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와 안산
전주
기차는 오후 두 시 사십 분에 출발했다. 많은 일들이 얽혀 있어서 푸느라 예매를 머뭇거렸더니 오전 표가 없었다. 차라리 잘 됐네. 놀러 가는 길이 아니었으므로 딱히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한 가지를 빼 놓고는.
전주는 한 5-6년 만이었다. 취재차 하이트 맥주 공장을 견학갔던 게 마지막인지, 아니면 그 뒤에 한 번 정도 더 갔었는지 기억이 분명하지 않다. 어쨌든 두 가지를 기억하고 있다. 첫 번째는 저 먼 옛날의 기차 여행이었다. 세 시간 쯤 걸렸던가. 방직공장을 견학하고 어딘가에서 시간차를 두고 들어오는 한식을 먹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한국 돌아온 뒤의 여행이었는데 시장에 잘못 들어갔다가 후진으로 빠져 나오느라 엄청 애를 먹었던 일.
그곳이 어딘지 정확히 기억을 못했는데 일을 다 보고 그나마 가고 싶었던 곳을 찾아가니 그곳이 그곳이었다. 남부시장이라고. 일 때문에 뵌 분들이 밥을 같이 먹고 한옥마을이라도 같이 가자고 너그럽게 제안해주셨지만 사양하고 낮술을 마셨다. 어두워진 뒤 쓸데없이 걷다가 눈에 들어온 풍년제과에서 빵을 한 보따리 사서는 역으로 돌아와 덩그런 광장의 돌기둥에 앉아 있다가 기차를 타고 자정 좀 못 되는 시간에 서울로 올라왔다. 빠르지만 부드럽게 움직이는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와 소파에 한참 동안 그냥 누워서 창 밖으로 지나가는 차소리를 들었다.
안산
정말 오랜만에 안산에 갔다왔다. 길이 하나도 막히지 않아서 경고등이 들어오기 시작했는데도 그냥 달렸다. 멈추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 다시 달릴 수 없을 것 같았다. 붙잡힐 것만 같았다. 돌아오는 길에 창문을 활짝 열어 놓았는데 얼핏 아카시꽃 향이 스치고 지나갔다. 너무 짧은 순간이라 헛것, 아니 헛냄새를 맡았다고 생각했다. 그와 동시에 양은 찬합에 담겨 있던 아카시꽃 튀각이 떠올랐는데 내가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이젠 너무나도 오래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