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주의 요리책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자마자 넋이 나가 버렸다. ‘대체 무슨 약을 빨았기에 이런 걸 쓰셨어요?’라는 기분이 폭풍처럼 밀려왔다. 책을 펼치자마자 1도 봐주지 않고 들이 닥치는 프롤로그 격의 ‘자살을 막은 저녁식사’를 읽자 여전히 삶이 무료할 때마다 한 번씩 찾아서 보는 일본의 요리쇼 ‘철인 요리왕(아마도 그 모든 요리 대결 쇼의 조상?)’이 바로 생각났다. 진행자인 의장과 책의 저자인 마리네티가 강력한 허풍의 파워를 공유한달까.
미래주의는 1900년대 초 자동차, 비행기, 속도, 전기, 알루미늄, 가벼움, 전투력을 찬양하는 선언문과 함께 출현했다. 이탈리아의 불가역적 현대화를 염원하며 예술 분야의 혁신을 주도했지만 그럼에도 대중의 일상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이에 갑갑증을 느낀 수장 마리네티는 예술과 삶의 총체적 변혁을 이뤄낼 매개체로 요리를 선택해 1930년 ‘미래주의 요리 선언’을 발표하고, 1932년 ‘미래주의 요리책’을 펴낸다. 그리고 어떤 음식도 아닌 파스타의 퇴출을 주장한다. 전통 요리에 대한 반역 없이는 이탈리아의 진보도 없다고 주장하면서 수십여 가지의 완전히 새로운 음식과 식사법, 그에 걸맞는 장식과 시나리오를 제안한다.
하여간 맨 정신에 번역하기 쉬운 책은 아니었는데, 과정 내내 미래주의 요리의 미래, 즉 현재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정확하게 미래주의의 영향을 받았다고는 규정할 수 없지만 책에서 소개하는 일종의 공감각 지향의 요리와 요리법은 현대요리에서 상당 부분 구현되고 있다. 그러한 점을 소개하고자 나도 약간 정신을 놓고 픽션에 가까운 역자의 말을 썼다. 일을 십 년쯤 하다 보니까 건축과 음식의 중간 쯤에 (다소 엉거주춤하지만) 서 있는 책도 만나게 된다. 일곱 권째의 책(저서 2, 역서 5)인 ‘미래주의 요리책‘으로 일단 2018년을 마무리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