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 서초대가-육회와 비빔밥의 ‘따로 또 같이’ 과제
일요일 식사 때를 넘긴 시각에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별 대안 없이 선택한 저녁이었다. 맛이 없다 못 먹겠다 이런 것도 아니었고 부득이한 선택이었으므로 불평할 생각은 없고, 다만 고질적인 육회 및 비빔밥의 과제에 대해 잠깐 생각해보았다.
육회의 질감: 사실 비빔밥에서 육회라는 건 맛보다 분위기를 불어 넣는 고명 이상도 이하도 아닌지라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게 좋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을 멈출 수는 없다. 대체로 한국의 육회라는 음식이 잘 씹히는가? 부위와 상태, 써는 방식 및 치수에 따라 갈릴텐데, 날고기라는 것이 칼만 써서는 일정 수준 이하로 자르기 어려울 수도 있음을 감안하면 어떤 육회는 잘 씹히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이것이 그러했다.
그래서 고기를 일단 얼렸다가 썰어 육회를 만드는 경우가 흔한데, 이 자체는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애초에 고기를 살짝 얼려 썰기 좋게’각’을 불어 넣는 요령은 한국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짜 문제는 이후의 처리이다. 상당수의 육회가 고기가 얼어 있는 상태에서 양념을 해서 내는데, 이것이든 혹은 녹은 뒤의 상태이든 무엇이 육회의 이상형이기를 따지기 이전에 대체로 너무 빨리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변해버려서 어느 쪽도 즐기기 힘들다.
달리 말해 사각거리며 시린 육회가 몇 젓가락 뒤에는 축 늘어지면서 양념의 맛도 흐려지는 상태로 너무 빨리 변해버린다. 과연 이런 육회의 대책이란 무엇일까? 똑같이 냉동실에서 각을 잡아주는 서양식 날고기 조리법은 이후 냉장실에서 보관해 얼지 않은 상태를 추구하고, 한결 더 나아가 상온에 가까운 온도로 내는 것을 선호한다. 일본식의 숙성 생선이 어느 정도의 온도대를 추구하는지 생각하면 이해가 더 쉬울 것이다.
육회의 입자: 비빔밥에 오르는 나물은 대체로 채를 쳐 준비한다. 몇몇 이파리 채소의 (조리 후) 기본 형태 등을 생각해본다면 일단 미적인 측면에서 의미가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과연 이러한 형식이 럭비공처럼 가운데가 둥근 타원형의 쌀이 모인 밥과 조화를 잘 이루고 있는 걸까? 물론 쌀은 집합적인 밥의 형태로 먹기는 하지만, 재료의 물성이나 도구(숟가락)의 형태 등을 감안하면 채소의 일반적인 가공 형태와 어울리지 않는다. 게다가 이런 상태가 질감의 조화 면에서도 잘 어울린다고 보기 어렵다. ‘비빔’의 물리적인 조건에 대해서는 공감대를 거치는 과정이 좀 더 혹독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말하자면 ‘비빔’의 재평가), 그와 별개로 이런 형식의 채소와 저런 형식의 밥이 정말 잘 ‘비벼’지는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품고 있다.
그리고 이는 앞에서 ‘질길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 고기에 적용할 때 한층 더 두드러진다. 채소도 이렇게 썰어 놓으면 밥과 어울리지 않는다면 고기는 더 안 어울릴 수 있다는 말이다. 고기를 부드럽게 먹기 위한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되었다는 ‘스테이크 타르타르’가 고기를 어떤 형식으로 조리 혹은 가공하는지 살펴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다. 비빔밥이라는 음식도 이제 유명세 만큼 흔히 존재하지 않는 현실인데, 이런 점은 고기를 얹든 아니든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맛과 질감 등등은 물론, 사실은 주방의 능률 향상과도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사족: 밥을 고추장으로 비볐는데 딸려 나온 선지국에 청양고추가 잔뜩 들어있다면 때로 사는 게 싫어지기도 한다. 세상이 꼭 이렇게 시련을 안겨야 되나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