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특산물 빵이라는 괴식 무저갱
4년 전인가, 안타깝게도 ‘이제 통영에 그만 가야 되겠다’라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여러 계기나 징후가 있었는데, 그 가운데 가장 명백했던 것이 바로 이 ‘멍게빵’이었다. 잠깐, 멍게처럼 생기지도 않았는데 그래도 멍게빵이라고? 맞다. 당시의 안내에 의하면 멍게에서 추출한 식이섬유를 넣어 만들었다고 한다. 속에는 팥고물이 들어 있다. 말하자면 델리만주류의 즉석빵 반죽에 멍게의 식이섬유를 섞어 구운 것이다. 맛보기를 나눠주면서 ‘그러나 멍게맛은 나지 않아요’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특정한 해양생물의 이름을 붙였으나 심지어 그것처럼 생기지도 않았고(굴 모양을 본땄다고 하지만 가만히 보면…), 멍게의 맛은 더더욱 나지 않는다. 한술 더 떠 모델이 된 동물의 맛이 나지 않는다는 점을 내세운다.
지독한 모순이거나, 그도 아니면 심한 엇박자라고 느꼈다. 게다가 이걸 판매하는, 옛 프랜차이즈 커피점의 자리를 차지한 중앙시장 입구의 건물은 멍게 모양으로 괴기했다. 그 전체 골목이 꿀빵에 오염되는데 혁혁하게 공헌한 기폭제는 아니었을까. 게다가 궁극적으로는 세금이 들어가는 사업은 아닐까 짐작하기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인터넷 검색 5분만 하면 여러 가지가 나오는데 굳이 곁들이지는 않겠다). 하여간 그때 가져왔던 빵이 바로 오늘의 사진에 담겼다. 물론, 맥도날드처럼 놔둬도 썩지 않는다는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겠다. 그냥 잘 마른 것 뿐이다.
이런 류의 지역 명물빵이 증식중임을 알아차리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열심히 먹어보지는 않았다. 기본적으로 멍게빵처럼 델리만주의 열화된 변주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맛은 몰라도 틀의 모양은 점점 발전하는지, 최소한 눈으로는 다양성을 느낄 수 있다. 하회탈이나 죽순, 게 등에 이어 지난 주 1박 2일로 다녀온 속초와 양양 지역에선 황태빵에 이어 오징어빵을 만났다. 마침 모양이 꽤나 훌륭했으며 소량을 팔기에 시도해보았다. 한마디로 오징어의 맛이 좀 나는 델리만주였고, 바로 그 오징어와 델리만주가 만나는 지점은 엄청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두 개 이상을 먹기가 어려울 정도로는 괴악했다.
‘모양에 쏟은 고민의 반만 맛에 쏟아 부어도 낫지 않았을까’라고 트위터에 한 마디했는데 이후 큰 의미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무엇보다 누군가의 ‘맛을 놓고 고민하기 어려울 테니 모양에 전력한 것’이라는 평이 한국의 현실에 좀 더 적합하다고 느꼈다. 게다가 쉬면서 생각해 보았는데, ‘한식의 품격’까지 내면서 이미 받은 스트레스로도 충분하니 이런 음식을 놓고 굳이 깊이 고민하거나 펄펄 뛰면서 그다지 길 것 같지 않은 내 인생을 자진해서 깎아 먹고 싶지 않다.
그러나 개선이 가능한 지점은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다. 일단 다들 알아서 일가를 이루는 것 같으니 적어도 모양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어 보인다. 게다가 역시 맛이 중요하고, 또 문제다. 지금처럼 단맛 중심인 델리만주의 변주에 재료를 더하는 식으로 접근하면 모두 손을 잡고 괴식의 무저갱 속으로 뛰어드는 결과 밖에 기대할 수가 없다. 이 패턴에서 일단 벗어나는 시도가 필요하다. 짠맛 중심의 즉석빵도 얼마든지 생각해볼 수 있다는 말이다. 게다가 빈대떡이나 파전, 심지어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화전이나 다식까지 소환하면 영역은 얼마든지 넓힐 수 있다. 아니면 ‘알새우칩’류의 과자나 심지어 해산물맛 라면에서도 얼마든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지역 특산물 빵의 종착역은 일본의 예로 확인할 수 있듯 대량생산 식품으로 봐야 하고, 따라서 과자나 라면 같은 음식에서 힌트를 얻는 게 무리가 아니다.
또한 조리의 측면에서 좀 더 자연스러운 결합도 고려해볼 수 있다. 팥이나 가짜 커스터드 등에 오징어 같은 해산물 건더기를 넣는 건, 한편 호두과자가 남긴 미완의 선례인 듯 보인다. 속껍질을 벗겨 호두를 갈아서 밀가루에 섞어 반죽한다면 호두 알갱이를 듬성듬성 박는 것보다 중심 재료의 맛이 좀 더 잘 분배될 수 있다. 아몬드를 비롯한 견과류의 가루가 서양 제과에서 밀가루와 함께 쓰이는 예를 생각한다면 어려운 일은 아니다. 견과류가 아니더라도 강조하고자 하는 지역의 특산물은 거의 모든 경우 건조 등등의 과정을 거쳐 수분을 걷어내고 맛을 좀 더 강조한 뒤 가루를 내 반죽의 일부로 얼마든지 공헌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겉과 속이라는 계 구분의 문제다. 과연 이 둘이 작은 빵에 별개로 존재해야 하는가? 사진의 오징어빵도 그렇지만 다들 디테일이 두드러지며 잘생겨지는 만큼 별개의 재료로 속을 채울 경우 고른 분배의 가능성은 낮아진다. 게다가 그렇게 채워야 하는 속이 맛없는 중국산 앙금이나 인조 커스터드라면 차라리 없는 게 낫지 않을까. 굳이 꾸역꾸역 욱여 넣겠다면 말리지 않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하나의 음식으로서 완결성이 떨어지지는 않을 거라는 말이다.
저렇게 생긴 주제에 오징어땅콩과자만도 못한 맛인 걸까요… ㅡㅜ
그나저나 왜 풀빵(…)을 갖고 저렇게 변주를 계속 계속 계속 하는 건지; 특산품으로 팔려면 뭐 좀 다른 걸 시도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언제까지나 호두과자를 넘어서려는 시도만 하는 건지;
지역특산품 개발자 또는 관련 기획자가 상기글을 읽는 다면 해당 업무에 꽤 많은 도움이 될텐데요.
매번 감사히 읽고 갑니다.
진짜 이런 행태의 기획 및 영업이 좋은 시도처럼 포장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소비자들은 기꺼이 지갑을 열고 사진을 찍어 sns로 퍼나르고 정말 음식의 맛에 대한 고민은 1%도 담겨 있지 않는 이런 문화가 점점 고착화되는 것 같아 걱정이 앞서네요. 그리고 이런 아무 철학없는 영혼 없는 쓰레기들이 음식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소개가 된다는 것이 너무 짜증납니다.
통영꿀빵도 맛없던데…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