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과 문상
그러니까 지난 몇 달 동안 매 2주마다 마감을 했던 번역 원고는 이탈리아의 요리책(이라기 보다 레시피 사전) ‘실버 스푼 (또는 Il Cucchiaio D’argento)’ 이었다. 사실은 2015년 초에 착수해 진작 1/3을 끝내 놓은 상황이었는데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작년 11월 초부터 작업을 재개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제서야 이야기할 수 있다. 2015~2016년은 이 책과 ‘외식의 품격’ 후속작 원고가 이리저리 맞물려서 고통스러웠노라고. 괴로운 2년이었다.
하여간 토요일에도 열심히 일해서 마지막 열 몇 쪽만을 남겨둔 상태로 일요일 정오쯤 일어났는데, 눈 뜨자마자 민음사 회장님의 부고를 들었다. 이 책은 민음사의 임프린트에서 나올 예정이다. 어디 이 책 뿐인가. ‘외식의 품격’ 후속작 또한 또 다른 민음사의 임프린트에서 나온다. 그냥 이 원고를 이렇게 끝내게 되는 상황만으로 나 혼자 좀 울컥하는 상황이었는데, 부고를 들으니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기분이 들었다. 어쨌든 이 두 권의 책을 합치면 2,000쪽이 넘는 이 상황에서 문상을 가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번역을 끝내는 마지막 한 시간은 좀 고통스러웠다. 또렷하게 기억나지도 않는 2015~2016년을 자꾸 되새겼달까. 그래서 해가 질 때쯤 끝을 보고 주저앉아 잠시 토하다가 깜빡 잠이 들어 완전히 컴컴해진 다음 깨어났다. 원래 마감-청소-재활용 쓰레기 버리기-외출 (및 문상)의 아름다운 시나리오를 짜놓았으나 허사가 되어 버리고 간신히 재활용 쓰레기만 버리고 뛰어갔다. 지난 번 백남기 씨 문상을 갔을 때는 택시로 바로 장례식장 앞에서 내려 몰랐는데, 혜화역에서 지하철을 내려 걸어 들어가니 너무 많이 바뀌어 있었다. 1998~2002년까지 치아 교정 등등 때문에 꽤 자주 갔는데 기억이 안 날 정도였다.
원래 없는 인간 관계 속에서도 상가엔 종종 갈 일이 생기는데, 사실 작년의 친구 부친상 외에는 문상 뒤 앉아서 무엇인가 먹고 간 적이 없었다. 그 또한 아는 사람이 없어서 그랬던 것인데, 어제는 그래도 이래저래 아는 사람, 또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얼굴 등등도 있어서 예상과 달리 꽤 오래 앉아 있었다. 카스 프레시 다섯 캔을 비울 정도로 오래 앉아 있었다. 그리고 원래 가려던 곳에 들러 인디카 한 잔을 마시고 집에 돌아왔다. 이래저래 큰 일이었으므로 기록으로 남겨 두기 위해 쓰긴 쓰는데, 그만큼 ‘현타’가 크게 오는 중이라 매끄럽지 않다. 며칠 일을 좀 쉴 생각이다.
*사족: 마지막 1시간 쯤이 너무 지루해서 페리스코프로 “생중계”를 했다. 1시간 15분까지는 타자치는 소리+폴리니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만 나오고, 마지막 15분에 책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한다.
실버스푼 번역본은 언제쯤 볼수있을까요?
책의 인쇄를 원저작권사인 파이돈에서 직접하는데 그 시기가 7월 경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때쯤 나오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