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 파리바게트 셀프 모나카 (격)
‘네, 작은 세트 말씀이시죠? 오늘 다 팔린 것 같은데… 아! 여기 있네요’
아, 그것은 불운의 조짐이었다. 지난 주였나, 다른 파리바게트에 붙어 있는 포스터를 보고, 나는 오랜만에 모나카를 생각했다. 굳이 여기 쓰지는 않겠지만, 언젠가의 기억이 났다. 그러나 기억을 따라 먹는다면 위장이든 췌장이든 배는 언젠가는 대가를 혹독하게 치를 수 있으므로 일단 물러났었다. 그리고 어제… 왠지 1월을 넘기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집 근처 파리바게트에 들렀다. 진열대에 없는 물건을 매장 주인이 아래의 서랍장에서 찾아주었다. 오, 횡재인가.
횡재?전혀 아니었다. 상자를 열고 나서야 알았다. 이것이 바로 그 ‘셀프 모나카’구나. 일단 포장에 아무런 안내가 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나는 일단 충격을 받았다. 누군가는 이런 제품을 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 내가 왜 굳이 모나카를 조립해서 먹어야 하는가. 바로 그런 과정을 피하기 위해 돈을 주고 제품을 사는 게 아닌가? 그것도 대량생산 제품을? 상자 속에 안내문을 넣는 수준의 조치로는 부족하다. 나에게 이런 제품은 모나카가 아니고, 따라서 사지 않았을 것이다.
대체 셀프 조립의 명분은 무엇인가. 안내문에 의하면 ‘바삭함’이다. 그런데 바삭한 과자는 잘 부스러진다. 이 정도의 껍데기라면 포장을 뜯으면서 깨지거나 부스러질 수 있는데, 포장의 영향력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은 것 같았다. 일단 양갱과 포장재를 묶은 띠가 잘 끊어지지 않는다. 절취선이 있기는 하지만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걸 찢다가 일차적으로 껍데기가 손상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포장재가 질기다. 겉은 종이, 과자가 닿는 부분의 안쪽은 비닐로 되어 있어 절취선을 따라 힘을 줘도 잘 뜯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진에 찍힌 시점에서 더 이상 뜯기지 않는다. 마저 뜯어 내기 위해서는 껍데기가 부서질 정도로 힘을 줘야 하는데, 그러면 이 음식을 먹는 의미가 없어져 버린다. 결국 손으로 뜯기를 포기하고 가위를 동원해 최대한 조심스레 포장을 잘라내 껍데기를 꺼내야 한다. 기성품 모나카 한 개를 먹기 위해 이 정도의 수고를 들이느니 차라리 만들어 먹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상자의 고객 상담 번호로 전화를 걸어 이런 불만을 이야기했다. 무엇보다 포장에 안내문을 써 붙여 선택에 필요한 정보를 명확히 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항의했다. 직원도 안내문처럼 바삭함을 강조했다. 한국에서 통하는 바삭함의 개념은 상당히 왜곡 되어 있다. 기분 좋은, 즉 작은 물리력에 꺾이는 상태가 아닌, 저항이 있는 딱딱함을 바삭함과 혼동한다. 입천장이 까지도록 버석거리고 날카로운 돈까스나, 탕수육의 ‘찍먹-부먹’ 논쟁에서 ‘찍먹’을 비호하는 수단으로서의 바삭함이다. 말하자면 ‘쫄깃함’이 미화된 ‘질김’인 것과 같다.
이 정도로 마른 껍데기를 즉석에서 셀프로 조립해서 먹으면 물렁한 양갱과 질감 대조가 너무 커서 즐겁지도 않을 뿐더러, 이 특정 제품의 경우 베어 물면 바로 껍데기의 대부분이 달라붙고 나머지 쪼가리는 정신 없이 입안을 돌아다닌다. 탕수육 이야기를 했지만 적당한 소스의 개입이 튀김옷의 딱딱함을 일부 누그러뜨리듯, 모나카 같은 음식도 소의 수분이 일정 수준 껍데기에 수분을 전달해 전체가 하나의 음식으로서 어우러지는데 공헌한다.
트위터에 이 모나카에 대한 불평을 늘어 놓고 제보를 받았다. 셀프 조립 모나카가 (너무나도 예상 가능하듯) 이미 일본에 존재하며, 양갱 뿐만 아니라 앙꼬를 발라 먹는 제품도 이미 나와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1. 이 제품은 ‘카피’인가? 2. 소규모 생산 업체나 지자체에서 홍보를 위해 ‘다름을 위한 다름’을 추구한다면 모를까, 한국 최대라고 할 수 있는 제과 전문 프랜차이즈가 이런 제품을 과연 ‘모나카’라고 만들어 팔아도 되는 걸까? 음식의 정체성을 완결짓는 핵심 공정을 생략하고 내는 제품은 완성품이 아니고 따라서 팔아서는 안된다. 껍데기 따로, 양갱 따로 한 입씩 먹으면 바삭함을 더 잘 즐길 수 있는 것 아닐까? 다 필요 없고 그냥 닥치는 대로 입에 쑤셔 넣고 뱃속에서 모나카를 완성해도 되는 건 아닐까? 일단 기본 논리를 무너트리면 자체 방어가 불가능한 수준이 되는 건 금방이다.
‘와, 그래도 하나 남아서 다행이네요.’
‘손님 모나카 정말 좋아하시나봐요.’
‘아닌데요, 지난 번에 다른 매장 문에 붙은 포스터를 보니까 먹고 싶어져서요.’
이 모나카를 산 파리바게트 매장은 최근에 내부 공사를 다시 하고 새 점주가 맡은 곳이다. 그래서일까, 점주 명찰을 단 이는 다른 매장보다 좀 더 친절하게 응대했다. 그 친절함에 집으로 돌아오며, 나는 정확히 이유를 헤아릴 길 없이 서글펐다. 우리는 대체 어떤 가치를 서로 주고 받고 있는 걸까. 이런 제품을 위해 굳이 저런 수준으로 친절할 필요가 있을까. 그다지 현명하지 않은 지적 존재에게 점주도 나도 농락당하는 듯한 기분 뭘까. 그리고 집에 와서 셀프 모나카의 비밀을 알았을 때 나는…
모나카가 양갱같이 보인다..
일본 모나카를 좋아해서 즐겨 먹는데다, 파리바게트 그 제품도 한박스를 사서(박스로만 팔아서..) 먹어봤지만, 맛도 식감도 일본 모나카와 전혀 다른 제품입니다. 본문에 적힌 글 그대로 악화 카피에요..
저 역시 박스 열어보고 충격 먹었던 제품
모나카를 좋아라하지만 기성품을 먹으면서 직접 만들면서 먹는 수고는 안하고 싶고 더구나 글에서처럼 과자가 너무 쉽게 부서져서 먹는데서 오는 즐거움을 앞서 불쾌함을 안긴 제품
결국 박스의 반도 못먹고 구석에 처박아뒀다
폐기했던 기억이나네요
왠지 궁극의 모나카를 찾아서..라는 후일담이 따라올 것 같은 포스팅 잘 봤습니다. 모나카 저도 참 좋아하는데요.. 진짜 맛있는 모나카는 먹어본 기억이 없단 말이죠. 어딘가에는 있을텐데. 모나카 원정대라도 꾸려야 하나 싶습니다.
딱 10년 전에 일본사람에게 얻어 먹은 기억이 나네요. 신기해하며 조립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