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 평화옥-형편 없는 공항 음식
지난 주, 볼일이 있어 근처에 갔다가 인천공항 제 2 터미널의 평화옥에서 점심을 먹었다. 여행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도 공항에 간 적이 없지는 않겠지만, 정말 음식을 먹으러 찾아간 건 처음이었다. 그만큼 음식이, 근본이나 족보 같은 게 없음에도 여전히 꾸역꾸역 현상을 유지하고 있는 소위 ‘모던’ 한식 셰프의 시도가 궁금했다.
그리고 나의 궁금증은 채 주문도 하기 전에 굉장히 분명하게 해소되었다. 가져온 것인지 원래 식탁에 놓여 있던 것인지도 정확히 헤아리기 어려운 반찬 때문이었다. 아슬아슬하게 무라는 채소의 일체성을 유지하는 깍두기나 아예 씹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물크러지도록 삶아 대강 버무린 오뎅무침 등은 눈으로도 맛없어 보였고 입으로는 처참했다. 이게 1인 최소 15,000원짜리 음식에 등장하는 반찬이란 말인가? 대단했다.
주문을 받아 등장한 곰탕 특(20,000원)과 평양냉면(15,000원)은 그런 반찬이 깔아 놓은 기대에 정확하게 부응했다. 과보정한 조미료국물에 허술한 완성도가 양쪽 음식 모두에서 흥건하게 잠겨 있었다. 옛 글을 뒤지면 약 7년쯤 전에 공항 제 1 터미널에서 먹은 봉피양 냉면의 리뷰가 나올 것이다. 당시에도 참 대단치 않았는데, 평화옥의 냉면과 곰탕도 크게 다를 게 없었다. 더도덜도 아니고, 곧 출국할 사람들의 잠재적인 향수를 볼모 삼아 폭리를 취하는 저질 공항음식이랄까.
지난 주에 먹었는데 나는 아직도 곰탕의 소혀를 생각한다. 15,000원짜리라면 적어도 돌기가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는 손질해야 하는 것 아닐까. 일행과 나눠 먹으려고 그릇에 덜다가 보고 숟가락을 그대로 놓고 싶었다. 한 켜를 더 벗겨낸다고 맛이 떨어질까? 아니면 수율이 심각하게 저하되어 업장의 이문에 크게 영향을 미칠까? 둘 다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수준으로만 소혀를 손질해서 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둘 중 하나, 혹은 둘의 조합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습관적으로 그렇게 해왔으니까, 또는 아무도 그런 건 신경쓰지 않는다고 생각하니까.
한편 곰탕의 넙적 당면도 웃겼다. 이 당면은 과연 근본 없는 정식당의 음식과 궤를 같이 하는, 새롭지 않은 새로움의 시도인 걸까, 아니면 그저 통상적인 원형 단면의 가는 당면의 관리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대안 아닌 대안 같은 걸까. 과연 당면이 꼭 필요하긴 한 걸까? 원래 미끌거리니 젓가락이든 숟가락이든 집어 들기도 어렵지만 이 곰탕 속의 납작당면은 잘 씹히지도 않았다. 정확하게 이 당면은 곰탕이라는 음식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는 걸까? 설사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가게 앞에 자랑스레 걸어 놓았듯 ‘서울과 뉴욕에서 미슐랭 2스타를 받은’ 셰프라면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난 여태껏 정식당에서 그런 고민의 흔적을 감지한 적이 없었고, 이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일관성이 없는 개념과 발상의 파편을 닥치는 대로 벽에 던져서 달라 붙는 것들만 적당히 골라 많은 요리 인력을 투입해서 완성도를 높인다. 그래서 완성도가 떨어지면 음식이 거의 먹지 못하는 수준으로 전락해버린다. 곰탕(특)에 딸려 나오는, 2,000원짜리 선택 메뉴인 계란찜의 표면을 보라. 한심하다.
그렇게 체계 없는 접근방식으로 지금까지 근본 없는 혼종을 만들어 왔으니, 심지어 ‘모던’의 딱지가 떨어진 ‘한식’에서조차 습관이든 아니든 적어도 삼사십 년은 먹어왔을 음식 하나 제대로 재현하지도, 또한 본질의 이해를 바탕으로 개선하지도 못한다. 닭날개 튀김과 튀김 만두는 무엇이며, 디저트랍시고 사진까지 계산대에 전시하는 캐러멜 팝콘은 대체 무엇인가. 한식도 아닐 뿐더러 심지어 새로운 음식도 아니다. 팝콘 아이스크림이라는 것이 원래 팝콘을 아이스크림 베이스에 우려 맛과 향을 내는 현대요리의 일종으로 선봬기 시작했다가 점차 수준이 낮아져서 현재처럼 아이스크림에 눅눅해지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함께 내는 방식으로 변했다는 건 과연 아는 걸까?
