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트코 잡담
점심 먹고 늦은 오후, 큰맘 먹고 차를 몰아 코스트코에 갔다. 이것이 왜 굳이 큰맘 먹고 해야 되는 일인가. 썩 좋지 않은 멘탈로 인해 요즘 불필요한 운전을 최대한 자제하기 때문이다. 그럴땐 운전이 가장 무섭다. 코스트코는 버뮤다 삼각지대처럼 멘탈이 흐려지는 곳이니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게다가 나는 코스트코 가까이에 산다. 그럼 맨몸으로 걸어 사가지고 오는 물건의 부피와 무게가 갈수록 늘어가면서 한계에 도전한다. 여태까지의 최고 기록은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갔다가 세일하기에 집어온 에비앙 한 상자였다. 물론 그걸 집까지 들고 걸어오면 멘탈은 물론 피지컬마저 좀 상한다. 그래서 자제하는데 요즘 너무 운전이 하기 싫은지라 최근 커크랜드 2L물 여섯 병 들이를 맨몸으로 사가지고 왔다. 역시 멘탈과 피지컬이 동시에 힘들었다. 마침 물이 또 떨어졌는데 이번엔 크고 작은병이 전부 떨어졌다. 며칠 고민했다. 큰병과 작은병 한 상자씩 이틀에 나눠서 가져와 볼까. 큰 병은 조금 괴롭지만 자신있는데 그보다 부피와 무게가 조금 더 나가는 작은병은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운전하기로 마음 먹었다.
상술하기는 어렵지만 채 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물 서너 상자와 계란, 우유만 사가지고 오는 간단한 여정이었음에도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듯한 느낌으로 돌아왔다. 두 가지가 기억난다. 첫 번째는 분명히 ‘회원카드 당 한 팩’이라고 써붙여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두 팩을 집어 와서는 ‘아이고 한 사람당 한 팩이라는 얘기 아니었나, 몰랐는데 그냥 주면 안되나 허허허헣허헣’이라 눙치려 들던 노부부.
그러나 코스트코 직원들은 단호하다. 한 팩을 낼름 빼앗아 계산대 밑으로 치웠다. 그 단호함에 감명 받아 내 차례에 계산하며 ‘아 그러니까 써 붙여 놓았는데도 왜 저러는 걸까요 모른척 가져가려 드는 거겠죠 흐흐흐흐흫흐’라 쓸데없이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다가 분명히 있던 5,000원짜리 한 장이 없어진 걸 발견하고 돈이 모자랄까봐 식은땀을 흘렸다.
두 번째는 바로 앞 사거리가 묘하게 안 뚫린다 싶어 봤더니 대낮에 전신주 교체 공사 같은 것을 하고 있어서 언제나 복잡한 코스트코-서부간선도로 진입 사거리의 한 차선이 막혀 있었다는 것. 코스트코를 빠져 나오면 안심일 줄 알았는데 도무지 안심을 할 수가 없었다. 문자 그대로 식은땀을 흘리고 집에 돌아와 안타깝게도 저녁때까지 쓰러져 잤다. 요즘 멘탈에 무리였던 것이다.
하여간 코스트코에 갈때 마다 취직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우스개가 아니고 진심이다. 글쓰기로 과연 먹고 살 수 있을까? 올해의 목표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생존이다. 전반기까지는 일도 확보되어 있고 어떻게든 될 것 같은데 과연 후반기는 어떨까? 난 10년도 넘게 코스트코빠로 살아 왔기 때문에 잘 할 자신 있다. 농담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