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마을 청국장과 레시피
오랜만에 청국장이 먹고 싶어져 초록마을에 갔다가 할인 중인 세 팩 묶음을 사왔다. 상자에 담아 놓았으니 공간이 충분한데도 끓이는 법, 즉 레시피에 대한 언급이 단 한 줄도 없어 놀랐다. 청국장의 개별 포장에는 딱지조차 붙어 있지 않았다. 물론 나야 어떻게든 끓여 먹을 수있으니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청국장을 처음 끓이는 사람이라면 어떨까? 조리를 전혀 해본 적이 없는데 이 청국장으로 걸음을 내디디려는 경우라면 어떨까? 청국장의 양은 이미 상수이니 그에 비례한 물의 양, 불의 세기와 끓이는 시간 정도만 표기를 해 놓아도 상황은 극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
먹는 이가 조리를 반드시 해야만 하는 제품-반조리 포함-에 레시피가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으면 놀란다. 무엇보다 그게 무엇이든 레시피 없이 만들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과연 이 청국장이 문서화된 레시피 같은 것 없이 개인의 감에만 의지해 만들어진 것일까? 그럴리 없지만 그렇다면 진짜 문제일 수도 있다. 정해 놓은 맛의 구간이 없으니 같은 제품을 사더라도 맛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자질구레한 부재를 볼 때마다 레시피를 향한 선입견을 곱씹는다. 레시피는 영어 표현을 빌자면 ‘돌에 각인된’, 변치 않는 원리나 법칙이 아니다. 화이트보드에 마카로 쓴 출발점이자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며 전파를 위한 기록이고 조리의 두려움을 없애주는 바탕이다.
다시 청국장으로 돌아와서 생각해보자면 냄비의 크기-물의 양-화력-조리 시간 정도만 언급해 줘도 완전히 백지에서 음식을 만드는 두려움을 품지 않아도 된다. 조리 능력의 부재가 사회문제의 수준으로 심각하다면, 이러한 인식이나 정보의 부재 또한 영향을 미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조리에서 ‘감’의 역할은 아직도 무시할 수 없지만, 그걸 쌓기가 극도로 어려운 우리의 현실도 감안해 대응할 필요가 있다.
*사족: 요즘 초록마을 당근이 엄청나게 맛있다. 물크러지지 않도록 오븐에 굽거나 은근한 불에 조리면 훌륭한 요리에 가까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