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이 맛있는 평행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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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과 해장국, 둘 가운데 하나가 유난히 먹고 싶은 일요일이었다. 4월에 맞지 않게 쌀쌀한 날씨 덕분에 해장국을 낙점하고 청진옥에 갔다. 한식을 찾아 먹는 기쁨은 식탁에 음식이 등장하기 직전에 최고조에 이른다. 그리고 실제로 먹기 시작하면 급격히 떨어진다. 해장국도 예외일 수 없었다. 그야말로 ‘국’이고 해장을 위한 음식인데 국물이 이렇게 멀걸 수가 있을까. 당연히 있고 비단 청진옥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나마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곳 가운데 청진옥의 음식이 굉장히 준수한 편에 속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기에 언제나 한식을 먹고 나면 심경이 복잡해진다. 자가조리로만 살 수 없고, 사먹어야 한다면 한식도 먹을 수 밖에 없다. 학습이든 뭐든 떠나 한국인으로 태어나 한국에 사는 사람의 숙명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빈도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어느 시점에는 대다수가 암묵적인 공감대를 형성한 한식의 범주에 속하는 음식을 먹어줘야 한다. 게다가 냉면이나 해장국은 가정에서 만들어 먹을 만한 음식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사람인 나는 숙명처럼 실망할 수 밖에 없다. 기대가 크지 않고 또한 어떤 음식을 먹을지 너무나 잘 알고 제 발로 찾아가더라도 반드시 실망한다. 대략 98%의 확률이다.

멀건 국물과 고춧가루로 씻은 입으로 광화문 일대를 맴돌며 생각했다. 과연 어디에는 한식이 굉장히 맛있는 평행우주가 존재하지 않을까? 한식이 현재처럼 맛이 없는 원인은 물론 조리의 문법이다. 별다른 내부 검증 과정을 거치지 않고 고착되어 한편 개선의 가능성이 굉장히 적어 보인다. 하지만 그게 전부라고는 할 수 없다. 재료의 질이나 사용하는 양 등의 변수를 잘 활용하면 잘못된 문법의 울타리 안에서도 일정 수준 완성도 개선을 위한 운신이 가능하다.

이도저도 안된다면 지극히 생리적인 오류를 인정하고 수정하려는 시도만으로도 98%의 실망률을 15~20%는 떨어뜨릴 수 있다. 역시 가장 만만한 요인은 온도다. 그나마 청진옥의 국물은 온도마저도 준수한 편이지만 펄펄 끓는 국물을 먹을 확률은 그야말로 98% 아니던가. 입천장이 벗어질 만큼 뜨거운 국물이 나오는 식문화는 세뇌 당하지 않는 한 정상이라고 인식할 수 없다.

IMG_3162 물론 이외에도 엄청나게 많은 요인에 대해 고민할 수 있다. 종류 불문하고 국물에 담긴 채소를 곤죽이 될 때까지 익히지 않을 수는 없을까? 음식 바깥의 요소도 너무 많다. 씻지 않은 손으로 모두의 수저를 만지지 않도록 공동 수저통이나 서랍을 좀 없앨 수 있지 않을까? 뜨겁고 매운 음식을 먹으면서 옆사람의 코 푸는 소리를 너무 적나라하게 듣지 않도록 식탁의 간격을 다만 10cm라도 띄워 놓을 수는 없을까? 그 좁은 식탁 사이로 잔반이 담긴 그릇이 담긴 수레를 끌고 다지 않으면 안될까? 화장실은 제발 남여공용이 아니고 청소도 제때에 할 수 없을까?

이런 요소는 모두 된장과 고추장, 김치를 못 잃어 광광 우는 소위 전통 한식의 문법과는 거의 전혀 상관이 없다. 달리 말해 이런 요소만이라도 개선이 된 평행우주라면 멀건 국물에 숨 죽고 물크러진 깍두기를 먹는다고 하더라도 좀 더 행복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요소들의 개선이 전혀 고려 되지 않는 현실이 무엇의 징후일 수 있는지 생각해 보았는가?

2 Responses

  1. Yunho Choi says:

    켜가 없는, 맑은, 멀건 이렇지 않은 국물이 어떤 종류의 것인가요? 딱 떠오르기로는 감자탕이나 돼지고기김치찌개 처럼 지방질이 녹아들어간 것이 생각나는데 다른 것도 있나요? 한식이외의 영역에서는 어떤가요?

    • Real_Blue says:

      글쓴이는 아니지만 제가 사족을 붙이자면…

      맑은 국물 계열에서 켜가 살아 있는 국물은 대표적인게 프랑스 요리의 기본 바탕인 콘소메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히 일본식으로 변주된 일본 경양식집의 콘소메는 맑고 투명한 국물이지만 하나의 독립된 요리로 사용되기 때문에(콘소메수프) 매우 복잡한 켜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리과정을 보면 이해 할 수 있는데 고기 육수와 야채 육수를 혼합하여 필터에 거르거나 달걀의 흰자로 불순물을 응고 시켜 제거하는 방식으로 진한 육수를 투명하게 만든 것이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 같기도 합니다.

      맑지 않은 국물에서 가장 복잡한 켜를 가진건 일본의 츠케멘이 아닐까 싶습니다. 집집마다 틀리지만 최소한 2가지 이상의 육수를 섞는 방법을 사용하는데, 돼지등뼈와 닭발등을 우려낸 고기 육수와 가다랑어포, 고등어포, 참치포, 멸치포,다시마 등을 우려서 만드는 해산물 육수를 혼합하여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래도 다양한 재료가 들어가고 찍어먹는 쯔케멘의 특성상 수프의 양이 적기 떄문에 켜가 매우 복잡하고 복합적인 맛이 나는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