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츠와 ‘국맥’의 맛없음 패턴
그나마 별 압박 없이 맛없다고 말할 수 있는 한국 식문화의 요소가 국산 맥주라고 믿어왔다. 너무나도 순수하고도 우직한 맛없음이 참으로 큰 덩어리의 공감대를 형성한달까. 그래서 맛없음을 말하는데 부담이 적었는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다.
어쨌든, 여름을 겨냥한 것처럼 홍보를 열심히 하는 신제품 두 가지 가운데 하나인 핏츠를 마셔보았다. 그리고 절망했다. 이런 걸 편의점에서 다른 맥주처럼 2,700원이나 주고 사서 마셔야 한단 말인가. 사실 맛이 없는 것 자체는 괜찮을 수도 있다. 하루이틀 일도 아니니까. 진짜 절망하는 이유는 맛없음의 패턴이다. 약 5년 전에 ‘드라이 피니시’의 억지 ‘드라이함’에 대한 글을 쓴 적 있는데, 어떠한 형용사를 쓰든 가벼움이나 상쾌함, 깨끗함 등등을 강조하는 맥주들의 맛없음 패턴은 너무 노골적이고 분명하다. 그냥 맛없는 국산 맥주의 끝을 깔대기에다가 억지로 쑤셔 넣어 좁게 만드는 느낌. 유튜브에서 광고를 지겹게 보았는데, 출연자가 단숨에 넘기는 걸 보고 신기했다. 과연.
그리고 거기에 자잘한 탄산이 맛없음을 악화시킨다. 사실 나는 이 자잘한 탄산이 국산 맥주 맛없음의 요소 가운데 가장 싫다. 목넘김 타령을 늘 하는데 그걸 강조하는 전략도 이상하지만 자잘한 탄산은 반대로 목넘김을 나쁘게 만들기 때문이다. 깔끔하지 못하고 지저분한 맛에 자잘한 탄산이 붙으니 한층 더 총체적인 경험은 나빠진다. 게다가 이러한 경험적 맛이 현재 유통되는 한식의 맛에 전혀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더 지긋지긋하다. 매운맛이 맨 첫머리에 폭발하는데 거기에다가 자잘한 탄산을 쏟아 붓는다니, 상처에 소금을 문지르는 격 아닌가? 국산 맥주의 맛없음과 음식의 조화는 별개의 사안일 수 있다. 품질이 낮아 맛이 없다고 해도 현재의 음식과의 짝짓기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볼 수 있지는 않을까?
그래서 ‘국산 맥주 맛없지 않다. 다 입맛이나 분위기의 문제다’ 등등의 이야기가 나오면 답답해진다. 파는 사람의 입장에선 그런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 먹고 살아야 하니까. 그러나 나는 요즘 국산 맥주가 맛없음에 대해 방어하는 수준이 거의 세뇌에 가까워지는 건 아닌가 우려한다. 물론 맥락과 거기 얽힌 사람의 상태에 따라 음식의 맛을 다르게 느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도 일정 수준이고 국산 맥주처럼 너무나도 명백하게 맛이 없는 음료는 차이가 커지지 않는다고 믿는다.
무엇보다 이런 주장을 계속 펼치면 결국 음식을 맛으로 먹고 평가하지 않는다는 인식만 더욱 강화시킬 뿐이다. 과연 그래서 식품 제조 회사 아니면 음식 문화 전체에 어떻게 보탬이 될까? 그 논리를 확장하면 결국은 음식은 필요가 없어질 수도 있다. 어차피 맛은 중요하지 않으니까. 찾아 먹기도 귀찮고 그래봐야 맛도 없다면 차라리 소이렌트 같은 연료를 먹는 게 낫다. 술은 꼭 마셔야 되는 것도 아니고 즐거움의 매개체일 뿐이니 더더욱 마실 필요 없어진다. 나는 국산 맥주의 맛없음에는 절망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맛없음을 ‘쉴드’ 치려는 시도에는 끝없이 절망한다.
마지막으로 생각해봐야 할 점. “크라프트” 맥주가 흔해졌는데 과연 그럼 맥주 맛이 나아지는 걸까? 종종 가는 곳에서 탭을 꽤 이름 있다는 국산 맥주로 바꾸었는데, 한 번 마시고 이후엔 안 마신다. 위에서도 맛없음 자체보다 그 맛없음의 패턴에 대해 말했는데, 많은 국산 “크래프트” 맥주의 뒷맛이 찌르는 굉장히 일관된 지점이 있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은 대량생산 국산 맥주와 비교할 때 강도는 다를 수 있어도 기본 표정은 흡사하다.
개인적으로 국산맥주의 최대 미스터리는 밍밍한 맛이 아니라 ‘부드러운 목넘김’인거 같아요.
(밍밍한 맛이야 뭐 부가물 맥주는 거진다 비슷비슷한 것으로…)
탄산이 굉장히 강해서 목을 넘어가며 기화되는 탄산이 목구멍을 자극해서 굉장히 거칠게 느껴지는데 왜 그게 ‘부드러운’ 게 되는 걸까요? 정작 다른 맥주 먹으면 탄산이 그렇게까지 강하지 않아서 말 그대로 부드럽게 넘어가던데요.
fits도 똑같은 맥락인데 맛은 거의 보리차 수준으로 흐리고 강한 탄산이 그나마 이게 그냥 보리차가 아니라는 느낌을 주는데 설마 이 맹물스러움을 부드러움이라고 하는게 아닐까요? (왜 이게 부드러움인건지는 차치하고 말이죠)
국맥은 더운 여름날 먹기엔 쾰쉬나 칭따오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길들여진거 같긴 하지만요. 물론 외국에서 마셨던 생맥에 비하면 절망적인 퀄리티긴 합니다만 기본적인 맛이 부족하다며 까대도 팔려나간다는건 사회학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희석식 소주의 맥주 버전인거 같습니다. 저렴한 재료를 써서 취할 수 있게만 만든 저렴한 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