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퍼런스의 부족과 조리 / 맛의 고유성
월요일이었나. 눈을 뜨자마자 음식 관련 소위 ‘레퍼런스’가 부족하다는 몇 사람의 트윗을 보았다. 정말 그러하다. 한국 필자가 쓴 레퍼런스는 거의 전혀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고(죄송합니다, 업계 종사자 여러분. 그러나 이게 제가 느끼는 현실입니다), 번역 소개되는 책들도 많지 않다. 늘 말하지만 음식에 대한 책이 소개 안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한쪽으로 심하게 쏠려 있다.
어느 정도인가 나도 확인해보고 싶어서, 이미 나온지 3년이 훨씬 넘은 ‘외식의 품격’에서 참고 서적이라 소개한 책들의 번역 출간 여부를 확인해보았다. 굳이 3년도 더 된 책의 참고 서적을 찾아 보는 이유는 두 가지다. 1. 3년 여라면 책을 번역 출간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저 시점에서 저작권을 사거나 번역을 시도했다면 대부분의 경우 이미 출간 되어야 맞다. 2. ‘외식의 품격’ 후속 단행본을 쓰며 다른 책들도 물론 보았지만 저 책들 또한 그대로 참고했다. 말하자면 새로운 책들이 나오니 보충하지만 3년 전에 유효했던 책들도 아직도 레퍼런스로서 유효한 상황이다.
-헤럴드 맥기 / 음식과 요리(On Food and Cooking): 번역 출간 이후 절판. 설사 절판되지 않았더라도 나는 번역본에 신뢰를 전혀 주지 않았다. 알라딘에서 회원 중고 19만원이던데…
-네이선 미어볼드 외 / 모더니스트 퀴진 (Modernist Cuisine): 미출간. 누군가 저작권을 샀다는 이야기는 몇 년 전부터 들었다. 한 권짜리 가정용(Modernist Cuisine at Home)이라도 나오면 좋겠는데 전혀 알 수 없다. 참고로 올 5월 말에 세 번째 시리즈 ‘모더니스크 퀴진 브레드’가 출간된다. 역시 다섯 권.
-아키 카모자와 & 알렉산더 탤벗: 아이디어스 인 푸드 (Ideans In Food): 미출간
-마이클 룰먼: The Elements of Cooking / Ratio / Twenty / Charcuterie / Salumi-전부 미출간. 그나마 이 가운데 한 권을 내가 올 상반기 내로 번역할 예정이다.
-캐런 페이지 & 앤드루 더넨버그: Flavor Bible / What to Drink with What to Eat / Food Lover’s Guide to Wine- 전부 미출간
-퍼거스 헨더슨: The Whole Beast- 미출간
-피터 라인하트: The Bread Baker’s Apprentice / Whole Grain Bread-미출간. 그 이후 출간된 ‘Artisan Breads Everyday’나 ‘Bread Revolution’도 미출간. 샌프란시스코 타르틴의 책이 번역 출간 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저변을 넓혀주는 레퍼런스의 역할을 하기엔 빵이 너무 어렵다고 본다. 일부 실무자의 실력을 다듬는 용도라면 모를까. 일본 책 ‘효모로 빵 만들기’ 같은 책도 특수성을 감안하면 마찬가지다.
-켄지 로페즈 얼트: The Food Lab- ‘외식의 품격’에선 홈페이지(www.seriouseats)를 언급했는데 책이 나왔다. 이것도 주워 듣기로 어디에선가 저작권을 사갔다던데 과연 나올까? 어쨌든 미출간.
-일련의 문화사 책들은 어차피 많이 나오고 있으니 생략.
-마크 펜더그래스트: Uncommon Grounds-‘매혹과 잔혹의 커피사’라는 제목으로 출간. 그나마 커피의 저변이 꽤 넓어지고 문화사 책이라 나왔다고 믿는다. ‘블루 보틀 크래프트 오브 커피’도 마찬가지로 번역 출간. 커피의 사정이 좀 나은지도.
