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곳에서’ 후기의 후기
그러니까 원래 나의 손으로 떨어질 일이 없는 책이 전혀 기억도 없이 내 책장에 자리 잡고 있던 덕분에 그를 알게 되었다. 후기는 책에 실릴 것이므로 최대한 덤덤하게 썼지만, 실제로 책장의 ‘가벼운 나날들’을 넘어 ‘A Sport and a Pastime’의 원서의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을 때 나는 좀 아득한 기분이었다.
이마저도 너무 덤덤한가? 한마디로 ‘Holy shit!’이랄까(어제 아주 웃기는 맥락에 이 표현이 나온 글을 읽어서 써먹어 보고 싶었다). 이렇게 짧게 던져도 턱턱 꽂히는구나. 당시에 실낱 같은 여유-책 특히 소설을 읽을 수 있는-가 있어서 앨리스 먼로와 함께 읽고 있었는데 섬세하게 어루만지며 돌아가는 것과 얼핏 무심한 듯(blunt) 짧게 던지는 둘 사이의 대조가 즐거웠다.
버릇처럼 좋은 글을 만나면 머릿속으로 혼잣말처럼 읽으면서 번역해보는데, 설터의 글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서 재작년인가 와우북 페스티벌에서 마주친 편집자의 이야기를 들었을때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정말 요즘은 쓰기를 피하지만 그야말로 인연이 닿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는 이 아무개라는 한국의 필자 및 번역자입니다. 친숙함을 느끼시라고 말씀드리자면 조지아 공대에서 건축을 공부했고요…’
물론 한때 몇몇 신문에서 돌아오던 서간체의 칼럼이 너무나도 괴로웠으므로 그런 시도를 하려는 건 아니고, 다만 ‘그때 그곳에서’를 번역하며 두 가지를 생각했다. 첫 번째는 나의 멘탈. 막말로 선생님을 모셔야 하는 상황이지만 굳이 그렇게 의식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어차피 나를 거치지 않으면 선생님의 글도 한국어가 되지 못한다. 찬찬히 풀면 큰 문제 없을 거라 생각했다.
두 번째는 설터 선생님의 멘탈. 미국인이 유럽을 의식할 경우, 나는 이를 대체로 근원을 향한 향수 비슷한 것으로 이해한다. 굳이 ‘비슷한 것’이라 단서를 단 이유는 실제로 나고 자란 곳은 아니므로? 언젠가 함께 유럽을 돈 적도 있는, 한 눈에 이방인임을 확인할 수 있는 부류. 그리고 그 사실을 의식하지 않거나, 되려 의식마저 해버린 뒤 일부러 또 즐겁게 드러내는 부류-와 아마도 반대쪽에 있는 사람들. 그도 후자에 속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작년 이맘때 작업을 시작해서 가을에 바로 낼 계획이었는데 이제 나왔다. 오히려 딱 좋은 시기다. 실제로 여행에 들고 다니며 공감하기 좋은 여행기가 있고, 집에 늘어져서 여행에 대한 공상이나 잡지 못한 채 흘려 보내는 기회에 등을 곱씹기에 좋은 여행기가 있다. ‘그때 그곳에서’는 후자에 속한다. 게다가 이래저래 서늘해서 지금 읽기에 꽤 잘 어울린다. 그런 가운데 열어서 시작하고, 잊지 않고 닫아서 마무리하니 꽤 소설 같다.
매체 서평
이것으로 책 한 권이 나왔군요! 다음 타자는 아직 이름도 모르는 그것이겠죠? 🙂
그렇습니다 🙂
아앗 축하드립니다. 책디자인도 이쁘게 잘 나왔어요 ㅎ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