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수동] 라멘 트럭-인간은 라멘 기계의 꿈을 꾸는가

img_6802

처음 갔을때 계란 1개를 추가했는데 전부 세 개가 사발에 담겨 나왔다. 한 개는 뭐지? 추가하면 두 개를 기본으로 주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고, 한 개의 흰자가 꽤 많이 뜯긴 것으로 미뤄 보아 그냥 팔기 뭐한 걸 주지 않았을까 짐작했다. 아니면 단순한 주문 착오거나. 하여간 맛계란 세 개가 가세한 라멘은 좀 웃겼다. 일단 차가우니 국물 온도가 떨어졌고, 그런 국물 사이로 파고드는, 간장에 젤리처럼 변성된 노른자는 유쾌하지 않았다. 설탕이 간장에 비해 치고 나오는 단맛도 라면 전체의 균형에 보탬이 된다고 보지 않았다.

주의해서 그런 계란을 기본으로 한 개만 끼고 먹으면 라멘은 괜찮다. 여전히 균형이 맞지 않는다고 볼 수 밖에 없는 계란이지만 그래도 국물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마늘은 살짝 쓰고 타레 한 숟가락을 더 요청해야 균형이 완전히 맞지만, 큰 그림을 아무 것도 추가하지 않아도 한 끼니의 만족감-포만감과 별개-을 주는 라멘이 7,000원이라면 굳이 불만을 품을 이유가 없다. 완성도도 7,000원짜리 음식치고 좋다. 신촌의 가마 마루이 같은 곳에서 9,000원짜리 흉악한 라면을 먹고 나면 다시 새롭게 보인다. 비싸다고 기본으로 갖추지도 못하고, 싸다 안 갖춰도 되는게 아닌 완성도 말이다. 굳이 찾아가서 줄 서야 먹는 위치와 여건 말고, 그냥 동네에 한 군데씩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한국식 라면은 그 자체로 가장 한국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음식 문법으로 완전히 자리 잡았지만, 대신 일본식 라멘처럼 인스턴트 이상의 국수 발달을 막았다고 본다. 특히 고기 바탕으로 범위를 좁히면 더하다. 탕류에 소면을 더하는 수준에서 그치고, 기본 문법을 바탕으로 변주가 생기는 양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라멘을 먹을 때마다 라면이 잃은, 또는 잃게 만든 기회에 대해 생각한다.

너댓명이 간신히 서 있을 만한 공간에서 계속 라멘 말아내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기계의 꿈을 꾸는 인간이 만드는 음식이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기계와 대량생산을 무조건 부정적이라 여기는 경향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숙련도를 쌓으려면 일정 수준 기계적 반복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찬밥 토렴을 가격 산정의 긍정적 요소로 활용할 수 있다면 한식의 탕반류도 이런 콘셉트의 동네 음식점이 가능하지 않을까. 전날 지어 둔 밥을 토렴하고 고명으로 고기만 얹어 내는 수준이라면 심지어 계란, 숙주나물 등등을 쓰는 라멘에 비해 요소가 적으니 더 빨리 낼 수 있고 공간도 덜 차지할 것이다. 김치만 담그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라멘 기계의 꿈을 꾸는 인간 뿐만 아니라, 곰탕 기계의 꿈을 꾸는 인간도 필요하다.

*사족: 공간을 볼 때 결제 시스템이 이곳의 유일하게 명백한 약점이라 보이는데, 문간에서 주문을 받는다면 아예 자판기 시스템이나 모바일 결제 또한 가능하지 않을까. 문 앞에서 직원이 주문을 받고 기계로 결제까지 마치면 굳이 클 필요 없는 스크린으로 주방에 주문이 통보되는 것이다. 물론 그 정도 규모라면 주문과 결제까지만 기계로 받고 지금처럼 구두 통보도 큰 무리 없을 것이다.

 

2 Responses

  1. Real_Blue says:

    저 개인적으로 라멘트럭에서는 처음부터 진하게(진하게 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타래 1스푼을 미리
    추가 해서 염도를 높이는) 달라고 하고 면은 조금 덜 익혀 달라고 하면 밸런스가 훨씬 좋더군요.
    전 늘 그렇게 먹고 있습니다. ^^;

    • bluexmas says:

      저도 다음엔 면을 좀 덜 익혀 달라고 요청해봐야 되겠습니다. 먹다가 생각이 났는데 보통도 괜찮았어요.