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산 2017: 두 창의 정경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업무 메일의 인사로 올해의 일을 모두 마쳤다. 내가 질질 끌어 이제 마감했으니 마음이 편치 않다. 20일쯤 종무하고 쉬고 싶었는데 열흘 가까이 더 일했다. 사실 그 전에는 연말에 다만 며칠이라도 어딘가 갈 생각이었다. 말하자면 두 발이나 물러선 셈인데 어차피 자업자득이라 딱히 할 말은 없다.
마감이 계속 늘어진 덕분에 올해에 대해 예상보다 더 생각할 기회를 가졌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의외로 간단하다. 많은 일이 있었지만 2017년은 내가 말로 표현 및 기록할 수 있는 영역을 가뿐히 넘어서는 것 같다. 좋아서도 나빠서도 아니다. 그 모든 게 한데 뒤섞인 정황을 굳이 풀거나 파헤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대신 쭉 생각했던 두 창의 정경에 대해 기록을 남기는 것으로 올해의 결산을 대신한다.
첫 번째 창의 정경은 사실 내가 지난 3년 동안 죽어라 내다 보았던, 바로 내 작업실의 것이다. 다만 내가 본 정경이 아니라는 점에서 다르다. 농담 같지만 고양이가 내다 보았다. 올 봄, 3박4일인가 잠시 누군가의 고양이를 맡았었다. 만질 수 있는 동물을 키워본 역사가 없으니 몇 단계를 뛰어넘은 느낌이었달까. 하여간 그는 온지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거리를 한참 재다가 식탁에서 뛰어 올라가 에어컨 꼭대기를 정복했고, 소파에서 가장 주저앉은 자리를 골라 식빵 비슷한 것을 굽는 가운데 종종 내 작업실 창틀에 서서 밖을 내다 보았다. 가끔 너무 열중해서 보는지라 궁금해져 일하다 말고 내다 보았지만 딱히 특별한 건 없었다. 몇 번은 묻기도 했지만 모두가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답은 듣지 못했다. 책상엔 창틀의 먼지와 그의 털이 섞여 휘날렸고, 나는 가끔 물티슈로 발바닥을 닦아주었다. 그렇게 3박 4일인가 있다가 갔다.
두 번째 창의 정경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아니, 존재할 수도 있는데 어디 있는지 모르거나 또는 지금까지 겪었던 기억을 그러모아서 대강 빚어 그럴싸하다고 믿는 것이다. 눈이 내리는 날이고 나는 일본의 어딘가에 있다. 좁아터진 비지니스 호텔에서 오랫동안 자다가 허기 탓에 깬다. 창 밖으로는 눈이 꽤 내린다. 당연히 귀찮지만 대강 옷을 꿰어 입고 근처 편의점에 터덜터덜 걸어가 장어덮밥 도시락과 차가운 캔맥주를 사온다. 다시 터덜터덜 돌아와서는 비치된 전기주전자로 물을 끓여 녹차 티백을 우려낸다. 그리고 침대에 앉아 창을 한 켜 열어 놓은 채로 도시락을 먹는다. 밥과 장어를 먹고 차가운 맥주와 뜨거운 차를 번갈아가며 마신다. 무엇을 위해 어디에 갔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냥 그런 시간에 그런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 만족스럽다. 싹싹 긁어 먹고 맥주로 입가심 한 뒤 남은 차를 홀짝거리다가, 그제서야 푸딩은 까먹었음을 알아차리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귀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