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작불과 베이글
집 근처에 베이글 가게가 생겼다. 베이글이라니. 반가워서 들렀는데 장작불로 굽는다는 점을 내세웠다. 과연 베이글에 장작불이 필요한 걸까. 그럴 수도 있다. 기술의 주기를 한 번 돌고 나면 더 원시적인 수단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있다. 나는 생산자가 아니므로 이유를 아주 정확하게 헤아리기는 어렵지만, 일종의 도전정신도 개입되리라 믿는다. 가스나 전기에 비해 장작불의 통제는 훨씬 더 힘들 수 있다. 한 번 불을 피우고 일정한 시간 동안 열이 유지되므로 빵의 생산 또한 그에 맞춰 돌아간다. 따라서 장작불은 굽기 이전까지의 과정을 완전히 익힌 실무자의 다음 단계 과업이라고 보아야 한다. 불의 관리 자체만으로도 빵과 별개로 돌아가는, 큰 과업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베이글이 굳이 장작불을 거쳐야만 할까. 도시라는 맥락 또한 혹자는 의심할 수 있다. 하지만 장작불 오븐 및 그릴이 레스토랑의 심장부를 파고든지도 오래 되었다. 한식에서 숯불을 식탁마다 올리는 것과 비슷한 이유, 즉 자연의 재현이나 현장감 등을 도모하려는 시도다. 아니면 나무를 태웠을 때 얻을 수 있는 향이라도? 2차 발효에서 1인분씩 개별 성형을 한 크기와 모양 자체가 정체성인 작은 빵이므로, 베이글은 굽는 시간이 길지 않다. 따라서 굳이 불의 향을 적극적으로 머금을 거라 보기도 어렵다.
그럼 왜 굳이 장작불을 써야 하는가. 실물 베이글을 보면 의문은 한층 더 깊어진다. 길게 늘인 반죽을 손 사이에 감아 모양을 잡았는데 (아니면 둥글게 빚은 반죽의 가운데를 눌러 구멍을 내기도 한다. 이 방법은 유난히 탄성이 강한 반죽 탓에 2차 발효 과정에서 구멍이 더 작아질 수 있다), 연결지점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2차 발효가 아주 잘 된 것이 아니라는 인상을 준다. 거기에 매끈하지 않은 표면까지 감안하면 과연 이 베이글에게 당장 더 필요한 요소가 굽기 이전까지의 과정에서 필요한 숙련도의 계발인지 나무를 땐 불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워진다.
물론 몬트리올식 베이글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장작불 오븐 자체가 정체성일 수 있으니까(작년에 먹었던 몬트리올식 베이글). 하지만 사면서 물어보니 그건 아니라는 답을 들었다. 그렇다면 이 베이글은 정확하게 무엇을 추구하는 걸까. 유튜브만 뒤져봐도 뉴욕의 베이글에 대한 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유의 고리 모양도 그렇지만 굽기 이전의 과정, 즉 성형 후 하룻밤 냉장 보관(지연 발효 retard) 및 알칼리성 물에 삶기도 정체성에 핵심이므로 거의 반드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을 거친 다음에는 제빵의 세계에서는 흔하다고 할 수 있는 데크 오븐에 구워 마무리한다. 말하자면 굳이 장작불을 거치지 않더라도 베이글의 가치는 떨어지지 않는다.
장작불이든 모닥불이든 피우겠다면 말릴 이유야 당연히 없다. 그러나 이런 식의 의사결정이 결국 음식 자체의 완성도와 크게 상관이 없거나, 더 나아가 완성도를 저해하고 최악의 경우에는 그걸 가리는 용도로 쓰인다면 반가울 수가 없다. 가격과 품질의 상관 관계도 물론 무시할 수 없지만, 한국의 매체에서 업장을 다루는 구태를 감안하면 이런 곳이 장작불을 쓴다는 이유만으로 소위 ‘맛집’ 대접을 받을 가능성도 높다.
베이글을 포함해 바게트 (물론 형태를 의미하지만), 비스킷 등은 딱 떨어지게 재료나 과정의 조합만으로 생각하기 어려운, 소위 ‘의식’ 같은 음식이라고 늘 말해왔다. 비교적 재료의 조합이 단순하므로 웬만큼 흉내는 낼 수 있지만 또한 그렇기 때문에 아주 잘 만들기란 꽤 어렵다. 거기에 지역이나 민족 등의 정체성까지 가세해 한층 더 복잡해진다. 말하자면 육체적인 만큼 정신적인 음식일 수 있고, 그 핵심은 불의 선택보다 인간 기계를 꿈꾸는 머리로 돌리는 무한에 가까운 반죽 빚기의 과정에서 올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그런데 너무 빨리 여러 지점을 넘어 도착하려는 건 아닐까.
*사족: 참고로 베이글은 개당 2,500원이다.
ㅎㅎ 코스트코 ##점 근처 가게 같네요. 코스트코 피자 도우 부분과 맛이 비슷했는데 가격까지 동일해서 재방문 의사가 생기지 않았던…
네…
뭐 요즘은 원전보다 화력발전을 대중들이 좋아하는 시대니까요
블로그 인생 13년에 최고의 덧글입니다…
“그런데 너무 빨리 여러 지점을 넘어 도착하려는 건 아닐까.” 이 문장은 두루두루 계속해서 쓸 수 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