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드 포크 (Pulled P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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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트코에서 미국산 목살을 덩어리로 판다. 대략 100g에 1,000원 수준. 가격보다 대량조리 및 장기 보관이 가능한 단백질원을 생각하다가 손님을 한 번 치른 풀드 포크의 가능성을 타진해보았다. 이름이 말해주듯 풀드 포크는 저온에서 오래 익힌 고기를 근섬유의 결방향대로 당겨 해체한 음식이다. 여러 근육 다발이 얇은 지방의 경계선을 놓고 공존하는 목살에 가장 잘 맞는 조리법이다. 다만 이름에 너무 충실해서 조리 후 당기기만 하면 수직 방향으로 긴 근섬유가 질기므로, 반드시 결 반대방향으로 자르는 과정 또한 거쳐줘야 한다. 당겨 찢은 다음 다져야 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최적의 조리법은 바비큐이지만 가정집, 특히 한국의 아파트에서 핏을 설치하거나 케틀 그릴에 불을 장시간 땔 수는 없는 노릇. 따라서 오븐에서 모사하는 게 최선이다. 다만 오븐에 집어 넣는 순간 이후로는 일정 시간 이후 내부 온도 측정 외에는 딱히 신경 쓸 일이 없으므로, 그 전 과정이 사실 더 중요하다. 간을 불어 넣는 염지와 껍데기(bark)를 형성하는 마른 양념 바르기 말이다.

아메리카스 테스트 키친의 레시피를 참고해 목살을 수평으로 반 갈래 표면적을 넓히고(껍데기의 면적이 조금 더 늘어난다. 정확하게 두 배는 아니다), 2kg대의 목살 한 덩어리를 기준으로 7.5%의 염지액(물 4L에 소금 300g, 설탕 100g)에 담가 2시간 냉장보관 한 다음 건져 물기를 걷어내고 머스터드를 바른 뒤 양념을 솔솔 뿌려 가볍게 입힌다. 제과제빵팬에 식힘망을 올리고, 그 위에 목살을 얹은 뒤 은박지로 밀봉해 145°C에서 3시간 익혀 분해하고,  은박지를 벗긴 뒤 1시간 30분 정도 더 익혀 껍데기를 만든다. 최종 목표 내부 온도는 93°C다. 오븐에서 꺼내 은박지를 다시 덮어 20분 두었다가 당기고 다진다.

이렇게 익힌 고기를 200g씩 소분해 짚락에 담아 냉동시켰다가, 시간을 두고 냉장실에서 해동시킨 뒤 덮밥이나 우동 등등의 주 단백질원으로 써 보았다. 느낀 바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IMG_71121. 전지전능하신 옥수수 덕분에 미국산 목살의 마블링은 꽤 훌륭한 편이지만, 전체를 보았을 때는 지방이 적다. 따라서 장기간 조리로 근섬유를 최대한 분해하더라도 별도의 수분-지방의 보충이 없다면 고기의 건조함은 피할 수 없다. 그리고 이게 장기 보관의 가장 큰 약점이다. 지역마다 레시피가 꽤 차이나지만, 풀드 포크는 다른 부위에 비해 바비큐 이후 소스에 꽤 많이 기댄다. 단순하게 맛에 악센트를 주는 정도가 아니고, 수분과 지방을 대폭 보충하는 역할을 맡는다.

하지만 케첩이나 식초 바탕의 소스가 샌드위치 외의 음식에는 썩 잘 어울리지 않고, 드문드문 먹는 경우를 대비해 굳이 만들어 장기 보관하기도 귀찮다. 게다가 금방 만들어도 꽤 빨리 수분을 잃는다. 여태껏 한국에서 소량으로 나와서 만족스러운 풀드 포크를 못 먹어본 이유와 같을 것이다. 미리 만들어 두었다가 스팀 등으로 수분을 더하거나, 아예 그조차 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다. 한편 집에서 채택한 냉동 보관도 고기의 질감 악화에 영향을 미친다.

2. 껍데기를 만드는 조리 후반부의 온도는 더 낮아도 상관 없다. 140°C를 유지했더니 고기가 좀 마른다. 130°C가 적합하다.

3. 훈연액(또는 목초액)은 가짜인가, 진짜인가. 제대로 된 제품을 찾아 쓰기만 한다면 연기 없이도 괜찮은 향을 불어넣을 수 있다. 오히려 직접 나무를 때는 ‘진짜’보다 향이 나을 수도 있다.

4. 크게 신경 쓸 일도 없고 레시피를 찬찬히 따라가기만 하는 쉬운 조리법이지만 5~6시간 이상 걸린다는 이유만으로 효율적인 수단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여러 명이 동시에 먹어 치우는 상황의 주요리로는 간편하지만, 혼자 두고 먹는 상황이라면 차라리 장조림이 훨씬 낫다. 압력솥에서 30분 익힌 뒤 뚜껑을 연 채로 10분 센 불에서 졸인다. 수분과 함께 보관할 수 있으므로 덜 뻣뻣해지고 전자레인지에 익히기도 좋다. 또한 통상적인 장조림감인 사태나 안심보다 훨씬 더 부드럽다.

5. 한국식으로 응용 가능한가. 머스터드로 끈끈한 막을 입한 뒤 양념을 달라 붙게 만드는 원리라면 한국의 전분 바탕 양념과 그 혼합물도 무리 없이 적용할 수 있다고 본다. 요즘 기본으로 통하는 단맛 위주의 양념이 장시간 조리를 통해 캐러멜화 되면 폭발적인 맛이 날 것이다. 미국을 통해 들어온, 한국식 양념을 가미한 멕시코 음식(코레아노스 같은?)을 먹어보면 고추장 같은 양념을 가열하지 않고 맛을 더하는 용도로만 쓴다. 아니면 바비큐의 경우라도 베트남 등 서양에서 이미 정착된 동양의 맛 조합을 쓰는 수준에서 그친다.

검증된 선례를 찾지 못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오소부코를 장조림과 동일시하듯 지나친 친숙함으로 가치가 낮아지는 것을 경계하기 때문일까? 또한 고추장 같은 걸 발라서 장기간 저온에서 익힌 바비큐를 사람들은 한국 음식이라고 여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