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의 확산과 정착에 일조하는 음식
오랜만에 메종 엠오에 갔는데 마침 점심 때였다. 외식은 귀찮은 일이지만 그래도 끼니를 거를 수는 없겠지. 그런 생각으로 골목 끝의, 그럭저럭 먹을만한 바지락 칼국수 집을 찾아가다가 곰탕과 진주냉면을 파는 가게를 발견했다. 평양도 함흥도 아닌 진주 냉면이라니. 호기심에 메뉴를 충동적으로 변경해 자리를 잡고 물냉면을 한 그릇 시켰다. ‘산하옥’이라는 곳이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빙초산 그득한 국물맛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면의 질감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육개장 사발면 같은 즉석 라면류의 면을 ‘알 덴테’로 익힌 질감이었다. 애초에 맛있는 면도 아니지만 그것마저 이상하게 익혔다는 말이다. 함흥이든 평양이든, 혹은 기억이 좀 희미하지만 진주든, 대체 어디에서도 냉면이라 이름 붙은 음식에서 쓰는 면의 질감이 아니었다. 그만 먹고 나가야 되나? 격하게 운동을 마친 뒤라 배가 고파서라도 일단 면을 꾸역꾸역 건져 먹었는데, 마지막에서야 확실해졌다. 이거, 건면을 삶았군.
대접을 내려놓고 나가며 반쯤 열린 주방을 들여다 보았다. 제면 설비가 보이지 않았다. 계산하며 물어보았다. 그런데, 면은 뽑으시는 건가요? 아뇨, 받아 씁니다. 대체 냉면의 면을 ‘받아 쓸’ 수 있는 것이기는 한가? 그런 의문이 목구멍으로 치밀어 올라왔지만 돈은 버렸다고 생각하면 되고 다시 안 가면 그만이니까. 그렇게 돌아서서 나왔다.
늘 말하지만 모든 맛없는 음식이 다 똑같이 맛없지 않고, 모든 맛없음이 생활인과 직업인의 양쪽 갈래에서 똑같이 사람을 자극하지 않는다. 크게 보자면 철학, 기술, 재료 세 요인의 결핍이 맞물리는 정도에 따라 음식의 맛없음과 딸려 오는 처참함이 결정되는데, 셋이 한꺼번에 낮은 음식이 있다. 재료도 나쁘고 기술도 없지만 잘 만들고 싶은 생각도 없다.
직업인으로써 실패에 돈을 쓰는 것은 언제나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따라서 맛이 없어도 딱히 화는 나지 않는다. 하지만 생활인의 입장에서 허기를 못 메우거나 그래봐야 하루 세 번 뿐인 끼니의 기회를 터무니 없게 날려 버렸다는 사실에 분노를 품게 만드는 음식이 있다. 이런 냉면이 그렇고 궁극적으로는 지옥의 확산과 정착에 일조하는 음식이다.
어차피 돈은 버리면 되지만 이걸로 배를 채울 수 없으니 그냥 돈만 받으면 안될까? 아니, 애초에 ‘이왕 들어오셨으니 돈만 내고 가세요 사실 저희 음식 진짜 맛없거든요 잘 만들 생각도 없고’라고 솔직하게 말해주면 안되나? 그럼 ‘아이고 어차피 기분은 나빠지는 거니 그럴 수 있지만 배라도 안 채우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며 음식값에 사례비까지 낼 용의도 있다. 먹고 기분 나빠지는 것보다 그게 낫지 않을까? 9,000원 버리면 됐지 이런 음식으로 배까지 채워야 할 건 아니잖는가.
저도 이곳에 끼니를 채우자고 갔다가 반쯤 남은 그릇을 뒤로 혀를 차며 나온 기억이 남아있습니다. 또 저곳이 나름 외식계의 권력인 분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곳이던데, 괜한 곤란을 치루실까 걱정되네요. ㅎ
저런 곳들은 죄다 없어져야함… 우리나라에 하등 도움 안되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