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5만원) 완전 채식의 가능성
월 5만원으로 채식이 가능할까? 글쎄, 요즘 사진의 오이를 먹는데 한 개에 1,390원이다. 이것만 하루에 한 개씩 먹어도 30일이니까 41,700원, 5만원의 83%에 육박한다. 물론 이보다 싼 오이도 있다. 이 오이를 산 마트 근처에 홈플러스 익스프레스가 있는데, 3개 들이가 2,980원이다. 그마저도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기복이 좀 있다. 저 오이를 발견하고 홈플러스 오이의 품질이 굉장히 떨어지던 날 갈아탄 뒤 다시 바꿀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물론 이것도 최선인지는 모르겠고, 사실 겨울에 오이 자체를 먹는다는 게 바람직한지도 생각을 좀 더 해봐야 한다.
한식의 중심에 밥이 존재하므로 채식을 비교적 쉽게 행동에 옮리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채식 자체는 가능하지만 균형을 잡기는 더 어렵다. 기본적으로 중심인 밥이 탄수화물이기 때문이다. 당장의 포만감은 양으로 어떻게든 갈음할 수 있다고 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균형이 맞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채식, 특히 완전 채식은 여타 식생활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원래 고기 등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식단에서 한두 요소를 빼고 나머지를 채우는 방식으로 구성하면 안된다. 애초에 세상에 그런 재료가 없다고 가정하고 기초부터 다시 짜야 한다. 그럴때 과연 어떤 요소를 고려해야 할까.
1. 전제: 늘 말해왔듯, 난 기본적으로 (완전) 채식이 어떤 식으로든 육류-해산물-유제품 등등을 포함시킨 식생활 만큼 균형 잡히기가 어렵다고 믿는다. 미국에선 종종 운동선수를 비롯한 유명인사들이 고강도의 직업 운동 등에 전혀 지장 없는 채식 라이프 스타일을 내세우고 요리책도 펴 내지만, 그들은 사정이 다르다. 그 1인을 중심으로 참모진들이 붙어 움직이는 기업체나 다름 없다. 균형을 위한 식단이나 식재료 개발 및 조리를 위한 전담 인력 따로, 먹는 사람 따로 존재한다. 생활인에게는 이런 여력이 전혀 없다. 자기가 개발하고 조리해야 한다. 요리에 익숙하지 않다면 더 힘들 수 있다.
다만 채식은 음식 내적인 것보다 외적인 요소가 더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으므로 결정 자체는 언제나 존중한다. 정치나 종교, 또는 그 둘에 무한수렴하는 식품 윤리일 수도 있다. 문제는, 현재 한국인의 가장 평범한 일상의 차원에서 채식이 식품 윤리의 이상을 어느 수준까지 채워줄 수 있을지는 모른다. 달리 말해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닭이나 돼지의 사육 환경이 비윤리적이어서 선택한 채식의 식재료 재배 과정이 바라는 만큼 윤리적이지 못할 가능성도 아주 높다는 말이다.
2. 육체의 포만감: 밥에 나물, 또는 김치-젓갈을 빼면 찹쌀풀로 발효를?-만으로 채식이 된다고 믿는다면 굳이 반박할 생각은 없다. 다만 위에서도 말했듯 균형이 잡혔다고 보기는 어렵다. 채식의 관건은 단백질 다량 섭취원의 확보다. 쌀, 특히 현미라면 균형이 아주 떨어지는 식재료라 보기 어렵지만 쌀의 품질-밥맛과 단백질 함유량은 반비례 관계임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단백질 함유량이 적을 수록 연하고 맛있는 쌀로 친다는 말이다.
따라서 쌀은 바탕 수준으로만 여기고 다른 단백질 공급원을 찾아야 한다. 한국에 이게 부족하고 또한 조리법도 다양하지 않다. 일단 두부는 제품군도 다양하지 못하고 딱히 맛있지도 않다. 동네 작은 재래시장에서 파는 따끈따끈한 두부는 아마 한 사흘만 연달아 먹으면 당분간 쳐다보고 싶지 않을 확률이 높다. 그 다음으로 콩이나 버섯이 있는데 ‘간이 적당해 다량(150g 이상?) 먹을 수 있는 조리법’이 어떤 종류일까? 일단 간장-고추장-된장류의 발효 장류 양념은 맛이 지나치게 강해질 가능성이 높다. 핵심은 ‘밥을 먹게 만드는 반찬’이 아니고 ‘밥이 보조를 맞추는 수준으로 개입하는 주요리’를 만드는 것이다.
3. 정신의 포만감: 다양성을 의미한다. 질리면 실패한다. 그런데 재료 자체의 다양성부터 걸린다. 일단 재료를 줄 세워야 한다. 기준은 바로 위에서 언급한 단백질 함유량-포만감이다. 두부는 일단 건너 뛰고 콩과 버섯부터 헤아려보자. 과연 아무 마트 등등에서 살 수 있는 종류가 몇 가지인가? 또한 그 재료로 몇 가지의 다른 조리를 할 수 있는가? 저변이 딱히 다양하지도 않지만, 둘 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계발해야 할 개인의 능력이다.