서양 및 현대적인 인테리어 디자인에 석재로 식탁의 상판을 깔았지만 그 안에 싸구려 밥집에서나 묵인할 수 있는 수저 및 내프킨 서랍이 달려 있다. 이것이 바로 혼종의 현주소다. 이런 객단가에도 손님이 직접 수저를 집어 식탁에 놓아야 할까?단순한 서비스가 아닌, 위생의 문제가 꽤 심각하게 결부되어 있다는 생각을 한 적도 없는 걸까? 수저를 식탁에 놓고 손님이 직접 챙기는 설정이 한국의 식문화가 자랑스레 이어나가야 할 전통일까? 이런 문제에 대한 고민은 과연 누구의 몫일까. 셰프는 음식만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디자인과 인테리어가 가장 좋고, 그 다음로 식기가 좋다. 뒤를 서비스가 잇고, 바닥은 음식이 깐다. 음식을 먹으러 가는 곳에서 정작 본질이어야 할 음식의 수준이 가장 떨어진다는 말이다. 왜 그럴까?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늘 말하는 것처럼 음식 바깥을 전혀 보지 못한다. ‘파인다이닝 위기설’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는데, 그것이 어디 파인다이닝만의 문제겠는가? 이런 음식만 봐도 너무 뻔하다. 타성에 젖은 유사 노포나 낼 음식에 미슐랭 2스타의 딱지가 붙어 팔리는 처참한 현실이다.
*사족: 왜 평양냉면에 대한 이야기가 없느냐고? 말할 가치조차 없기 때문이다.
신랄하네요. 인터뷰 상으로 봤을 때에는 셰프의 모든 것을 때려 박은 것 처럼 보이던데, 사진이나 글로만 봐도 그 수준에 한참 모자르다는 걸 알겠습니다. 오뎅무침에 감자튀김에 팝콘아이스크림… 깍두기도 물러터지고
누군가는 느끼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시간에 쫒껴 무심히 지나쳐버린 기억.무언가가 맘속에서 뚫리는듯한 기분.공항가면 늘 생각한다.비싸고 맛없고 과연 세계여러나라 사람들이 첫국내에 들어와 첫바가지를 쓰는기분이랄까.머. 이젠 음식맛,가격 기대도 하지 않는다.
아주 정확하게 표현하셨네요..대가족15명 베트남 여행갔다 와서 갔었는데 참 어이없고 기가 찾네요. 저걸 돈주고 사먹었습니다. 그려
공항 식당으로 당당히 입점할수 있다에 놀라움을 금할길이 없네요..
공항 입점 구조의 문제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항에 입점하면 매출의 몇 퍼센트로 수수료? 임대료? 를 떼갑니다.
예전엔 공항 물가가 왜이리 비싼가 했는데, 입점 구조를 듣고 나니 이해가 가더라구요.
업주 입장에선 수익을 내려면 단가를 높이고 원가를 낮춰야 하는데
공항이라는 공간의 특수성 때문에 단가는 한 없이 높여놓고 원가 낮추는것도 거리낌없이 할 수 있는거죠.
버스 터미널 식당과 더불어 어느나라나 가장 맛없는 식당이 있는 곳은 공항인 것 같습니다.
공항 최고의 맛집은 맥도날드인데………한국 맥도날드 마져 망해가고 있으니…….
평양냉면? 지금 시켜 먹어보니 주인인지 주방장인지 목을 조이고 싶음. 외국인들에게 이게 냉면이라고 할 걸 생각하니 따귀라도 때리고 싶고 알바생들이 불쌍.
오늘 이른 출장이 있어 기대하고 들렸습니다. 아침 메뉴에 가장저렴한 곰탕을 주문했습니다. 이것이 15,000 원 이라니…
빨리 망해서
정리되었으면 합니다. 자리가 아깝고,
창피합니다.
이만오천원짜리 불고기를 시켯는데 공기밥 값은 별도로 내야 합니다
반찬도 사진에 보는 깍두기 포함 4가지가 전부이며 된장국 같은것도 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식사중인데 옆 데이블 치운다고 통 들고 와서 우탕탕 음식을 솥아 부었습니다
최악입니다
진작에 많은 사람들이 다녀와선 뒤에서만 다들 문제점을 지적하곤 겉으로는 침묵하더군요. 좋은게 좋은거고 임정식씨 진영과 척지기 싫은거겠지요. 정말 뒤에선 좋은 소리를 못들었습니다. 본인이 가야 할 길이나 정진하지 아니면 잘 갈고 닦아서 나오지 터뜨리고 보는건지 이건 뭐…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그 오너 쉐프와 외식업 종사자인 아내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을 통해 저런 퀄러티의 음식을 거침없이 계속 선전, 홍보하는 행태는… 정말 부부사기단 같아요!!!
정확하게 짚으셨네요… 정말 말할 필요도 없는 수준의 엉터리 “평양냉면” 을 그렇게 광고하고 다니면서 팔더니. 만오천원이 아니라 오천원이라도 안사먹을수준인데요. 해외에서 사는 저는 사만원이라도 평양면옥처럼 만들어만 주면 종종 사먹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