탓에 아직 망가질 여지가 조금 더 남아 있는 한편 면세지역 밖에 자리 잡았으니 피하기도 더 쉽다. 근처의 파리크라상에서 파는 샌드위치가 놀랍게도 진짜 미슐랭 음식처럼 느껴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평화국수는 칼국수나 육개장 같은 음식을 능멸하듯 가벼이 레퍼런스로 삼는 한편 면세구역에 있으면서도 근처에 비슷한 종류의 음식을 파는 곳이 없다. 따라서 비행기를 떠나기 전 굳이 한식을 먹어야 되는 이들의 선택을 받겠지만 그와 동시에 조악함으로 다들 그대로 고국을 떠나 다시 돌아오고 싶지 않도록 결심하게 만들 확률이 아주 높아 더 나쁘다.
생각하면 할 수록 참 신기하다. 분명히 오랫동안 음식을 그것도 직접 했음이 분명하고 책도 여러 권 냈으며 비싸지 않은 음식의 최소한의 맛은 기술적으로 추구하는, 요리사면서 셰프임이 확실한 사람은 마치 갈수록 떨어지는 한식의 수준에 모든 책임을 지는 원흉이라도 되는 양 공격을 받는다. 그런 가운데 언제나 세계적으로 논란의 대상인 미슐랭 가이드의 사각지대 안에서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음식을 정말 꾸준히 내놓는 이는 마치 한식의 뿌리로 접근이라도 하는 양 대접을 받는다. 애초에 ‘모던 한식’이라는 것이 뿌리도 줄기도 없는, 심지어는 장르도 아닌 파편적 요리의 나열임을 감안한다면,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는 절대 가능하지 않은 텔레포트가 아니라면 평양냉면과 칼국수와 육개장이라는 ‘뿌리’로 돌아올 수가 없다. 게다가 사실은 뿌리라고 설정한 지점 혹은 음식 또한 모던 한식의 자충수인 ‘다르기 위한 다름’을 적극 활용해 레퍼런스로 삼은 원래의 음식보다 열악해진다.
이 모든 ‘뿌리로 돌아가기’의 목표가 국물 음식임에 주목한다. ‘한식의 품격’에서 한국식 국물 음식의 문제에 대해 분석했더니 문해력이 좋지 않은 분들께서 ‘한국’ 혹은 ‘국물’의 부정으로 이해하고 개탄하시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너무나도 죄송스럽지만 둘 다 아니고, 어쨌든 ‘맛을 물에 우려내기’는 세계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조리 문법인 가운데 왜 현재 한국에서 한국의 고유한 것이라 통하는 국물이 대체로 멀겋고 별 맛이 없는지를 지적 및 분석했을 뿐이다. 재료든 기술이든 결핍을 부피 속에 감추려는 습관이 배어 있으니 문제라는 게 요지인데 미슐랭 셰프의 이름으로 나오는 국물 또한 여기에서 애초에 벗어나려고 하지 않음에 나는 개탄을 금치 못한다.
이렇게 길게 이야기했지만 따지고 보면 이 모두는 결국 나의 잘못이다. 음식점은 그저 존재할 뿐이지 나에게 강제로 먹으라고 한 적이 없다. 내가 가서 먹었으니 나의 잘못이다. 끼니를 부실하게 먹고 공항에 온 나의 잘못이고, 다른 음식이 먹고 싶지 않은 나의 잘못이다. 하필 음식값 12,000원을 충분히 쓸 수 있는 형편이어서 선택한 나의 잘못이다. 한국인으로 태어난 나의 잘못이다. 한국인이라 아무리 참고 참아도 때로는 한식이, 김치가 먹고 싶은 나의 잘못이다. 다 내가 무조건 잘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