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시릴로 – 차마 먹지도 못할 타코
인터넷을 검색해 찾아간 그곳의 메뉴를 받아 들었는데, 메뉴의 절반 이상이 매운맛을 기본으로 장착하고 있었다. 어쩌라는 거지? 정체불명의 매운맛에 시달리고 싶지 않았으나 전부 피해가자니 고를 것이 없었다. 결국 찾은 게 파히타 타코. 파히타 타코라… 타코 두 개를 먹고 배가 찰 리가 없으니 과카몰리 (아보카도 1개분)과 칩스도 함께 시켰다.
그런데 직원이 주문을 다 받고 주방에 갔다가 다시 돌아와서는 과카몰리를 낼 수가 없다는 게 아닌가. 왜? ‘어제 많이 팔아’ 익은 아보카도가 없기 때문이란다. 요즘 말도 탈도 많은 식재료가 아보카도고 귀찮아서 잘 먹지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랜만에 밖에서 먹으려고 했던 것인데… 매운맛 일색의 메뉴+미리 말해주지도 못하는 무신경에 예감이 나빠, 추가 메뉴를 시키지 않고 그저 타코만 먹기로 했다.
그리고 타코가 등장했다. 이것은 현실이 된 나쁜 예감. 간을 하지 않은 질긴 고기와 이렇게 볶아서 내기엔 투박한 양파와 파프리카, 그리고 그 모두를 좀 더 불쾌하게 만드는, 두껍고 눅눅한 (생) 토르티아가 형태를 유지하겠답시고 금속 틀 위에 올라 앉아 있었다.
타코를 굳이 이 따위 받침대에 올려서 내야 하는가? 기본적으로는 아니라고 본다. 애초에 격식을 차리는 음식도 아닌데다가, 만약 딱딱한 타코 (hard shell taco)라면 모양이 잡혀 있으므로 신경 쓸 일이 아니다. 아니면 백보 양보해 받침대에 올려 놓고 싶은 그 심정을 이해한다고 치자. 그럼 최소한 타코를 집을 수 있을 만큼의 공간은 보장해줘야 하는 것 아닐까? 받침대의 벽이높은 나머지 손으로 집어 들기가 썩 쉽지 않으니, 과연 이게 누구를 위한 것인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 모든, 쓸데 전혀 없는 번거로움이 소위 생 토르티아 때문일 거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더더욱 슬퍼졌다. 메뉴에는 ‘MSG를 쓰지 않고 토르티아도 직접 만든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이런 음식에 화학조미료를 안 쓰겠답시고 굳은 결심까지 하는 것 같은 태도도 좀 웃기다고 생각하지만, 그보다 굳이 토르티아를 만들어 쓰겠다고? 물론 원한다면 토르티아 같은 건 얼마든지 만들어 쓸 수 있다. 그리고 잘 만든 토르티아는 재료에 따라 부드러울 수도, 탄성을 지닐 수도 있고 입에 착착 감기며 타코를 먹는 즐거움을 한층 더 북돋아 줄 수 있기도 하다.
다만 그것도 다른 요소를 일단 잘 갖추고, 거기에 기술적으로 잘 만들었을 때에나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저 만들기 위해 만드는 / 만들었다는 것을 내세우기 위해 만드는’ 시도는 아무런 의미가 없고 차라리 기성품을 쓰는 편이 훨씬 낫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소위 수제버거 전문점에서 굳이 빵까지 굽는답시고 난리를 치거나 그걸 내세워 더 나은 혹은 순수한 (혹은 최악으로는 착한) 음식을 한답시고 홍보를 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모든 타퀘리아가 토르티아를 만들 줄 모르거나 만들고 싶지 않아서 안 만드는 게 아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그렇다. 내용물도 제대로 못 만드는 수준인데 굳이 토르티아를 만들고, 그걸 내세워 타코 두 개 한 접시를 9,000원에 판다. 한 입 먹어보니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그럴싸한 비평적 언어를 너무나도 쓰고 싶지만 그저 ‘기가 막힌다’는 표현 외에는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배가 고팠던 참이라 그래도 참고 먹으려다가, 먹어도 안 먹어도 기분이 나쁠 거라면 차라리 먹지 않는 편이 그나마 덜 기분 나쁠 거라는 생각에 일어섰다.
못 만든 음식에도 무수한 결이 있고, 그에 따라 부정적인 평가도 수 없이 갈린다. 어떻게 못 만든 음식이 최악 가운데 최악인가? 생각이 전혀 없으나 마치 깊은 생각의 산물인 양 가식을 떠는 음식이 최악이다. 차마 먹지도 못할 이 타코가 그러했으며, 나는 이런 음식을 먹느니 돈을 그냥 쓰레기통에 버렸다 생각하고 끼니를 건너 뛰겠다.
저 몇년 전에 이태원인가 한남동에서 아삭아삭한 아보카도를 서빙 받아본 적도 있어요..
시일야방성대곡 수준의 분노가 느껴지는 리뷰입니다. 부작용으로 마쭈아깐 스타일의 타코를 파는 비야게레로에서 맥주와 타코를 먹고 싶어졌네요. 하지만.. 너무나 멀고먼 비야게레로. 그나저나.. 아직도 영업은 하고 있을지?? 걱정이네요. 대충 검색해보니..성업중인 것 같기는 한데.
메뉴판 디자인이 Shake Shack 카피네요. 폰트까지 비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