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랑 타버린 지구’ 모둠 안주
옮긴 책에 ”홀랑 타버린 지구(Scorched Earth)’ 작전은 성공적입니까?’라는 대목이 나온다. 저자인 철학자가 가꾸는 텃밭의 관리인이 폭염 속에서의 안녕을 걱정해주는 대목인데… 영국 억양으로 뇌내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고 그 뻘함에 빵터졌던 기억이 난다.
왠지 그런 느낌이 물씬 풍기는 모둠 안주를 어느 호텔의 라운지에서 만났다. 바싹 마른 닭 옆에 긴 소시지, 그 옆에 칼조네가 있다. 그리고 나머지 여백을 감자와 단호박(고구마?), 그리고 꽈리고추(?!) 튀김이 메운다. 홀랑 타버린 지구의 어느 숲에 역시 닭이 홀랑 타버린 채 죽어 있는데 빠져나온 내장을 조개처럼 생긴 외계 생명체가 꿀꺽꿀꺽 집어 삼키는 형국처럼 느껴져서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아, 옥수수를 빼놓을 수 없다. 찐 다음 기름에 한 번 굴린 듯한 옥수수였다.
아니다, 강남역 어느 뒷골목 호프집에서 시킨 모듬 안주나 뭐 그런 것이 아니다. 대중교통으로는 접근이 굉장히 까다로운 어느 호텔의 로비에서 맥주 판촉행사를 한다고 그래서 추석 연휴 기간 동안에 낮술을 마시러 갔다. 그런데 사실 가게 되기까지 다소 곡절을 겪었다. 홈페이지에서 본 번호를 아무리 돌려도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이었다. 혹 손님이 넘쳐나서 전화기를 내려 놓고 아예 받지 않는 것인가. 한 사흘을 그렇게 시도하다가 결국 호텔 대표 전화를 걸어 확인해보니 번호가 잘못 올라간 상황이었다.
예약이 꽉 차서 못 가는 건 아닐까…는 그야말로 기우의 기우였다. 원래도 큰 공간은 아니었지만 오후 3시를 넘기자 손님이 거의 없었다. 가만히 보니 이 행사는 뷔페식 아침식사? 브런치? 손님이 빠져 나간 뒤 남은 공간을 최소한의 인원으로 굴리며 채워 보려는 계산에서 주최하는 것 같았다. 2시 30분~5시라는 운영시간도 그렇고 처음에 모듬 안주를 저렇게 한 판 던져 주는 것도, 그리고 그 이후로 얼마 있지도 않은 직원이 굉장히 무관심 및 무신경해진다는 사실도 그랬다. 잔은 비었고 알코올을 향한 갈망으로 곧 쓰러질 것 같은데 직원이 내 쪽을 의식적으로 노력이라도 하듯이 전혀 보지 않는다! 저기요 제가 ‘알중’은 아니지만 당장 맥주를 한 잔 더 안 마시면 쓰러질 것 같은데요… 참고로 이 행사 외에도 이제 모두가 우려 먹는 애프터눈 티 세트 같은 메뉴도 있었는데 그건 ‘홀랑 타버린 지구’보다 더 비참해 보였다.
설상가상으로 기본 맥주도 맛이 없었다. 구스 아일랜드의 계절 한정 같은 맥주가 한 병 포함되어 있는데 맛도 없을 뿐더러 5.7도라면 도수가 높지는 않지만, 낮 최고 기온이 여전히 20도를 넘어가는 10월 초에 적합한 선택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이제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추가로 시킨 한 잔 11,000원짜리 생 에일이 훨씬 더 잘 어울렸고 맛도 좋았다.
닭은 말라 비틀어졌으며 그 안에서 나온 것 같은 소시지도 사정이 크게 더 촉촉하지는 않았고, 칼조네는 겉이 허연 만큼 속도 덜 익었다. 감자와 단호박은 감자와 단호박이었으며 정말 왜 끼어들었는지 모르는 꽈리고추는 매웠다. 그나마 한 가지 좋은 점이라면, 전화번호가 잘못 기재된 홈페이지의 식음료 가격 58,000원이 2인분이라는 사실이었다. 계산대 앞에서 갑자기 마음이 누그러졌달까. ‘거울에 비친 물체가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있는데 이렇게 ‘홀랑 타버린 지구’ 같은 음식을 그것도 고급이라는 호텔에서 만나면 음식 아포칼립스 또한 우리가 믿고 싶은 것보다 가까이 다가온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올 하반기부터 아포칼립스 벌써 온 것 같습니다.
요새 뭘 먹어도 온전하게 내오는 데 보기 어렵네요.
글 잘쓰시네요 단순한 넋두리였는데도
재있게 봤습니다
안녕하세요
1. 제가 90년대 초에 외부인 쓰지 않고 가족이 다 달라붙어서 하는 식당에서 몇 년 일한 적이 있는데 그때 2가지의 큰 교훈을 얻었습니다.
1.1. 가족끼리는 같이 장사하면 안된다는 것과 손님에게 음식을 만들어 먹인다는 것이 보기보다 힘든 일이라는 것이죠.
1.2. 지금도 모친과 동생이 서울 변두리에서 고깃집을 하고 있는데 지난 20세기의 교훈은 아직 유효합니다.
2. 가끔 외식하러 식당에 가도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남 일 같지 않아 짠한 마음이 절로 생깁니다.
2.1. 먼저 가족 장사하는 사람들의 눈빛을 살피지요. 그 특유의 피곤과 짜증이 가슴에 와닿습니다.
2.2. 특히 식당 종업원을 보면 남에게 음식 대접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과거를 회상합니다.
2.3. 주방에 있기에 제 눈에 띄지 않는 조리사는 더 말할 나위 없습니다.
3. 이런 나의 과거사가 식당 내 제 행동을 제약합니다.
3.1. 종업원이 상 치울 때 지저분할까 봐 음식도 정갈하게 먹고 남다르게 서비스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3.2. 심지어 나보다 늦게 온 사람에게 먼저 상차림을 해줄 때도 가만히 있습니다.
4. 지금은 운 좋게 외식 생산자가 아닌 소비자로 살고 있습니다.
4.1.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외식하려면 무한한 포용력을 키워야 합니다. 타고난 소인배인 저는 외부의 불쾌한 자극에 약할 수밖에 없으니 난감할 때가 많지만 식당에만 가면 얌전한 고양이가 됩니다.
4.2. 외식할 때 그냥 주는 대로 먹고, 가능한 내 집 주방에서 직접 조리해 먹으려고 노력합니다. 특히 최근에.
5. 음식 비평가로서 외식을 피할 수 없는 주인장의 고충에 비할 바가 아니죠. 매번 주인장의 글을 읽다 보면 음식 비평가는 보통 사람은 가기 힘든 좋은 식당에서 맛난 음식만 먹고 다닌다고 생각했던 저의 편견을 탓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