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 그 요리 (6)-‘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와 부이야베스
지난 달과 정반대의 음식 이야기를 해보자. 죽지 않으려고 먹는 게 아닌, 낭비와 사치의 음식 말이다. 심지어 지은이마저 서문에서 ‘낭비는 미덕인 것’이라고 자인할 지경이다.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 세계 역사에 길이 남을 일본의 거품경제 덕분이다. 1985~1991년 사이, 일본의 자산가치가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올랐다. 덕분에 잉여를 먹고 문화도 자랐다. 일본이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도 이 시기 비약적인 질적 성장을 이루었다. 음식도 마찬가지. 서양식으로 샴페인 터뜨려 캐비아에 곁들이는 라이프스타일을 마음껏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무라카미 류의 <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는 바로 그런 이야기를 모아 놓았다. 버블시대의 한 가운데인 1988년에 출간된, 돈 없이는 먹을 수 없는 음식에 대한 사연을 담은 엽편 소설 서른 두 점이 담겼다.
그래서 맛있는, 고급스러운 음식이란 대체 무엇인가?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눠볼 수 있다. 일단 양이 많은 건 탈락이다. 인간의 위장에는 한계가 있으니 배는 곧 불러오고, 미각은 금방 적응하니 즐거움도 금방 가신다. 그래서 귀족의 파티 이야기에는 종종 씹어 맛만 보고 뱉는 장면이 등장한다. 한편 요즘의 파인 다이닝은 서너시간 짜리 긴 여정에 한두 입짜리 요리를 열 가지 이상 먹는 추세다. 수확체감의 법칙에 의거, 한 입 이상 먹으면 급격히 만족감이 떨어진다는 논리의 산물이다. 따라서 맛있는 음식의 척도는 양보다 질이다. 가장 흔한 유형이 자체로 압도하는 재료를 쓰는 것. 흔히 ‘세계 3대 미식재료’라 분류하는 푸아그라(거위 간), 캐비아(철갑상어 알), 트러플(송로버섯)이 대표적이다. 맛이 개성적이면서 강해서 조금만 써도 음식맛을 좌지우지한다. 게다가 귀하므로 비싸서 많이 쓸 수도 없다. 또한 맛을 망치므로 웬만하면 조리하지 않는다.
두 번째 유형은 오직 혀로만 알아차릴 수 있는 맛의 켜를 두텁게 겹쳐 만든 음식이다. 여러 재료를 쓰되 맛만 끌어내어 겹친 뒤 버린다. 덕분에 결과물은 눈으로는 단순해 보이지만, 혀로는 그렇지 않다. 첩첩이 쌓아 올린 켜가 입안에서 하나씩 풀릴 때의 쾌감이 있다. 주로 국물 또는 소스에 많이 쓰는 방법론이다. <달콤한 악마>의 맨 마지막 이야기에 등장하는 부이야베스가 그런 음식이다. 주인공이 들르는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방의 마르세유는 마침 부이야베스의 고향이다. ‘세 종류의 생선을 1kg씩’ 써서 만들었다는 수프를 먹고는, 그는 ‘바다의 향기와 용기를 얻었다’며 마음에 두고 있던 여성에게 전화를 건다. 부이야베스가 그런 역할을 맡을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진한 바다의 향기와 용기’를 품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바닷가가 고향인 국물 음식이라는 데서 알 수 있듯, 나눠 먹을 심산으로 여러 해산물을 푹 끓여 한꺼번에 많은 양을 만든데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런 부이야베스를 집에서도 만들어 먹을 수 있을까. 심지어 마르세유에서도 집집마다 레시피가 다르다는 가운데, 기본 원칙은 있다. 일단 프로방스식 재료인 마늘, 양파, 토마토, 올리브기름, 회향과 사프란, 오렌지 껍질 등으로 국물의 바탕을 잡는다. 생선은 기름기 없지만 젤라틴을 풍성하게 내주는 흰살 생선 위주로 살이 단단하고 무른 종류를 함께 쓴다. 연어, 고등어 등은 어울리지 않는다. 한국이라면 흔히 구할 수 있는 아구를 중심으로 우럭 등이 후보다. 포를 떠 살은 다진 마늘과 소금, 올리브기름에 재워두고, 대가리와 등뼈로는 국물을 낸다. 팬에 올리브기름을 넉넉하게 둘러, 기본 채소를 볶은 뒤 화이트 와인을 붓고 더해 푹 끓인다. 체로 걸러 재료는 버리고 국물을 다시 냄비에 담아 끓여, 사프란과 오렌지 껍질을 더해 10분간 우린다. 이 국물에 재워둔 생선과, 단맛을 위한 조개나 새우 등 패류, 갑각류를 더해 살짝 끓여 마무리한다. 이야기에 ’머스터드 마요네즈’를 빵에 발라 곁들이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정확하게는 루이(rouille) 소스다. 부이야베스에 바게트와 함께 반드시 등장하는데, 계란 노른자에 빨간 파프리카와 마늘을 더해 만든 마요네즈의 일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