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욕적인 작명, ‘오리엔탈 라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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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의 일이다. 군 복무를 마치고 제대 당일에 동사무소에서 무엇인지 기억나지 않는 신고(전입 아니면 예비군 편입이었을 거다)를 마치고 정말 며칠 만에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처음 타보는 비행기에 처음 가보는 해외여행이었다. 행선지는 옛 친구가 살던 워싱턴 디씨 바로 밑의 버지니아. 온갖 일화가 있었는데 여기에 쓸 건 아니고, 다만 한 가지가 아직도 굉장히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친구집에 머무르는 동안  부모님의 대화 속에서 “그래도 우리 00이는 ‘오리엔탈’치고는 00과 00(교과 과목 명칭)을 잘 하지”라는 구절을 들었던 것. 나중에서야 ‘오리엔탈’이 ‘N word’처럼 동양인의 멸칭임을 알았다.

요즘 쉬는 기간이라 블로그도 웬만하면 안 쓸 생각이었는데 웬만하지 않은 일을 보았다. 무슨 프랜차이즈 카페의 신제품 명칭이 ‘오리엔탈 커피’다. 연유가 핵심인 것으로 보아 베트남 커피를 표방하는 모양인데 그렇다고 굳이 ‘오리엔탈’이라는 단어를 써야만 할까? 작명 과정에서 이 단어가 한국이나 일본, 중국인까지 망라한다는 사실을 감안했는지 모르겠다. 물론 알았다면 일종의 자기 모욕이므로 웃기지만, 한국에서 일상적으로 차별하는 동남아시아 지역민만을 위한 칭호라고 착각하고 썼을 가능성도 높다. 스스로가 백인의 위상을 누린다고 생각하는, 한국인의 흔한 착각 말이다.

물론 이래도 저래도 웃기는 일이다. 찾아보니 ‘오리엔탈’이라는 단어가 처음 쓰인 것도 아니다. 공교롭게도 같은 음료-커피 업계다. 혹시나 싶어 글을 쓰기 전에 찾아보니 영국에서는 이 단어가 멸칭으로 쓰이지 않지만, 미국에서는 멸칭이며 2016년에 오바마 대통령이 연방법에서 ‘N word’와 더불어 연방법에서 이 단어를 삭제하는 법안에 서명했다고 한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영국과 미국의 사례를 전부 참고해서 ‘으흐 영국에서는 멸칭이 아니니 씁니다’라고 결정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런 섬세함은 애초에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이니까. 미국 같은데서는 이민자로 살면서 흑인이나 다른 아시아계 이민자를, 한국에서는 역시 다른 아시아계 노동자를 너무나도 자연스레 차별하는 습관이 자연스레 반영된 작명인가.

13 Responses

  1. jeeseob says:

    First와 Prestige를 비빔밥처럼 섞어서 ‘퍼스티지’ 라는 단어를 만드는 우리입니다. ㅎㅎ

  2. 태원 says:

    재외동포로서 기분이 묘하다. (좀 안 좋은 쪽으로.)

  3. choinune says:

    좀 과도한 해석이란 생각이 드는데요. Orient는 라틴어에서 시작해서 영어를 포함한 유럽어 전체에 퍼져 있는 표현이고, (영어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아시아 인을 타자화해서 쓰이는 용례는 기껏해야 60년대-70년대 일부 미국인들에서 시작하여 미국에서도 특수하게 쓰이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가 ‘조선’ 이란 말을 한국에 대한 멸칭으로 쓴다고 해서 어원을 무시하고 조선이란 말을 쓰지 말라 하는 건 과도하다고 생각합니다.

    • 박연화 says:

      오리엔트 자체가 이곳보다 더 해가 뜨는 쪽에 가까운, 즉 동쪽이라는 뜻이니까 어원부터가 타자화인걸요. 그리고 백번 양보해서 중립적인 단어라고 하더라도 저 용례는 명백한 타자화 아닙니까? 오리엔트라는 단어가 지시하는 범위 중에 일상적으로 커피에 연유를 넣어 마시는 나라가 몇 개나 되겠습니까.

      • choinune says:

        제가 말씀드린 ‘타자화’는 그냥 다르다는 게 아니고 부정적인 용례로 쓰인다는 말이었습니다.

        물론 오리엔트는 원래 근동과 인도를 가리키는 말이고, 그 사람들은 커피에 연유를 타먹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름을 정하신 분들이 그 사실에 무지해서, 오리엔탈 하면 동양이고, 베트남 문화는 동양의 일부니 별 생각 없이 메뉴의 이름을 지었겠죠. 근데 그렇다고 해서 “모욕적인 작명”인지는 잘 모르겠다는 말이었습니다. 본래 가치 중립적인 표현이고, 멸칭으로 사용하는 건 특수한 맥락에서 일어난 것이니까요. 밑의 분이 제게 말씀하신 것처럼 “칭챙춍 라떼”라고 지었다면 정당한 비판이 되겠지요.

