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치병의 끝
에스프레소 한 잔을 들이붓고 병원에 들렀다. 한주일 내내 점심약을 먹지 않았다고, 이제 빼도 되지 않겠느냐고 이야기했다. 약 다섯 달만의 일이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지금껏 쓰지 않았던 마지막 한 꼭지를 입으로 크게 말하면서 써내려갔다. 그.렇.게.라.면.은.국.민.음.식.으.로.자.리.잡.았.다. 공교롭게도 책의 본문을 여는 글이었다. 어제의 일이었다. 탈고 11개월 만에 온갖 표류의 과정을 겪고 원고의 수정을 한 차례 더 마쳤다.
타임시트를 들여다 보니 네 번째 고쳐쓰기, 즉 다섯 번째 버전의 원고였다. 그렇게 난치병 같은 단행본 작업의 막을 드디어 내렸다. 대략 3년만의 일이다. 이제는 더 이상 쓰지 않아도 된다. 적어도 이 원고는 그렇다. 들여다 보기는커녕 생각만 해도 토하던 원고였다. 30분쯤 쓰다가 변기에 고개를 처박고 토한 뒤 다시 책상으로 돌아오곤 했다. 크흐흐. 고통 받아라. 너는 더 고통 받아야 한다. 그 정도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그나마 마지막 수정은, 나중에 또 이야기하겠지만, 담당 편집자의 깨알같은 피드백 덕분에 마칠 수 있었다. 그래, 이러려고 난치병 같은 걸 붙들고 있었던 거지. 이러려고 책을 쓰는 거지. 몇몇 아름다운 순간 덕에 책을 쓰고 옮기는 과정을 버틴다. 그 가운데 하나가 이렇게 피드백을 받아 보고 생각하는 순간이다. 나 아닌 누군가가 이것을 이해하고 있다는, 그렇기 때문에 반응을 한다는 일종의 안도감-피드백이 설사 부정적이라고 해도.
파일을 메일로 보내면서 이제는 시들어가는 창가의 카네이션을 바라보았다. 과장 아닌가? 토하긴 뭘 토한다고. 누군가는 묻겠지만, 이 모든 일들이 정녕 과장이었으면 가장 행복할 사람은 바로 나일 것이다. 본격적으로 날씨가 더워지기 전에 녹아서 사라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