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
원고를 다시 한 번 떠나 보냈다. 올 5월 처음 떠나 보냈을때 그는 85-90%의 완성도를 지니고 있었다. 이후 여러 가지 사정으로 11월에 책이 나올 수 없게 된 이후, 자학하는 심정으로 한 번 더 윤문하다가 급한 번역 프로젝트 때문에 잠시 또 손 놓고 있었다. 그러다가 다시 보내야 할 상황이 되었으므로 며칠 동안 바짝 보고 고쳤다.
이번 윤문은 굳이 횟수를 따져 보자면 4차 정도 된다. 지난 번 퇴고까지는 컴퓨터로만 보았던 원고를 A4용지에 뽑아 제본한 다음 읽으면서 펜으로 고친 사항들을 전부 반영하고 단락을 구분한 뒤 소제목을 달았다. 그래서 이제 95%쯤의 완성도를 지닐 것이다. 지금 도저히 쓸 수 없는 몇 점의 글이 더 있고 디테일은 끝없이 볼 수 있지만 이후의 과정을 거쳐 그대로 책으로 나온다고 해도 큰 문제는 없을 상태다.
요즘 노동요로는 마우리치오 폴리니의 베토벤 소나타 전집을 주로 들었는데, 낮에 번역하고 밤에 이 원고를 고치는 동안에는 머레이 페라이어의 최근 발매작 프랑스 모음곡을 주로 들었다. 이 원고는 편집을 거치지 않은 현재 1,800장(200자 원고지 기준)에 이를 정도로 양이 많지만 어느 한 부분도 시원하게 쭉 써내려 간 부분이 없다. 전혀 그렇게 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조금씩 쓰고 잠시 물러났다가 보고 또 다시 덧칠하는 방식으로 썼다. 막막한 가운데 조금씩 이어 붙여 덩어리를 만들었고, 매일 늘어난 만큼 안도하면서 썼다. 하루 최대 20장 이상 쓴 적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쓰는 동안엔 음악을 아예 들을 수 없었고, 지금처럼 마지막 손질을 하는 상황이라면 이런 음악 정도를 들을 수 있다. 마침 가장 좋아하는 4번이다. 3번까지가 겨울이었다면 비로소 봄이 오는 듯 느낀다.
원고를 보내고 3,000원에 두 개짜리 가지를 사가지고 병원에 들렀다가 돌아오는 길에 커피를 테이크아웃해 왔다.
혹시 은수저인가요.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