        • 리앵 says:

          오리엔탈은 가치중립적인 표현이 될 수 없어요. 멸칭, 호칭으로 사용한 것은 그 중 일부의 맥락이지라도, 동양을 뭉뚱그려 오리엔탈이라고 명명한 맥락에 이미 동양에 대한 신비화, 타자화, 몰이해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뿐 아니라 영어권에서 오리엔탈이 더 이상 아시아를 지칭하는 용어로 쓰이지 않는 이유가 그것이지요. 블로그 저자분도 그걸 모르지 않으셨을 겁니다. 과한 해석이 아니라, 이런 맥락까지 굳이 쓰지 않은 것뿐이 아닐까요? 이런 댓글쓰시기 전에, 오리엔탈리즘과 오리엔탈이란 단어의 어원과 역사적 사용 맥락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실걸 권합니다.

    • 한국충남 says:

      네, 다음 칭챙총

  4. Lll says:

    뭔병신같은글이냐 제발영어도모르면서 나대지좀마라 안쪽팔리냐? 니보다 영어 잘하고 미국에오래 산사람 없을것같냐?

  5. 홍콩식 밀크티 says:

    커피, 홍차, 빙수, 디저트 등에 연유를 즐겨 쓰는 건 베트남뿐 아니라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동부아시아에선 흔한 일이죠. 서양인들은 연유를 ‘동양스러운’ 식재료로 여깁니다. 명기하신 대로 영국 유학생인 저는 ‘oriental’이라는 단어가 전혀 인종차별적으로 느껴지지 않고, 그보다는 좀 예스럽고 두루뭉술한 표현이라는 느낌이 드는데, 저 커피집도 아마 그런 의미로 썼을 것 같군요. 런던 SOAS 대학 명칭에도 “Oriental”이 버젓이 들어가 있고, 영국 곳곳에 있는 대체의학 집들도 “Oriental Medicine”이라 써 놓고 영업하는걸요. (부연하자면, 영국에서 ‘Asian’은 인도/파키스탄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 외에는 Chinese, Korean, 이런 식으로 따로 부릅니다.) 어떤 맥락에서 쓰느냐가 중요할 텐데 저 커피집 사장이 설마 비하의 의미로 썼겠습니까. ‘지역에 따라서는 비하의 의미를 가지기도 하니 이 표현을 쓸 때는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한다’ 정도로 쓰시면서 권고를 하면 몰라도 “다른 아시아계 사람들을 너무나도 자연스레 차별하는 습관이 자연스레 반영된 작명인가”, “모욕적인 작명” 운운하며 비난하실 필요가 있습니까. 미국 중심 사고도 좀 엿보이고 political correctness도 지나쳐 보입니다.

  6. 오리엔탈 says:

    인문학 이중전공한 상경계열 석사생의 입장에서 보면,
    오리엔탈 내지 오리엔탈리즘에
    이러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다소 의외인걸요.

  7. R says:

    댓글보니 최소한 논쟁을 유발한 만큼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 단어로 보입니다.
    요 단어를 쓴 작명 담당자는 아마 이게 이런 논쟁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을 거라는 것을 아예 모르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합니다.

  8. 홍콩식 밀크티 says:

    이용재 님,

    하고 싶으셨던 말씀이 있었다면 제 덧글에 직접 답글로 다셔도 됐을 텐데
    왜 엉뚱한 트위터에서 조리돌림이나 하며 (마치 뒷담화 까듯) 풀고 계십니까.
    전에도 어떤 여성분이 이용재 님의 이런 식의 대응 방식에 섭섭함을 표하지 않으셨나요.

    오리엔탈이란 용어는 사람한테 썼을 때나 문제가 되지
    음식 앞에는 수식어로 흔히 쓰인다는 거 잘 아시지 않습니까.

    지금도 영국 수퍼마켓에서는 “Oriental Meal Box”, “Oriental Snack Selection”,
    “Oriental Chicken” 등의 이름으로 상품이 나오고 문제 없이 잘 팔립니다.
    영국에 있는 동양인들 아무도 이를 기분 나빠하지 않고요.
    그냥 우리가 “서양식 달걀 요리” 할 때의 그 “서양식”처럼 약간은 애매하면서
    포괄적으로 쓰이는 단어입니다.
    백인 영국인들이 이 단어를 썼을 때 그 공간에 함께 살고 있는 동양인들이
    불쾌해한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양측 다 이를 문제로 여기지 않고 잘 삽니다.
    그런데 그걸 놓고 ‘(백인) 영국인들과 영국에 있는 동양인들 모두 미국인들보다
    둔감하다’, ‘너희들도 미국인들과 똑같이 기분 나빠해야 한다’ 할 수 있을까요?
    음식 앞에 “오리엔탈”이란 수식어 붙는 거 많이 보셨잖아요?
    저 라떼도 그런 맥락에서 썼을 게 분명한데
    거기에 웬 “인종차별” 운운하며 확대 해석해 문제를 삼으십니까.
    고객 비위 맞춰 한 잔이라도 더 팔아야 할 기업이,
    그것도 동양에서 장사하는 기업이,
    인종차별적 의미로 작명했을 리 만무하잖습니까.
    “오리엔탈 드레싱”은 기분 나빠서 어떻게 드세요.

    저도 이 블로그에서는 더이상 덧글 달 일 없을 것 같습니다.
    그간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건승을 빕니다.

  1. 09/29/2017

    […]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오리엔탈 라테’를 먹었다. 사실은 지난 번에 그 글을 쓰고 다음 날인가 먹으러 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