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디저트와 소비의 삼각형

img_6507

‘한국은 디저트 브랜드의 무덤’이라는 중앙일보의 기사를 읽었다. 어쨌든 이런 기사가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기사에서 언급한 모든 디저트가 똑같이 ‘고급’의 영역에 속한다고 보지는 않기 때문에 생각은 조금 다르다. 그나마 피에르 에르메 마카롱 정도가 진정한 고급 디저트라고 본다. 그리고 이런 디저트가 잘 팔리지 않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돈이 없기 때문이라고 본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돈-취향-형식(form factor)의 세 요소가 맞물려 서로 영향을 미치는 삼각형이 고급 디저트 소비에 영향을 미친다.

기본은 어쨌든 돈이다. 돈이 있어야 뭐라도 사먹을 수 있다. 예산이 한정되면 선택 과정 또한 길고 복잡해질 수 밖에 없다. 여기에 형식이 영향을 미친다. 돈을 낸 만큼 만족을 안기는 형태고, 이는 한편 두려운 개념인 ‘가성비’와도 맞물린다. 맛은 추상적인 영역에 속한다. 따라서 추상적인 개념의 발전에 높은 가격이 반영된다면 그 가치에 의심을 품는 소비자가 나온다. 비율이 높을 수록 마카롱 같은 디저트는 잘 팔리기 어려워 진다. 작은 부피에 압축된 맛을 담았기 때문이다. 가성비를 최고의 미덕으로 삼는 소비자라면 비슷한 예산으로 더 부피가 큰 케이크 등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은 게 한국의 현실이다.

게다가 라 뒤레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데, 피에르 에르메의 매장은 공간을 제공하지 않는다. 나는 이것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다수의 소비자에겐 선택에 장애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소위 고급 디저트라면 음식 뿐만 아니라 경험을 제공해야 된다는 믿음을 강하게 가진다면, 사고 먹는 곳을 별개로 생각해야 하는 마카롱은 매력이 떨어질 수 있다. 누군가는 소위 고급 제품을 사다가 집의 자기 식탁에서 펼쳐 놓고 먹는 선택이 싫을 수 있다. 피에르 에르메 마카롱 세 개 먹을 돈이면 디저트 카페에 앉아 케이크에 커피를 마실 수 있다.

이때 취향이 변수로 작용한다. 마카롱이라는 특정한 음식을 정말 좋아한다면 두 가지는 호환 가능한 선택이 아니거나, 아니면 정 반대로 대등한 가치로서 상황에 따라 자유롭게 호환 가능한 선택일 수 있다. 말하자면 또렷한 취향이 존재하는 경우 다른 음식은 다른 선택으로서 다양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각각의 독자 영역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취향이 없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모든 디저트를 먹는 행위가 하나의, 원래는 입체적이어야 하나 정반대로 납작한 경험으로 단순해질 수 있고, 그런 상황이라면 무엇을 먹어도 똑같다. 사람을 만나기 위한 매개체, 혹은 소비의 패턴을 전시하기 위해서 SNS의 피사체로 선택하는 상황이라면 음식이라는 대상에 품을 수 있는 취향은 전혀 고려되지 않을 수도 있다. 디저트가 아니더라도 많은 음식이 굳이 그럴 필요 없음에도 불구하고 유행을 타다가 사라지는 이유다. 다시 돌아 돈이 없고, 한정된 선택을 해야 하는 가운데 굳이 맛일 필요 없는 이익을 자신에게 안기는 아이템을 선택한다. 그리고 필요가 없어지면 버림받는다. 애초에 맛을 기준으로 찾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하다.

다시 마카롱으로 돌아와 생각해 보면 이미 대중화 되어 끝없이 넓어진 스펙트럼도 영향을 미친다. 밀가루를 써서 만든 900원짜리도 존재하는 현실이다. 코스트코 같은데서 냉동 제품도 판다. 웬만한 곳에서는 쉽게 찾을 수 있다. 프랜차이즈가 차지하는 중간 영역은 흐릿하리라 보지만, 가격과 맛, 품질의 상관관계로 줄을 세운다면 피에르 에르메는 큰 회의 없이 최고의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그러나 그게 현실적으로는 큰 의미가 없을 확률이 높다. 그거나 저거나 똑같은 마카롱이고, 싼 건 얼마든지 존재한다. 맛을 놓고 보자면 선택이 아쉽지 않은 제품이지만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거나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리고 사실 이 모든 논의의 위에 음식으로서 디저트의 태생적 한계가 존재한다. 잉여 음식 말이다. 먹으면 좋지만, 안 먹어도 큰 일 안 나는 게 디저트다. 형식이 미덕인 레스토랑에서조차 디저트의 비중을 줄이는 경향이 존재하는 현실이다.

사족
1. 말하지만 양념의 매운맛이 강하고 그 가운데 단맛이 역전된 한국 음식의 맛을 감안하면, 디저트의 설자리는 언제나 넓지 않다. 믹스 커피 혹은 그 고급형인 에스프레소 배리에이션 음료가 식후 대응하기 가장 좋은 형식이다. 굳이 다른 걸 의식적으로 선택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2. 재료와 기술 인력의 열악함 등을 얼마든지 이유로 삼을 수 있고 실제로 분명히 그렇지만, 난 현지 생산에 도전하지 않는 한 이런 디저트들의 안착 또는 정착은 쉽지 않다고 본다. 단순한 품질의 열화보다, 저변이 넓어질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3. 한국이 일본 등의 동아시아 지역과 한데 묶어 ‘촉촉하고 부드러운 식감을 선호’하는지 난 잘 모르겠다(기사 참조).

3 Responses

  1. B says:

    촉촉하고 부드러운 식감을 즐기는 민족이 활어회를 그렇게 좋아하는것도 이상한 일이죠.

  2. Real_Blue says:

    말씀하신데로 고급 디저트가 주는 효용(혹은 편익)은 맛이 꼭 100% 일 필요가 없지만, 또 너무 작아진다면 바람직한 시장은 아니겠지요. 하지만 계속 작아지는게 사실인거 같아 서글픈 마음이 드네요.

    제가 보기에 수입 고급 디저트가 시장에서 뿌리 내리기 힘든 이유는 비효율에 있는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주요 원재료나 완제품을 수입해 오는 방식은 비효율 적일 수 밖에 없고, 맛 이외의 효용, 즉 장소나 패키지 같은것이 주는 경험적 효용은 많은 비용을 수반하기 때문에 비효율성은 더 커질 수 밖에 없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따라서 일부 효용을 (먹을 장소 같은) 포기 하거나 높은 가격이 책정되거나 해야 하기 때문에 요즘같이 지출에 까다로운 소비자를 상대 하기가 갈 수록 힘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결론은 사족2에 쓰신데로 현지생산에 도전 하지 않고 답이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그 과정역시 초기 다른의미의 비효율과 어려움을 동반하겠지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