-‘The Perfect Scoop’의 저자 데이비드 리보비츠의 책은 두 권이 번역 출간 됐는데 레퍼런스 쪽으로 치우치는 책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더 이론 및 기술 지향적일 수 밖에 없는 CIA의 책들도 전부 미출간. 물론 저작권이랄지 학교의 국내 진출 문제 같은 것들이 외부 조건으로 작용할 거라 생각한다.
-르 꼬르동 블루의 책들 사정도 잘 모르겠다.
물론 레퍼런스의 선택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논박 가능하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여기 늘어놓은 게 전부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고, 일본이나 유럽 쪽의 책들도 있을 거라는 주장도 당연히 유효하다. 나는 다만 내가 구사 가능한 외국 언어 세계인데다가 번역 확률이 가장 높은 영어쪽 책만 들여다 보았을 뿐이다. 그리고 확실한 건, 그리 크지 않은 표본 가운데서도 패턴은 너무나도 뚜렷하다-레퍼런스로 삼을 수 있는 음식책은 국내에 잘 소개되지 않는다. 심지어 존재도 모른다. 모 대학원 박사과정 수업했을때 ‘모더니스트 퀴진’ 다섯 권 들고 가서 보여줬더니 대부분 처음 본다고 했다. 도서관에 들여 놓는다고 그랬는데 과연 그랬는지 궁금하다.
거기까지 쓰면 힘이 빠질 것 같아서 레퍼런스의 정확한 규정은 다음 기회로 넘기겠다. 오늘은 이러한 레퍼런스의 부족이 낳는 폐해에 대해서만 살펴 보자. 가장 큰 문제는 역시 ‘갈라파고스-우물 안 개구리’의 팔자다. 조리 기술은 발전하는데 조리법이 업데이트 되지 않는다. 조리법이 업데이트 되지 않는다는 건 도구나 기술, 정보를 활용해 새로운 시각으로 볼 기회도 만들어 내지 못함을 의미한다. 검증되지 않았거나 이미 틀린 것으로 검증된 정보-스테이크의 육즙 가두기 및 재분배-와 같은 정보가 계속해서 하나의 세계 안에서 돌고 돈다.
이 악순환을 깨려면 새로운 정보를 접해야 되는데 모국어로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 원어로 된 걸 찾아야 되는데 그게 원활했다면 이런 상황은 아닐 것이다. 현재 한국의 식탁의 구성하는 소위 “전통” 조리 문법은 효율성이나 재료의 이해를 통한 맛내기에 비효율적이다. 하지만 이것을 검증할 자료가 거의 없는 상태이므로 객관적 또는 비판적인 시각으로 재평가가 안되고 있다.
재평가만 안되고 있으면 괜찮은데, 상황이 더 나빠진다. 몰이해 등으로 굳어진 비효율 등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현재의 조리 문법이나 그를 통해 얻은 맛을 마치 한식의 고유함으로 착각하고 장점인양 인식한다거나, 더 나아가 비호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요즘의 한식이 품고 있는 많은 불편함이 여기 속한다. 온도가 지나치게 높은 국물 음식류, 부위에 상관 없이 잘게 잘라 따로 간을 하지 않고 불판에 올리는 직화구이, 심지어 여전히 단맛 위주의 민속주 등도 여기 속한다. 굳이 매운맛을 낼 필요가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과연 콩나물 무침에 뿌리는 고춧가루가 효율적으로 목적을 이뤄 줄까? 그렇지 않다. 한국 음식의 고유함을 조리법의 고유함으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한식 외의 바깥 세상에서 존재하고 공유 되는 보편적 지식이나 이론을 모르기 때문에 조리법이나 맛 등이 검증과 변화의 대상이라고 생각하지 않거나 못한다.