채식 식단 구성과 조리를 위해 직장인이 학원 같은데 다닐 여건이 되는가? 안된다면 독학할, 이론과 원리에 바탕한 요리책이나 영상 자료가 존재하는가? 정신의 포만감을 만족시키려면 조리 자체의 기술도 중요하지만 맛내기가 더 중요하다. 기본 다섯 가지 맛을 빠짐없이 최대한 활용해서 자신을 속인다 싶을 정도로 맛을 낼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신맛과 감칠맛이 중요하다. 그리고 지방 또한 육식보다 더 넉넉하게 써야 감촉이 떨어지지 않는다. 한마디로 육식보다 더 고도의 이해와 기술이 필요하다.
4. 외부 환경: 아침에 맥도날드 같은, 또는 채식 전문 패스트푸드 같은 가게에서 채소 부리토 같은 걸 하나 사들고 먹으면서 출근한다거나, 점심에 구운 버섯을 가득 채운 베트남식 스프링롤을 회사 1층의 푸드코트 간이 매대에서 먹을 수 있는 환경이면 훨씬 나을 것이다. 채식이 존중 받는 만큼 개발되고 선택도 다양한 환경 말이다. 한국은 반찬 문화 때문에 마치 채식이 자유로이 가능한 것처럼 착각하기 쉽지만 식사의 실제 정체성을 결정하는 음식에는 소량이라도 동물성 재료가 들어갈 확률이 아주 높다. 국이나 찌개 등 국물 음식이 특히 그렇다. 게다가 반찬을 까는 공간 전개형 식사는 개인을 보장하지 않으니 더더욱 문제다. 꼭 붙어서 먹는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 어쩌면 이 환경 자체가 인식과 더불어 가장 큰 걸림돌이 아닐까. 기본적으로 밥 제대로 먹기 힘든 사회에서 한두 층 더 어려운 (완전) 채식을 실행에 옮기기란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고 본다.
*사족: 콩고기 등을 먹는 선택은 일단 육식의 모조품이라는 측면에서도 걸리지만 가공식품이므로 채식의 일반적인 개념과도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채식이 더 어렵다고 본다.
완전채식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공감되는 글입니다. 균형을 찾아가는 식단을 연구하는것은 즐겁지만 가끔은 역시 힘이 듭니다.
좋은 지적입니다. 채식은 대부분 동물보호나 환경, 건강등의 이유로 시작하는데요, 순수 비건의 길은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반대로 비만이나 각종 성인병이 문제가 되는 현대사회에서 육체적 포만감이나 정신적 포만감이 꼭 좋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다양하게 먹는 것이 제일 좋기는 하지만 라면만 먹거나 패스트푸드만 먹는 사람들보다는 건강에 조금이나마 이로울 거라 생각하고요, 또한 환경에도 미세하게나마 도움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순수 비건으로 살기 힘들기 때문에 덩어리로 된 동물성 단백질을 먹지 않는 비덩부터 시작하는 것도 환경이나 건강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멸치만 먹어도 육식이긴 한데요, 채식을 하고 오래 지나면 입맛이 예민해지고 또 신선한게 입에 잘 맞습니다. 두부나 버섯도 간을 하지 않아도 맛이 있고요, 상추나 쌈야채는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습니다. 없어서 못먹죠. 밥상에 고기 없으면 밥 못먹는 분들처럼 채식인이라면 밥상에 쌈이 없으면 못먹을 정도입니다. 콩고기를 채식의 개념이 아니라고 보시는 건 건강채식을 말씀하시는 것 같고요, 환경이나 동물보호 차원에서 하는 채식의 개념에는 잘 맞습니다. 건강채식을 선택하신 분들은 당연히 콩고기 잘 안먹습니다. 채식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굉장히 많고 재료야 인터넷으로 얼마든지 구하고요, 때로는 육식하는 분들이 먹는게 늘 뻔하고 단조롭다는 생각이 듭니다. 채식하는 분들과 얘기해보면 같은 음식 먹는 분들은 하나도 없고 그래서 늘 배우게 됩니다.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내는 차원에서는 채식에 더 다양성이 많아요. 그리고 채식 10년 이상 하신 분들도 미네랄이나 비타민, 단백질이 부족하다는 말은 못들어 봤고요, 오히려 육식하는 분들이 몸이 산성이 되서 잘 챙겨먹지 않으면 각종 미네랄이 부족하게 될 수 있습니다. 적어도 가공식품위주로 채식하지 않는 한 채식하는 분들은 더 건강한 편입니다. 직접 3개월 이상 체험해보시면 공감하시리라 믿습니다. 좋은 글 좋은 지적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