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토스 콘스프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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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혼자 쭈그리고 앉아 사라진 치토스 콘스프맛을 추억한다. 물론 모두 나의 뱃속으로 사라졌으니 아쉽지는 않다. 하지만 확실히 슬프다. 무엇보다 당분간은 무서워라도 이것을 사먹는 일은 없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만남은 한없이 우연에 가까웠다. 어느날 밤 아무 생각 없이 편의점에 어슬렁어슬렁 갔다가 2+1 행사 중인 치토스를 발견했다. 당시에는 콘스프맛의 아름다움 같은 걸 몰랐으므로 그저 세 가지를 전부 샀다. 그러라고 2+1 행사를 하는 게 아닐까?

아니었다. 베이비 블루에 가까운 파란색이 마음에 들어 가장 먼저 콘스프맛을 뜯어 한 개를 먹고는 알았다. 이것은 콘스프맛만 세 봉지를 사라는 계시였구나. 행사가 끝나기 전에 나는 다시 편의점에 돌아가 콘스프맛 세봉지를 사왔으며, 마지막 봉지를 먹어 치우기 전에 인터넷을 뒤져 한 박스를 주문했다. 사실 군것질을 잘 하는 편도 아니고 과자를 자주 먹는 편도 아니며 박스로 주문해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대체 맛이 어떻기에? 옥수수를 일부 써서 옥수수를 모사하면 나는 바로 그 맛이다. 고소하고 달콤한 향이 도는 가운데 은근한 단맛을 찌르는 짠맛이 둘러싸고 있는데, 이것이 치토스 특유의 아삭함에 담겼다. 하루에 한 봉지 이상은 먹지 않았지만 한 박스 열 여섯 봉지는 정말 순식간에 사라졌고, 이제는 하루에 두 봉지씩 먹게 될 것 같아 주문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음식이지만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아삭함이 승화되다 만 느낌을 준다. 원료인 쌀가루 때문인지 아삭함 또는 바삭함이 끝에서 갑작스럽게 고개를 숙이며 마무리된다. 많은 대량생산 과자의 단점인 ‘뭉쳐 이에 달라붙기’가 맞물리면 이 미진한 듯한 아삭함이 더더욱 아쉬워진다. 물론 치토스 특유의 ‘스펙’을 충실히 따랐겠지만 작은 크기도 아삭함에 영향을 미친다. 가장 굵은 지름 2cm 안팎은 되어야 입에 넣고 앞니로 씹었을 때 기분 좋게 부서지는데, 대체로 개체의 지름이 절반 정도라 ‘씹는 맛’이 떨어진다.

내가 아침을 반드시 먹고 출근하는 직장인이었다면 옥수수맛 컵수프에 치토스 콘스프맛을 시리얼처럼 말아서 먹었을 것이다. 사실 먹으면서 이걸 이용해 일종의 언어 유희를 하는 파인 다이닝 셰프를 생각해보았다. 여름이 한창일 때 옥수수 수프를 끓여 치토스 약간으로 바삭한 고명을 얹는다. ‘콘수프 위의 콘스프(Corn Soup on Corn Soup)’라고 이름 붙이면 될텐데, 문제는 요즘 한국에는 수프를 끓일만한 옥수수가 없다는 점이며 사실 이미 한 10년 전에 현대요리에서 써먹어 이젠 흔한 수법이니 누군가가 새롭다고 들고 나오지 않는 게 차라리 나을 것이다.

마지막 한 봉지를 먹고 잠든 그날 밤, 나는 꿈을 꾸었다. 책이 엄청난 대박을 터뜨리고 나는 그 기쁨을 주체하지 못한 나머지 치토스 콘스프맛을 한 컨테이너쯤 사서는 트럭에 싣고 전국방방곡곡을 돌며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각 봉지마다 대박난 책-과연 무엇일 수 있을지 꿈도 꿀 수 없다-의 표지를 스티커로 붙여 놓았다. 치타도 한 마리 데리고 다니면 한층 더 즐겁겠지만 그건 아무래도 별도의 인력을 고용하는 게 좋을 것이다. 맞는 코스튬을 찾을 확률도 아주 낮고. 크라잉과 너트는 함께 모여서 신기한 노래를 부르고 프리토와 레이는 함께 만나 치토스 콘스프맛을 만들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