하지만 고유하다고 믿는 조리법조차 사실은 고유하지 않은 도구나 기술을 선택 수용해 얻는 결과라는 걸 사람들은 간과한다. 장작불이 전통 요리의 필수 요소는 물론 아니었겠지만, 이제 그런 수준의 원시적 기술을 고집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히려 남아 있다면 그 시도 자체 만으로 가치가 있을테지만 그런 상황도 아니다. 애초에 서양에서 발견 및 발명된 가스나 전기로 모든 음식을 만든다. 대부분의 평양냉면을 담는 스테인리스 대접은 과연 언제부터 쓰였을까? 또한 여전히 차갑고 냄새나는 스테인리스를 고수하는 이유는 진짜로 전통 때문인 걸까? 음식 문화에서 전통이라 믿는 많은 것들이 실제로 누구를 대상으로 어떤 측면에서 편리함이나 즐거움을 정녕 주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한 국내의 레퍼런스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 이미 검증이 끝났거나 끊임없이 검증 대상이 되는 해외레퍼런스의 적용은 가능한가? 이를테면 해롤드 맥기나 네이선 미어볼드의 책을 이해해서 한국 조리가 안고 있는 비효율성을 개선할 수 있을까? 물론 나는 가능하다고 믿는다. 무엇보다 문제 해결로서의 조리가 마지막 단계에서는 각 문화나 취향 등을 감안 및 반영한 특수해로서 맛을 찾지만, 그걸 위해 거치는 과정의 대부분은 인류의 보편해인 과학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과학으로서의 요리에 대한 가능성을 굉장히 간과 또는 폄하하고 있기 때문에 발전이 없는 것은 물론, 외국의 검증된 레퍼런스를 통해 외삽할 시도도 못하는 것이다.
갈비찜 같은 음식을 예로 들어보자. 한국식은 간장-설탕-생강-마늘-참기름 등의 양념 조합으로 맛을 내지만, 기본 원리는 운동을 많이 해 맛은 있지만 질긴 부위를 과조리를 방지해주는 에너지원-물-에 담가 오래 조리해 분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적용한 음식은 심지어 서양에도 존재한다. 원래 정강이 등으로 만들었다가 지난 10년 동안 미국에서 싼 이점을 받아들여 결국 갈비로 많이 만드는 오소 부코다. 한국의 레스토랑에서 오소 부코를 내면 ‘장조림 같다’는 반응이 나올 정도로 먹는 이도 유사성을 인식한다.
많은 경우 이렇게 질긴 부위를 오래 끓이는 레시피는 국소 열원인 화로보다 공기 자체를 데우는 오븐에서 조리한다. 그렇다면 오븐에 냄비째 갈비찜을 익히면 전통의 영역을 벗어나게 되는 걸까? 애초에 가스화로 조차 한국 고유의 조리도구는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새로 짓는 아파트에 붙박이로 들어갈 정도로 오븐도 대중화가 되었다. 가정식의 비정상적인 인기에 홈베이킹도 편입했으니 크든 작든 오븐 한 대씩 두고 빵이든 쿠키든 구워 먹는다. 그런 오븐에 더 많은 쓰임새가 있다. 이걸 누가 이야기해줄 수 있으며, 아예 선별적 적용이 나쁜 습관으로 굳어진 한식 식당 주방에는 누가 새로운 접근에 대해 운이라도 뗄 수 있을까.
어제 어떤 잡지를 우연히 샀다가 새로운 음식에 대한 경향이라며 쌀을 들먹이는 글을 읽었다. 아예 가치가 없다고 폄하할 글은 아니었지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주지는 않는다. 그것은 현재 모국어로 된 자료 안에서 얻을 수가 없다. 더 멀리 보고 지식과 정보를 수집해 더 높은 곳에 있는 개념에 접근해야 한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발전을 안 한 게 아닌데, 그에 비해 음식 분야는 육신성 때문인지 너무 더디고 보수적이다.
CIA의 교과서인 프로페셔널 셰프는 꾸준히 번역되서 잘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