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더 보더’라는 보더
어쩌다가 ‘온 더 보더’에 갔다. 끼니와 끼니 사이에 가벼운 간식 정도를 먹을 요량이었달까. 나쁘지 않았다. 자리에 앉으면 일단 칩과 살사를 가져온다. 소금간이 살짝 아쉽지만 칩은 따뜻하고 바삭해서 최소한의 먹는 재미를 준다. 집에서는 아보카도의 눈치-대체 언제 익는 것이냐-를 보기 싫어서 잘 해 먹지 않는 과카몰레의 녹색에 생기가 너무 넘쳐 다소 의심스럽지만 어쨌든 먹을 수는 있다.
다른 음식도 마찬가지였다. 뛰어나지는 않지만 최소한 끝까지 다 먹을 수는 있고, 그 뒤에도 불쾌하지는 않다. 감정보다 순수하게 육체 및 생리적인 차원에서 그렇다는 말인데, 이는 재료의 질 등과 다소 별개로 조리나 음식 자체의 문법이 성문화 및 표준화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본다.
이것저것 먹으며 그 얼마 전에 먹었던, 아니 도저히 먹을 수 없어 놓고 나온 타코에 대해서 생각했다. ‘온 더 보더’에는 ‘어쩌다가’ 갔다고 말했다. 이전에는 별로 갈 일이 없었다. 그것은 양식의 세계가 태생적으로 갖춘 환경 덕분이다. 개인이 운영하는 독립 혹은 준 프랜차이즈 매장, 아니면 심지어 치포틀레 같은 좀 더 그럴싸해 보이는 프랜차이즈가 존재한다. 적당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적당한 가격에 낸다. 음식은 대체로 셀프서비스로 가져오니 팁을 줄 필요가 없고, 이 또한 선택에 반영된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번거로움 또한 줄어들어 유용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는 그런 중간급의 음식점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비단 (미국식) 멕시코 음식만 그런 것도 아니다. 식종에 따라 일단 프랜차이즈가 바닥을 깔아주고, 그 위로 그것들의 비싼 대안이 되고자 몸부림치는 개인 매장이 존재한다. 그런데 대부분 ‘비싼’을 실현하고자 몸부림을 칠 뿐, 그에 맞는 틈새의 가치를 구현하지는 못한다. 과연 무엇이 문제인 걸까? 연구를 하지 않아 모르든 아니면 연구를 했지만 의도적으로 무시하든, 바닥을 깔아주는 프랜차이즈 등에서 패턴을 읽지 못한다. 개인이 운영하기 때문에 완전히 다르게 가져갈 수 있는 측면도 있지만, 음식이 음식이기 때문에, 아니 음식이어야만 하기 때문에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측면 또한 있다. ‘원리’라고 하는 게 맞겠다.
물론 이렇게 말하기에 한국의 현실은 다소 애매하다. ‘온 더 보더’ 같은 음식점도 싸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는 거의 사라진 패밀리 레스토랑의 껍데기도 영향을 미치지만, 이곳에서도 식사 비용으로 최소 1인 15,000원쯤을 예상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개인 매장을 향해 집합적으로 품게 되는 불만이 느슨해지지는 않는다. 만약 음식을 넘어서 서비스 등, 경험으로서의 식사 여건까지 따진다면 역시 개인 매장 쪽이 한층 더 열등하기 때문이다.
말이 길었는데, 간단하게 말할 수 있다. 타코벨도 변변치 않은(물론 있어도 변변치 않지만… 최소한 바닥은 잘 깔아준다) 현실에서 ‘온 더 보더’가 일종의 ‘보더’ 역할을 한다. 이것보다 못한 (미국식) 멕시코 음식 사실은 음식이 아니고, 따라서 팔 필요가 없다. 프랜차이즈 혹은 대량 생산 음식을 비웃고 폄하하지만 사실 그보다 훨씬 완성도가 떨어지는 음식을 내는 곳이 너무 많다.
프랜차이즈 만도 못한 식당이 많다는 거 정말 너무 공감되네요. 동네에 새로 생기는 타이, 멕시코 음식점들 같은 거 가보면 이해가 안갈 정도로 끔찍해요. 그냥 그 상권에 없는 식당이다 싶어서 갖다 박아놓은 느낌. 어느정도 유명하다 싶은 집 아니면 먹을만한 데가 없는 것도 정말 넌센스인 것 같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